광복 후 '지명 되찾기'나섰지만, 인사동 등 일본식 지명 산재
한국땅이름학회 "하루빨리 곳곳에 스며든 잔재 청산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우리 낙원동에서 점심 먹고 인사동 가서 데이트하자. 밤에는 동숭동 가서 공연 보는 게 어때?"
해방 이후 낙원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친구나 연인 사이에 흔히 쓸 법한 이 제안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민족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다.
1910년 조선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제국은 국토의 고유 명칭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추진한다.
흔히 알려진 '창씨개명'과 같이 조선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일본과 동화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일제는 '행정구역 폐합 정리'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군 97개, 면 1천834개, 리·동 3만4천233개 이름을 지우거나 다른 명칭으로 바꿨다.
이 만행으로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뿌리내린 숱한 고유지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복숭아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은 '복삿골', 대추나무를 본떠 지은 '대춧말', 풀이 무성해 불린 '서래', '서리풀이' 등 순우리말로 지어진 지명은 억압된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갔다.
광복 이후 정부는 지워진 우리 국토 이름을 되찾기 위해 관련 사료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일제가 한반도가 토끼 모양을 닮았다는 이유로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일대에 붙인 장기갑(岬)을 '호랑이 꼬리'를 뜻하는 호미곶(虎尾串)으로 바꾸는 등 나름 성과를 거뒀다.
일제가 마음대로 붙인 행정구역 정(町)도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을 의미하는 동(洞)으로 바꿨다.
조선총독부가 1912년 발간한 '지방행정구역명칭 일람.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러나 억압된 36년의 세월 동안 굳어진 지명을 모두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광복 72주년을 맞은 현재도 창지개명 주 희생양이 된 서울은 지명 30%가 일본식으로 쓰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필수코스인 인사동과 낙원동, 예술가 거리로 이름난 동숭동 등 많은 지명이 일제 잔재로 남아 있다.
전국적으로도 숱한 지명에 일본식 잔재가 스며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대로 된 분석자료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경기 가평군 조종면 '하판리→운악리' 지명 변경 |
한국땅이름학회는 지금이라도 일본이 제멋대로 명칭을 붙인 지역을 찾아 제 이름을 되찾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예전 우리 조상들이 지은 지명을 보면 익살과 정감이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났다"며 "광복된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일본식 지명으로 불리는 동네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 하루빨리 제 이름을 찾아 곳곳에 스며든 일본식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에 뺏긴 이름 되찾은 주왕산 용연폭포 |
jay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