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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여성들은 창작의 고통만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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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영화계 성폭력





▶ 김기덕 감독이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연기 지도라는 명목으로 배우의 뺨을 때리고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베드신 촬영을 강요한 혐의로 최근 피소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영화 관계자들은 비단 배우뿐만 아니라 그동안 스태프 등 여성 영화인을 상대로 촬영 현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물리적·언어적 성폭력이 만연해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시선의 오랜 고착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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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뫼비우스> 영화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 4년 뒤 그는 촬영 도중 여성 배우(중도 하차)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로 피소됐다. 김기덕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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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서연(가명)씨는 201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서 엄마 역을 맡았다.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입상한 전력이 있는 유명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배우 인생에 의미있는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씨는 이 작품을 마치지 못했다.

지난 7월 이씨는 “김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가 문제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차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그는 고소장에서 “<뫼비우스> 촬영 당시 김 감독으로부터 3회에 걸쳐 뺨을 맞았으며 대본에 없던 장면을 연기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남자 주인공의 신체 부위를 잡으라는 지시를 거부하자 김 감독의 폭언이 이어졌다”고도 했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서 “그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고 국가인권위원회의 문도 두드려봤다. 하지만 모두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모두 ‘내가 잘 아는데, 너 그러다 무고죄로 고소당하면 어떻게 할래’라고 해서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고 말렸다는 것이다. 이씨는 영화를 중도 하차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현재 배우 생활을 그만둔 상태다.

“폭행은 연출이 아니다”

이씨가 영화산업노조 산하 영화인 신문고에 김 감독 관련 사건을 처음 접수한 것은 올해 1월23일이다.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해시태그 운동’으로 공론화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이후 영화노조는 신문고에 구성된 법률자문위원 등을 통해 의견을 청취했고, 김 감독과 김기덕필름 쪽에 사건 접수 사실을 알렸다.

이에 김 감독 쪽은 “4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뺨을 때렸다면 연기 지도 과정에서 생긴 일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어 “이씨가 촬영 도중에 일방적으로 출연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덧붙였다.

여성영화인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이씨는 촬영 과정에서 김 감독으로부터 당한 폭행, 강요 등을 이유로 김기덕필름 측과 수차례 상의 후 하차를 결정했다”며 일방적인 하차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이날 공동대책위는 이 사건은 단순히 한명의 영화감독과 한명의 여성 배우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동대책위는 “영화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자신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을 비열하게 이용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한 영화감독이 수많은 영화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한 배우의 뺨을 때리고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상대 배우의 성기를 직접 잡게 하는 행위’를 강요해 배우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이라며 “이는 피해자들의 이름만 바뀔 뿐 끝도 없이 반복되어온 영화업계의 폭력적인 노동환경 등 뿌리 깊은 인권침해의 문제”라고 말했다.

공동대책위는 “배우의 감정이입을 위해 실제로 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이다. 배우는 시나리오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해당 상황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전문가다. 성폭력 장면을 사실적으로 찍기 위해 배우와 사전 합의 없이 촬영이 진행될 수 없다는 얘기다. 서 변호사는 “살해 장면을 사실적으로 찍기 위해 직접 살해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영화연출자 아닌 사람들도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김기덕, 여성 배우 폭행 혐의로 피소
피해자 “연출도 폭력 정당화 안 돼”
사건 공대위 “비슷한 사례 많아”
9월7일까지 인권침해 신고 접수

영화계 여성 배우·감독 활동 저하
올해 100만 관객 이상 작품 중
여성 배우가 주인공인 건 한 편에 불과
여성 감독 작품엔 투자기피 경향

이씨의 사례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겸 변호사는 “이 사건은 영화계나 연예계에 만연한 인권침해 중 한 예에 불과하다. 실제 밝혀지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사전 협의 없이 즉석에서 성적인 연기를 요구받는 일은 감독의 연출권이라는 이름 아래 흔히 벌어져 왔다. 남성 스태프가 여성 스태프나 신인 여성 배우를 상대로 성희롱적 발언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이런 문제들을 영화계에서는 ‘예술’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성폭력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여성영화인모임에 접수된 한 사례다. 배우 ㄱ씨는 영화 촬영 도중 감독에게 잠자리를 요구받았다. 이를 거절하자 영화에서 중도 하차해야만 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연료도 한 푼 받지 못했다. 배우 ㄴ씨는 촬영 도중 감독과 스태프들이 자신의 촬영 장면을 돌려보며 성적 농담을 나누는 것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몇몇 스태프가 자신의 몸매를 가리키며 ‘육덕지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해 성적인 장면을 연상케 하는 농담을 했지만, 웃어넘겨야만 했다. 반응해봤자 성격이 예민한 배우로 찍혀 평판만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남성 배우가 영화 내용 중 가정 폭력을 묘사한 장면에서 사전 협의 없이 상대 여성 배우의 속옷을 찢고 신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해 피소된 사건이 있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저예산 영화의 시공간상 한계 등을 이유로 남성 배우의 행위를 ‘배역에 몰입한 연기’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영화 <전망 좋은 집>(2012)에 출연한 배우 곽현화씨도 이수성 감독과 현재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곽씨는 극장 개봉 당시엔 편집된 노출 장면이 자신의 허락 없이 감독판에 추가돼 아이피티브이(IPTV)로 공개됐다면서 이 감독을 고소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이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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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뫼비우스>의 한 장면. 김기덕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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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빙자한 위계와 폭력

이런 문제는 왜 생기는 것일까? 안병호 영화노조위원장은 감독과 배우라는 특수한 위계질서가 존속되는 한 유사 피해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우의 경우 직업상 작품에 출연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감독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특히 이씨처럼 한동안 일이 없다가 작품 출연의 기회가 있으면 현장에서 계약서의 세부 사항에 대해 상의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대부분 현장에서의 통제권은 감독에게 집중된다. 시나리오상에 없는 요구를 해올 경우 배우가 영화계를 떠날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상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김 감독 사태로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된 이상 이제 예술이라는 보호막을 쓰고 벌어지는 부적절한 성 문제는 근절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9월7일까지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 성폭력 등 인권침해 신고를 받을 예정이다.

2015년 11월 영화 <도리화가> 시사회에서 배우 류승룡은 함께 출연한 배우 수지에 대해 “수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며 “여배우가 현장에서 가져야 할 덕목, 기다림, 애교, 웃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주는 수지의 존재감, 꼼꼼함이 촬영장에 해피 바이러스를 줬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영화계 일각에서 “여배우의 덕목이 애교인가” “여배우를 ‘기쁨조’ 취급했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영화계에서 만연되어온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시선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였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12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보를 위한 한 인터넷 방송에서 배우 김윤석은 “(함께 출연한 여성 배우들의) 무릎 담요를 내리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신인 배우 채서진과 박혜수를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으로 비판이 일자 김윤석은 며칠 뒤 기자간담회에서 “깊이 반성하겠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감독-배우 간의 권위적인 위계 관계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촬영 현장에 만연하는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시선이다. 이런 시선이 여성 감독, 여성 배우, 여성 스태프에 대한 성폭력 문제로 이어진다. 종국에는 영화 콘텐츠의 질적 하락마저 야기한다.”

여성영화인모임 관계자들은 여성에 대한 영화인들의 관습적인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화계의 고질적인 성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남자 영화’의 유행과 함께 장르 다양성이 무너지면서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들의 입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단 여자가 주인공이면 투자사에서 난색을 보인다”는 풍문마저 돌았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2017년 상반기까지 100만 관객 이상 동원 작품 중 여성 감독과 여성 주인공 비중을 조사한 결과 1천만명 이상 관람한 한국 영화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여성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 역시 1편(<암살>)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한국 갤럽이 ‘2016년을 빛낸 영화배우’ 10명을 조사한 결과 이 명단에 포함된 여성 배우는 9위에 오른 전지현이 유일했다. 10년 전인 2007년, 같은 조사에서 배우 전도연은 49.7%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배우 손예진, 김혜수, 전도연이 나란히 2~4위에 올랐다. 그러나 2009년 이후 5위 안에 여성은 단 한명뿐이거나 아예 없는 추세가 이어졌고, 2014년에는 1~10위를 모두 남성이 차지했다.

‘꼼꼼함은 예민함으로’, 여성 감독에 대한 편견

여성 감독의 작품에는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최근 10년 사이 영화계 정설로 떠돈다. “여성 감독이 꼼꼼하면 너무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꼼꼼하기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로 칭송받는다는 게 너무 의아하다.” 김보라 감독은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토크 포럼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영화계 성 평등 환경을 위한 대안 모색’에 참석해 이렇게 토로했다. 여성 감독은 남성 감독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일이 잦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성 감독은 “여성 감독에 대한 표현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꼼꼼함은 예민함으로, 카리스마는 독함으로 표현된다. 아울러 여성이기 때문에 정치, 스포츠 등 시대상을 읽을 줄 모른다는 편견마저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런 부적절한 시선이 투자 기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지영 감독은 “편견 때문에 여성 감독의 작품에 투자가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의혹이기 때문”이라면서도 “오히려 이런 질문은 영화산업에서 힘을 가진 투자·배급·제작 관계자들께 되돌려줘야 할 것이다. 대답이 궁금하다. 현재 이런 변질된 영화 생태계를 만든 건 그들이니까”라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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