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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직업 회장님들은 왜 최저임금 저지에 나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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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방직산업 몰락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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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3만원 넘는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고, 자녀들에게 나이키 한 번 안 사주면서 경영했다. (지금 해고하지 않으면) 다 죽는데 어떡해.” 회장은 울먹였다고 매체는 쓰고 있다.

존폐 기로에 선 중견기업의 애환. 이 매체가 요약한 이야기다. 울먹였던 인사는 조규옥 전방 회장이다. 경제지를 필두로 보수매체가 돌아가면서 조 회장의 사연을 전했다. 조 회장이 ‘600명을 해고해야 하는 이유’로 든 상황은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다. 내년도 16.4%를 인상한다면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주장이다. 조 회장의 하소연에 대해 이번엔 경방의 김준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매체들은 최저임금 인상 상황에 대해 김 회장이 “공장 아주머니들 일자리는 어디서 찾나”라고 탄식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으로 더 이상 채산성이 안 맞아 광주의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들은 자극적이다. “100년 역사 경방 한국 떠난다”, “전방에 이어 경방마저.”

전방과 경방. 대표적인 방직기업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하필이면 왜 방직기업들이 총대를 멘 모양새냐에 대한 의구심이 나왔다. 적극적인 반론도 나왔다. 경방의 베트남 공장 이전은 최저임금 인상폭 결정 훨씬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제조원가 보고서를 보면 직접노무비가 10%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상황이 악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방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경방의 이익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으며, 전체 직원 모두 16.4%의 임금을 올려준다고 했을 때 비용 증가는 22억원에 그친다”며 “연간 최대 22억원의 비용이 부담되어서 공장을 이전한다는 경영자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년에 16.4% 올린다고 해서 회사가 갑자기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고, 베트남으로 빼돌릴 것은 다 빼돌린 상태에서 공장은 껍데기만 남아있는데 이 사람들이 왜 나서서 아우성을 치는지 개운치 않다. 뭔가 배후에 정치적인 게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다.” 섬유업계 관계자 ㄱ씨의 말이다. ㄱ씨의 말에 따르면 섬유업계, 특히 면방직업계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낮은 수준의 임금인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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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때문에 한국 떠난다?

방직업종은 면방과 화섬(화학섬유) 직물, 의류봉제, 모방 등의 분야로 나눠진다. 화섬 쪽의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최저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이 한국노총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 관계자 ㄴ씨의 말이다. “이들 회사의 경우 그동안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마다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맞춰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경방이나 전방과 같은 면방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3조 3교대로 한 달을 풀로 도는 방식의 초과근로로 200만원대 후반의 급여를 맞출 수 있었다. 초과근로를 빼면 대부분이 최저임금 미만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노동계 측에서는 최저임금제의 시행으로 의도치 않게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시 이 관계자의 말이다. “오히려 전방이나 경방과 같은 큰 업체는 여력이 있는 업체들이다. 이미 자동화시스템을 많이 도입했고, 사업장의 해외이전이나 인력 구조조정을 많이 한 업체들이다. 반면 여력이 없는 영세 소규모 사업장은 교대제나 시간외 근로를 축소하고 여의치 않으면 폐업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노총이나 상급단체 차원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에 동의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전방과 경방이 총대를 멘 것일까. “아직 최저임금이 가시화되지 않은 5월에 방직협회 회장단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본인들이 총대를 메겠다는 전언이 있었다. 이번 보도가 나오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한 발 빼는 모양새다. 논란이 심화되자 경방 측에서 나서서 ‘베트남 공장 이전은 최저임금 전에 결정된 일이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회사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론에 해명하고 있지 않은가.” 앞의 ㄱ씨의 말이다.

방직산업은 한때 대한민국의 중심산업이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최초로 세워진 공장은 1917년 조선방직이었다. 그 다음 조선민족 자본으로 만들어진 것이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었고, 경성방직은 해방 전까지 유일한 국내 면방직 회사였다. 1960년대 들어 정부가 수출 유망업종으로 집중 육성하고, 1970년대 수출 주도산업화 고도성장기의 주역도 방직산업이었다. 일신, 동일, 대한방직, 전방, 경방 등 방직 관련 5대 기업은 1970년대까지 생산이나 매출에서 10대 기업 안에 포함되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성장률이 둔화되지만 방직산업에 사양산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9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1위가 전자·전기였다면 2위가 섬유·방직으로 전체 비중의 28%를 차지했었다.” 방직산업의 역사를 연구해온 이남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1년이 산업의 정점이었다. 방적설비를 나타내는 단위가 ‘추’인데, 1991년 370만추를 기록했던 추수는 2008년이 되면 110만추로 떨어진다. “물론 후발 진입업체들도 있고, 기존 업체들도 자동화와 설비 현대화를 추진해 상쇄되는 경향이 있는데, 2012년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설비는 130만 추로 세계 순위로 따지면 18위권이다.” 방직산업은 왜 쇠퇴하게 되었을까.

■ 방직업계 위기 진짜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임금인상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87년 민주화 이후 10년 사이에 임금은 세 배 가까이 오른다. 게다가 일단 고온·고습한 작업환경 자체가 힘들어 취업자도 기피하는 3D업종에 가깝다. 동시에 해외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없어졌고, 고부가제품은 이탈리아나 일본 등이 워낙 앞서 있으니 품질이나 상품성은 못 쫓아가면서 1990년대 말에 이르면 방적설비가 30% 줄어들어 1975년 수준으로 퇴화한다. 방직업체들 사이에서 해외진출 러시가 이뤄진 것이 이 시점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생산설비, 특히 노동집약적인 부분들은 옮겨간다. 상당수의 방직업체들이 이 길을 따른다.

“설계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땅부터 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0년 6월 10일, 새로 방직협회 회장에 취임한 조규옥 전방 회장이 <한국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7년 뒤인 최근 인터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그때에는 자신감에 차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 말 이후 방직업은 20년 만의 호황을 앞두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증설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내 공장에서 450명으로 돌리던 기계를 인도에 갖다 놓으니 1800명이나 필요한 데다, 질도 우리가 A급이라면, C·D급으로 떨어진다. 정책적 뒷받침만 있으면 우리나라만큼 방직업을 하기에 좋은 곳도 없다.” 그는 “면방이야말로 국내에서 육성해야 할 성장산업”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그리고 7년. 그가 확신했던 ‘호황’은 오지 않았다.

다음은 이 교수의 말. “사실 2000년대 이후의 방직이나 방적산업의 역사를 보면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해 왔다. 그런데 사이클을 이루면서 주기적으로 흑자를 볼 때가 있다. 작황이 안 좋아지면서 실 생산이나 천을 만드는 재료인 원면 가격이 급등하는 때다. 대체로 10년에 한 번씩 그런 때가 온다. 그런 때 기존의 방직회사들이 재고를 풀면서 본업에서 이익을 보는 때다.”

조 회장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면 조 회장은 처음부터 방직업계에 종사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한 폐기물업체의 사장이었다. <주간경향>의 요청으로 전방의 기업공시자료를 살펴본 김경율 회계사는 “조 회장의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고 말한다. 공시자료상 조 회장이 소유한 지분은 한 주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언제부터 전방의 회장이 되었을까.

2002년, 전방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다. 당시 전방의 최대주주였던 김석성씨가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에서 ‘조규옥 사장’이 등장한다. 조규옥 삼동산업 사장이 김창성 당시 경총 회장과 짜고 삼동산업을 동원, 불법적으로 지분을 매집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김석성은 김창성 당시 경총 회장의 사촌으로, 아버지는 김용성씨다.

전방의 창립자가 누구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방의 홈페이지에서 조규옥 회장은 대표 인사말을 통해 “전방주식회사(구 전남방직)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창립자이신 해촌 고 김용주 회장님이 자립경제의 의지로 세운 섬유제조 전문기업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용주 회장이 김창성 당시 경총 회장, 그리고 현 바른정당 의원인 김무성 의원의 아버지다. 김용성씨는 김용주씨의 동생이다. 이른바 적산기업으로 전남방직을 미 군정에서 불하받을 당시 김용주 회장은 주일공사를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고, 동생 용성씨가 중심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2000년 가처분신청을 낼 당시의 김석성씨 측 주장이다. 현재 이 갈등은 봉합되었다. 전방의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살펴보면 회사와 특수관계인인 김씨 성을 가진 인사들 10여명이 회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전방은 여전히 “김씨 일가의 공동경영 회사”인 셈이다. 보도를 보면 조 회장의 행적은 유난히 정치적이다. 2014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참석해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경총 회장단 회의에 그는 부회장 자격으로 참석한다.

“방직산업의 역사를 뒤집어놓고 보면 정경유착의 역사 그 자체다.” 업계 인사 ㄷ씨의 말이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 다시 대한민국 방직산업의 초기 역사로 돌아가보자. 해방 후 미국이 무상원조를 할 때 원면이 무상으로 들어온다. 그 관리를 상공부가 했다. 상공부는 그 원면 배정권을 방직협회에 넘겼다. 당시 초대 방직협회 회장으로 그 권한을 가져간 사람이 바로 김용주였다. “그 방직협회가 커서 된 것이 전경련이고 경총이었다. 그때까지 방직협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상공부 직원들에게 방직협회는 퇴직 후 인기 좋은 직장이었다. 원면 배정권은 1972년까지 방직협회가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 가지게 된 것은 수출쿼터 배정권이었다. 이 역시 막강한 권한이었다.” 종로2가에 자리 잡은 섬유회관은 70·80년대까지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방직협회의 힘을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것이다. 경방의 김용완 회장과 2012년 타계한 김각중 회장은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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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직산업, 정경유착 역사의 핵심

방직업이 쇠퇴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개발연대 시대에 방직공장들이 자리잡은 곳은 대구, 광주, 서울 등 대도시의 한복판이거나 막 개발되는 신도시의 넓은 부지였다. 이들이 전국에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 땅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ㄷ씨의 말이다. “오늘 내일 하는 회사들이 망할 듯하면서 버티는 힘의 원천이 그 땅들이었다. 회사는 계속 적자여도 메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떻게? 그 땅을 팔면 또 몇 년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땅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해이’다. 5대 방직기업의 하나였던 대한방직이 2005년 대구 월배지역 땅 매각과 관련되어 보인 행태가 대표적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사건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이 회사의 설범 회장은 대학 동기동창인 안용찬 애경 부회장에게 주변 시세보다 싼 861억원에 땅을 넘긴다. 이게 2005년의 일이다. 4년 뒤 재판에서 설 회장은 리베이트로 받은 15억원을 회사에 전액 반환한 점을 정상참작받아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80시간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올해 3월, 소액주주들이 이 15억원의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자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사건은 현재 경찰에 고발되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어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방직산업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오너 리스크, 세습경영인의 무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 인사 ㄷ씨의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지배구조의 문제다. 창업자인 1대에 이어 2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영적 능력이 있었다. 문제는 3대에 이르러서다. 그나마 경영적 능력을 갖춘 경우는 다행이지만, 전문적 능력이 없으면서 소왕국처럼 지배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방직산업이 결국 기존 공장 부지 처분으로 연명하게 된 것은 제대로 된 R&D 투자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ㄱ씨는 “섬유협회 아래 섬유기술연구소라고 만들어져 있는데,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가 ‘극세사’로 알려진 ‘미세사’의 개발에 실패한 것이다. ㄱ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방직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도레이 같은 일본 기업들이 극세사와 같은 고부가가치 실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여전히 시장에서 살아남은 데 비해 국내에서는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진출한 중국 같은 곳에서 역수입하는 처지가 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970년대까지 방직업이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표산업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당시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가파른 성장이 가능했는데 30·40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의 지원이나 정책에 의존하려고 하는 경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희탁 펀드매니저는 경영의 실패를 국가나 정책 탓으로 돌리려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방직산업의 경우 업계를 선도하는 한두 기업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중심산업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역시 경영상의 실패로 봐야 한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오너리스크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업계의 첨단화 등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 못한 것 등 경영 실패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며 “국가가 전폭적으로 밀던 1960·70년대 상황도 아니고, 기업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때문에 산업에 위기가 닥친다는 식의 논리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땅 매각과 관련해 고발된 것에 대해 대한방직 관계자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혀 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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