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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뉴스 인사이드] 불붙은 '세금전쟁'…표밭 눈치보며 '증세 수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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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영원한 트라우마 / 참여정부 종부세·朴정부 담뱃값 등 거센 반발에 결국 선거서 연달아 져 / 美 조지 부시·英 대처도 자리 물러나 / 세계 각국서도 세금 인상 후폭풍 커 / 정부 2차 증세 이어지나 / ‘핀셋 증세’‘명예 과세’로 충분 주장에도 / 국정 추진 재원 178조에 턱없이 미달 / 다른 재원 못 찾으면 대상 확대 불가피 / 솔직한 태도로 국민·야당 설득나서야

여야 간 ‘세금 전쟁”이 시작됐다. 문재인정부가 증세 논의를 본격화하면서다. 현 정부는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만 한정하는 ‘부자 증세’일 뿐이라고 하지만, 야권에서는 결국 중산층·서민에까지 확대하는 ‘징검다리’ 증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증세 논란은 올 하반기 정치권 최대 이슈다. 증세가 뜨거운 감자인 것은 그만큼 증세에 내재된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2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 및 기권 투표 등으로 정족수를 채우면서 2017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과거 세금 인상을 추진한 정권들은 예외없이 이후 선거에서 패배했다. 세금 인상에 따른 불만을 수습하지 못하면 정권교체로 치달았다. 집권당으로선 증세 논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증세 없이 핵심 복지정책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을 하기도 어렵다. 반면 여당을 견제하려는 야당에 증세 프레임만큼 효과적인 공격수단이 없다. 여당이 증세 대신 복지정책을 포기한다면 “공약 위반”이라고 공세를 취할 수도 있다. 여권으로서는 민심이반은 피하면서 재원마련은 성공하는 묘수를 짜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이 난제를 풀 수 있을까.

◆‘세금폭탄’ 트라우마 與… 쉽지 않은 증세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정부의 증세, 이름을 지어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여당은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에 ‘핀셋 증세’, ‘명예 과세’ 등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증세’ 프레임에 대처하는 여당의 고민이 묻어난다. 이는 노무현정부 시절 ‘세금폭탄’에 휘말려 지지율이 급락했던 아픈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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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의원 페이스북 캡처.


노무현정부가 2005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이라며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맞물리며 야당의 공세는 큰 공감을 얻었다. 진보진영은 2006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까지 3연속 패배를 당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28일 통화에서 “당시에는 과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앞으로 내가 돈을 좀 더 많이 벌게 될 수 있는 희망’을 꺾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미래에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는 인식이 확신되며, 그 대목이 (야당의) 공격 포인트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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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가치세·연말정산… 野에도 남은 ‘증세’ 악몽

증세의 아픈 기억은 진보진영만 가진 것은 아니다.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는 그 다음해 있었던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사실상 패배하게 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YH사건과 부마민주항쟁, 10·26 사건을 거치며 몰락한다. 당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정책 자문역할을 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10% 단일세율로 시행이 되고 나서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이 세금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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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않는 증세 갈등 문재인정부가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를 추진하며,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세금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역대 정부에서도 세금 인상은 어김없이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수반하며, 시위와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2008년 이명박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려는 조치를 취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기간 동안 증세 논란에 계속 시달렸다. “증세 없는 복지” 구호를 내걸고 집권을 했지만, 막상 정책 추진과정에서 사실상 증세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했는데 이를 두고 세금을 더 걷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일었다. 연말정산 파동이 일었던 2015년 1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거기에 박근혜정부가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인상한 것을 놓고도 사실상의 증세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지 H W부시 ‘증세’했다가 단임정권으로 끝나

해외 정권에서도 증세를 시도했다가 선거패배에 직면한 경우가 적잖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1988년 대통령선거 도중 “제 입술을 봐라, 더 이상의 세금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 정작 걸프전 후폭풍에 따른 재정적자 증가로 증세를 단행해야 했다. 그는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에게 패배, 재선 도전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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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좌측)


1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하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90년 빈부에 상관없이 세금을 물리는 ‘인두세’를 도입하려 했는데, 이후 런던에서는 극렬한 시위가 일어났고 여당 보수당에서도 반발이 커졌다. 결국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연방소비세를 도입한 캐나다 보수당은 1993년 총선에서 169석에서 단 2석만 차지하며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54년 만의 정권교체를 만들어 낸 일본 민주당은 소비세율을 10%로 상승시켰다가 싸늘한 민심과 맞닥뜨리며 2012년 총선에서 대패, 자민당 아베 총리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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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해지는 ‘2차 증세’… 정부 신뢰 제고가 가장 중요

정부와 민주당은 ‘핀셋 증세’, ‘명예 과세’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를 가지고 현 정부 핵심정책 재원 마련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야당의 “중산층·서민 증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결국 여권이 다른 재원을 찾지 않는 이상 증세 대상 확장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 설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설득력이 없는 상태에서 증세계획을 밀어붙이게 되면 현 정부도 전임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8일 “‘세금을 더 내면 여러분께 돌려드린다’는 중부담 중복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 없이는 함부로 추가 증세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 설득도 절실하다. 다당제인 20대 국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야당 설득이 가능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정부가 솔직한 태도로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 필요성을 설명한다면 논의에 참여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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