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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노동균의 과학다반사]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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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茶飯事)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을 뜻합니다. 일상에서 늘 있는 일들 말이지요.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사소한 현상도 저마다의 과학적 원리가 깃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콜콜 따져보면 소소하지만 흥미롭게 생활의 지혜가 되는 과학 원리가 일상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과학다반사'는 생활 속 과학 이야기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코너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냉동실에 꽉꽉 채워둔 얼음만 봐도 든든합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에서부터 냉면이나 콩국수처럼 얼음이 동동 떠 있어야 제맛인 여름철 음식에 이르기까지 얼음은 필수입니다. 금세 녹을세라 허겁지겁 먹기 바쁜 빙과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나친 빙과류 섭취는 건강에 좋지 않지만, 하나 먹고 돌아서면 바로 다시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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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얼음이 필요한데 냉동실에 얼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른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겁니다. 아마 대부분은 최대한 차가운 물을 담아 냉동실에 넣은 후 냉동 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마냥 기다렸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언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되겠지만, 엄연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를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라고 하며, 1963년 탄자니아의 한 중학생 이름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학생은 수업 중 충분히 식혀 냉동실에 넣어야 할 아이스크림 원료를 무심코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식히지 않고 얼린 자신의 아이스크림이 충분히 식히고 얼린 다른 친구의 아이스크림보다 먼저 어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물론 두 아이스크림 원료의 성분이 완벽히 같다는 가정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죠.

음펨바의 호기심은 이후 과학계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언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이론적으로 규명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1969년의 일이지만, 2013년이 돼서야 싱가포르 남양이공대학 연구팀이 음펨바 효과의 원리를 규명했습니다. 난제를 푸는데 무려 44년이나 걸린 셈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물은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가 결합한 분자의 집합체입니다. 물 분자는 수소로 결합되는데, 원자와 분자 간 결합 간격은 에너지 축적과 방출에 영향을 줍니다. 차가운 물은 분자 간 거리가 가까워 밀도가 줄어드는 대신 에너지를 축적하게 됩니다. 반대로 뜨거운 물은 분자 간 거리가 멀어 밀도가 늘어나고 축적했던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즉, 뜨거운 물일수록 축적한 에너지를 더 빨리 방출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더 빨리 차가워진다는 게 음펨바 효과의 비밀인 셈입니다.

싱가포르 연구팀은 온도가 각기 다른 물을 얼리고,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양을 측정해 음펨바 효과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규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펄펄 끓는 물이 가장 빠르게 어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음펨바 효과는 35℃와 5℃의 물로 실험할 때 가장 분명한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곧 각각의 물이 갖는 초기 분자 간격, 즉 에너지 상태가 음펨바 효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펨바 효과와는 별개로 얼음을 얼릴 때 일부러 끓인 물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칵테일용이나 조각용으로 기포 없이 투명한 얼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얼음 속 기포는 물속에 녹아 있는 공기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물을 끓여 기체 성분을 날린 후 얼음을 얼리면 기포 없는 투명한 얼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펄펄 끓는 물을 바로 냉동실에 넣는 것은 냉장고의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

IT조선 노동균 기자 safero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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