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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폭증 와중 배 불린 은행 …전당포 영업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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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중은행이 국민은행화되어 버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은행의 전당포식 영업 관행을 질타하며 한 말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취임 직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시중은행이 과거 소매금융에 주력했던 국민은행처럼 가계대출 위주의 영업에만 안주하고 있다며 “이대로 두고 보는 게 금융당국의 역할에 맞는지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취임 일성으로 은행권의 보신주의 영업에 대한 ‘작심 비판’에 나선 것이다.

올해 상반기 가계부채가 1400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 같은 가계빚 급증세를 틈타 손쉬운 ‘이자놀이’에만 안주해온 시중은행들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올 상반기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는데, 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이인 예대마진 확대로 은행만 배를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8조1000억원.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이 거둔 당기순이익이다. 이는 2011년 상반기(10조3000억원) 이후 6년 만의 최대 실적이며, 지난해 상반기(3조원)에 비해서도 순익이 5조1000억원(171.4%)이나 늘었다. 이 같은 은행의 순익 확대는 일차적으로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의 대손비용이 크게 줄어 이들 은행이 흑자 전환한 영향이 크지만, 시중은행들의 ‘이자 장사’도 한몫 했다.

■ 이익 중 80%가 ‘이자놀이’에서 나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4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3조4000억원)보다 36.5% 늘었다. 특히 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일제히 1조원 안팎의 순익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말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이어진 시장금리 상승과 이에 맞물린 가계대출 이자수익 확대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깜짝 실적’을 거둔 것이다.

각 은행에 따르면 국내 1·2위 규모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이자로만 각각 2조5850억원과 2조3814억원을 벌어들였다. 두 은행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이자로 번 돈이 10% 이상 증가했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타 은행보다 증가폭은 낮았지만 2조원이 넘는 이자이익을 올렸다.

이렇게 국내은행들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올해 상반기 총 18조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조원 넘게 늘어났다. 올해 초부터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린 반면, 예금금리는 제자리 걸음을 한 결과다. 그 결과 국내은행의 예대금리 차는 지난해 상반기 1.95%포인트에서 올해 상반기 2.01%포인트로 확대됐다. 은행 이익의 핵심 지표라 할 수 있는 순이자마진(NIM)도 올해 상반기 1.61%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0.06%포인트 확대됐다.

이렇듯 가계빚 불안감 속에서도 은행들은 호실적을 보였지만, 문제는 ‘수익의 질’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은행이 거둔 전체 이익 중 80%가 이자이익에서 나왔고, 비(非)이자이익은 20%(4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서도 우리은행을 제외한 3개 은행은 비이자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은행들은 수년째 예대마진에 집중된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비이자이익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이번에도 말잔치에 그친 셈이다.

■ 대출 조이는 정부… ‘전당포 영업’ 바뀔까

문제는 은행들이 자금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 대출 문턱은 높이면서 담보 위주의 손쉬운 가계대출로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소기업 및 기업가 융자 2017’ 보고서를 보면 한국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거부율은 40.9%(2015년 기준)로 주요 24개국 중 가장 높았다. 같은 해 OECD 평균은 한국의 4분의 1인 10.2%였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가계대출을 늘리면서 1998년 기준 27.7%에 불과했던 은행권의 총대출 대비 가계대출 비중은 지난해 43.4%로 뛰어올랐다. 지난 한 해 동안 은행의 기업대출은 3.5% 증가한 반면, 가계대출은 9%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최 위원장이 언급한 “모든 은행의 ‘국민은행화’ 현상”이다.

은행들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를 명분으로 대출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 왔는데, 지난 5월에는 가계대출 평균금리(연 3.47%)가 기업대출 금리(연 3.45%)를 7년 만에 역전하기도 했다.

은행의 이런 ‘전당포 영업’을 부추긴 것은 사실상 정부라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론을 폈던 이른바 ‘초이노믹스’로 정부가 ‘빚 내서 집 사라’며 가계대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상황에서 은행의 영업행태만 문제삼을 수 없다는 항변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통화량을 풀고 시장에 대출을 늘리라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놓고 보조를 맞춘 은행에 전당포라고 하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가계대출 쏠림이 과도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정권 따라 바뀌는 관치금융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이노믹스가 3년 만에 폐기처분되고 새 정부가 고강도 부동산 대책과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금융권 분위기도 급변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은행들도 혁신기업 지원방안을 내놓는 등 앞다퉈 중소기업 대출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생산적 금융’ 역시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에 이은 또 다른 ‘코드 금융’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돈줄 죄기로 은행이 더 이상 가계이자 이익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은경완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8·2 부동산 정책으로 은행 자산 성장의 축은 가계에서 중소기업 여신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가계여신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며, 소매금융에서 다시 도매금융 중심의 은행으로 변화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대폭 강화한 정부 정책으로 은행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주택담보대출 확대에 제동이 걸렸지만, 당장 비이자이익을 끌어올린 만한 여력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확대방안으로 수수료 합리화를 주장하지만, 수수료를 대폭 낮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과 고객 반발로 이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부의 대출 조이기가 은행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승창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표된 주택가격 안정화 대책과 향후 발표될 가계부채 대책으로 현 수준의 높은 대출증가율이 둔화될 가능성은 높지만, 급격한 대출 절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순이자마진 개선으로 은행의 이자이익 증가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재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도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올해까지 이어지는 분양시장 호조로 이미 집행된 집단대출과 하반기 예정된 재건축·재개발로 전세자금대출 등 기타 가계대출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여지가 크다”면서 “가계대출은 극단적인 감소보다 집단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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