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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빗물,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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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박사' 서울대 한무영 교수]

840㎡ 규모 옥상에 정원 만들어 흙 아래를 '빗물 저장소'로 사용

"빗물, 가뭄·폭염 해결할 수 있어… 식수도 가능해 쓰임새 무궁무진"

서울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오른 11일 오후 서울대 35동 옥상. 다른 건물의 시멘트 옥상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옥상에는 풀과 나무, 꽃이 어우러진 푸른 정원이 펼쳐졌다. 60㎡ 크기의 작은 연못에서는 금붕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텃밭에는 방울토마토가 열려 있고 감자, 파 등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연못을 채우고 텃밭에 뿌리는 물은 모두 빗물이다. 약 840㎡ 규모의 옥상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61) 교수가 사비를 털어 만든 것이다. 옥상 위에 5㎝ 높이의 물 저장 공간을 만들고 부직포 위에 15㎝ 흙을 깔았다. 비가 오면 흙 아래부터 물이 저장된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파이프를 열어 물을 흘려보낸다.

조선일보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지난 5월 ‘빗물 정원’에 핀 꽃 옆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한 교수는 가뭄과 폭염 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건물 옥상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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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가 이 '빗물 정원'을 만든 것은 가뭄과 폭염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가뭄은 비가 안 와서, 홍수는 비가 많이 와서, 폭염은 물을 안 뿌려서, 대부분의 물 문제는 빗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빗물만 잘 이용하면 가뭄과 폭염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한 교수가 빗물 연구에 빠진 건 가뭄이 극심했던 2000년부터였다. 한 교수는 더러운 물을 먹는 물로 바꾸는 수(水)처리 전문가였다. 가뭄으로 물이 마르자 그의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 일본 도쿄의 한 구청 계장이 쓴 '빗물과 당신'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는 '빗물 탱크'가 설치된 스모 경기장이 물 자원을 모아 홍수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듬해 서울대 안에 빗물연구센터를 설립했다. 2004년부터는 국제물협회(IWA) 빗물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교수는 빗물이 그냥 버려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물맹(盲)'입니다." 한 교수는 사람들이 빗물이 더럽고 맛이 없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빗물은 맛이 좋고 깨끗하다"면서 "물의 맛을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실험 참가자의 대부분이 수돗물, 생수가 아닌 빗물이 가장 맛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또 "지하수는 땅에서 어느 곳으로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수돗물도 더러워진 물을 화학적으로 처리한 것"이라며 "빗물은 정화된 수증기들이 모인 구름에서 땅으로 바로 내려와 깨끗하다"고 했다. 빗물도 침전으로 부유물을 제거하고 자외선이나 염소 등 살균 처리를 하면 마시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한 교수는 빗물이 폭염과 가뭄 등 물과 관련된 자연재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올여름은 평년과 비교해 비의 양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 때문에 비가 내린 곳은 피해가 컸고 다른 한편에는 극단적인 폭염과 가뭄을 몰고 왔다. 그는 지금의 도시를 물과 나무가 없는 사막에 비유했다. "물가나 숲에 가면 시원합니다. 메마른 사막에 물과 나무가 있으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교수는 지붕이 넓은 곳에서 빗물을 저장해 받아 쓰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비가 많이 올 때 지붕에 물을 받으면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이후 모은 빗물을 지붕에 뿌려주면 시원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교수는 정년퇴직 전까지 서울대 건물 전체를 '옥상녹화'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빗물은 누구에게나 공짜로 떨어지는 돈과 같습니다. 빗물이 돈이라면 버리겠어요? 한 달 전 가뭄 때는 돈보다 더 귀하고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나요? 빗물을 모아 쓰면 에너지도 아낄 수 있지요.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 빗물을 잘 모아야 합니다."

[유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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