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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죽부인 껴안고 대청 마루서 낮잠…'한옥피서'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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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하니!]남산골한옥마을 오수체험+한옥만화방… 색다른 '스테이케이션']

머니투데이

22일 낮 남산한옥마을 윤씨 가옥을 찾은 기자 일행이 낮잠을 자고 있다./ 사진=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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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집 대청마루에 누워 눈을 감는다. 산들바람을 타고 오는 풀벌레 소리를 듣다보면 더위는 물러가고 스르르 단잠이 온다. 명절에나 갈 수 있는 시골 할머니댁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남산한옥마을 전통 가옥이 시민에게 개방됐다.

남산한옥마을에서는 선조들의 피서법을 체험할 수 있다. 서울시는 7월19일부터 8월31일까지 여름 맞이 프로그램 '남산골 바캉스'를 운영한다.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는 '오수(午睡)체험'과 전통 음료를 마시며 만화책을 읽는 '한옥 만화방' 프로그램이 있다. 이용료는 각각 2000원이다.

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랐던 지난 22일 토요일 오후 2시30분. 기자가 직접 한옥피서에 나섰다. 오수체험은 한옥마을 내 옥인동 윤씨(尹氏) 가옥에서 운영된다. 한옥마을 전통공예관 옆 매표소에서 구입한 표(영수증)를 제출하면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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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체험은 '탁족+음료 1잔+낮잠 1시간'으로 구성됐다./ 사진=이영민 기자


오수체험은 '탁족+음료 1잔+낮잠 1시간'으로 구성됐다. 옛 선비들의 피서법인 탁족(산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일)을 따라 대야에 떠놓은 냉수에 발을 씻고 마루에 들어서니 관리자가 식혜 한 잔을 갖다 줬다.

무더위 탓인지 오수체험을 하러 온 시민은 기자 일행 세 명뿐이었다. 우리는 가장 시원하다는 대청마루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누웠다. 선조들의 여름 필수품인 죽부인을 껴안고 모시베개에 기대 잠을 청했다. 앞뒤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금세 잠이 들었다.

'쿵쾅쿵쾅!' 한옥의 고요함 속 꿀잠에 빠져있다가 번쩍 눈을 떴다. 자다가 봉창(창틀이나 창살 없이 토벽에 구멍을 뚫어 채광하는 창)도 아닌 마루 두드리는 소리가 기자 일행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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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체험 장소에서는 '쉿!' 공공장소 예절이 필요하다./ 사진=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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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마루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모와 관리자가 주의를 줬지만 한옥에 놀러와 신난 아이를 말릴 수는 없었다. 결국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자다가 마루 두드리는 소리에 깬 민모씨(28)는 "뛰어다니는 소리가 머리를 울려 잠이 확 깼다. 자녀를 데려올 때는 부모의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옥 내 낮잠 자리는 총 15곳. 두 자리씩 마련된 방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사방이 뚫린 대청마루를 공유하고 남녀 방이 따로 없는 혼숙 방식이다. 자리 사이 폭이 넓어 큰 불편함은 없다. 다만 자는 모습을 낯선 이들과 공유하는 게 싫은 사람에겐 방을 추천한다.

한 시간의 꿀잠 후 한옥만화방에도 들렀다. 만화방은 관훈동 민씨(閔氏) 가옥에 열렸다. 만화방에서는 시원한 식혜를 마시며 만화책, 소설, 잡지 200여 권을 볼 수 있다. 이용 시간은 무제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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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4시쯤 남산한옥마을 민씨 가옥에 마련된 한옥만화방에서 어린 아이와 부모들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이영민 기자


만화방에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죽부인을 베고 책을 읽고 있었다. 자녀와 조카를 데리고 온 이모씨(44)는 "서울 도심 한옥들 대부분이 개량된 느낌을 주는데 이곳 한옥들은 전통의 멋이 잘 살아있다"며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다"고 말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던 초등학교 2학년인 이씨의 자녀 김양은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아서 좋아요. 또 오고 싶어요"라며 책장을 넘겼다.

한옥 기둥에 기대 홀로 독서를 즐기던 강씨(26)는 "주말에 혼자 집이나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오게 됐다"며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으니 더 잘 읽힌다.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자주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어린이 책이 많고 성인이 읽을 만한 책이 적다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남산골 바캉스'는 강씨처럼 집이나 집 근방에서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 족'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평일 낮잠이 고픈 직장인들에게도 인기다.

26일 낮 12시. 다시 찾은 윤씨 가옥에서 만난 직장인 송모씨(31)는 "직장이 근처라 식사 후 한옥마을에 산책하러 종종 왔다. 오늘은 오수 체험한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도 안먹고 낮잠 자러 왔다"며 "고요한 한옥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는 일상에 큰 휴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산골 바캉스' 프로그램은 매주 수요일~토요일(오전 11시~오후 5시)에 운영된다. 티켓은 오후 4시까지만 판매한다.

이영민 기자 lets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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