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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푸드 스토리] '할랄 음식' 얼마만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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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 무슬림 위한 인증제 실시... 할랄 음식 취급하는 곳 적지 않아

한국일보

무슬림에게 종교는 곧 생활 습관이다. 이슬람 경전 코란(왼쪽 위)이 음식과 관련해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정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러 가로되 내가 말씀으로 계시를 받은 것 가운데서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를 제외하고는 먹고자 하는 자가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 것을 발견치 아니했노라.’(코란 6장 145절)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연간 소득의 2.5%를 희사하며, 이슬람력 9월이면 라마단(올해는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금식과 금욕을 행하고, 이드 알 피트르(라마단 종료 축제) 연휴를 만끽한다. 그들은 코란의 가르침대로 해도 되는 것(할랄)과, 해서는 안 되는 것(하람)을 나눈다. 무슬림. 전세계 인구의 23%에 달하는 17억 명이 알라를 유일신으로 믿는 이슬람 신자다.

급성장하는 무슬림 관광시장

무슬림 관광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무슬림은 당연히, 한국에도 여행을 온다. 2001년 20만2,000여명에 불과했던 무슬림 여행자는 2016년엔 98만5,858명으로 증가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무슬림 여행자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무슬림 여행자 2만여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여행지에서 돈을 많이 쓴다. 2015년 이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쓴 돈은 약 1,510억 달러로, 전 세계 관광 시장의 11.2%를 차지했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의 3%에 불과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의 씀씀이가 특히 크다.

종교와 삶이 일체화한 생활 습관을 갖고 사는, 분리된 문화권의 무슬림들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문화권 밖으로 나와 생경한 문화 한 가운데 놓이는 모험이요, 하람이 더 많고, 할랄이 더 적은 고난의 환경에 놓인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옷은 가방에 넣으면 되고, 휴식과 잠은 호텔에 맡기면 된다. 그러나 의식주 중 음식은 무슬림에게 특히 큰 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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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전용 조리 구역과 도구를 갖춘 더 플라자의 중식당 도원의 요리. 무슬림이 ‘할랄’로 주문하면 할랄 식재료를 써서 만들 뿐, 보기엔 일반 메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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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라자 일식당 무라사키의 요리. 할랄 전용 조리 구역에서 할랄 식재료를 할랄 전용 도구로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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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과 하람, 제약이 많은 식단

다음 중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은 무엇일까? ①크라운제과 죠리퐁 ②오리온 초코파이 ③빙그레 바나나맛우유 ④롯데제과 아몬드 빼빼로 ⑤삼육식품 검은콩칼슘두유

정답은 ‘모두’이다. 이슬람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 ‘할랄 인증’을 받아 만든 제품이다.

다음 중 독실한 무슬림이 한국에 왔을 때 평범한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①소고기 갈비찜 ②장어 ③돼지 불고기 ④영계 백숙 ⑤보신탕

정답은 ‘없다’. 돼지와 개고기는 애초에 하람이다. 돼지고기뿐 아니라, 요리와 디저트에 사용되는 젤라틴도 돼지로부터 얻으면 하람이다. 비늘 있는 물고기는 대부분 할람이지만, 장어는 하람이다. 소와 닭, 양고기는 할랄이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해야 할랄이다. 할랄 도축은 제약이 많다. 건전한 정신을 가진 무슬림이 도축해야 하며, 도축하면서 “비스말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해야 한다. 또 날카로운 칼로 동물의 경정맥, 경동맥, 기관, 식도를 한 번에 절단해 단숨에 고통 없이 도축해야 하고, 피를 완전히 빼야 한다. 할랄 방식으로 도축한 고기라고 전부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식재료를 보관할 때 하람 식재료와 섞이지 않게 해야 하고, 하람 재료를 조리하는 데 사용한 주방 용품, 식기도 쓸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와 개인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 강도는 다르지만, 엄격한 무슬림일수록 코란을 철저하게 지킨다. 알코올도 물론 하람이다. 한식 양념 중 자연 방식으로 양조하는 간장에서는 제조 공정 중에 자연스럽게 미미한 양의 알코올이 생성되는데, 이 역시 하람이다.

할랄 음식은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 이슬람 문화권의 음식만 찾아 나서야 하는 건 아니다. 한식, 일식, 중식 등 세상의 모든 음식이 식재료와 조리 과정과 관련한 코란의 규율만 지키면 할랄이 될 수 있다. 한국을 찾은 무슬림 관광객이 서울 이태원 이슬람 성원 주변의 무슬림 식당만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먼 나라까지 와서 자기 나라 음식만 먹는 것은 고역이다. 프랑스 파리에 간 한국인이 내내 한식당만 가야 한다면 여행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처럼. 물론 무슬림에게는 단지 재미나 취향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에겐 할랄 음식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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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서울 무궁화의 메뉴. 할랄 식재료를 써서 할랄 방식으로 조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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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하는 무슬림 미식가를 위한 한식

한국관광공사의 ‘2016 한국을 방문한 무슬림의 관광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무슬림 여행자가 한국에서 선택한 음식은 단연 한식이 많았다. 불고기, 비빔밥, 김치, 떡볶이, 갈비, 김치찌개, 삼계탕, 해물탕, 갈비탕, 떡, 된장찌개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음식 대한 만족도는 46.3점(100점 만점)에 불과했다. 할랄 한식을 찾기 어려운 게 주요 원인이었다.

그래서 한국관광공사는 ‘무슬림 친화 레스토랑 분류제’를 시행하고 있다. ‘할랄 인증’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가 인증한 곳이다. ‘무슬림 자가인증’은 식당 운영자 또는 요리사 중 최소 1명이 무슬림이면서 알코올 음료를 팔지 않고 할랄 인증 육류를 사용하되 기타 식재료와 분리 보관하는 곳이다. 또 돼지고기와 돼지 부산물 등 하람 식자재를 식당에 들이지 않고 조리용 알코올도 사용하지 않으며, 할랄 표시를 출입구와 메뉴판에 명시해야 한다. ‘무슬림 프렌들리’는 할랄 인증 육류를 사용하고 돼지고기와 부산물을 들이거나 판매하지 않는 곳이다. ‘포크 프리’는 돼지고기는 사용ㆍ판매를 하지 않지만, 할랄 인증 육류를 사용하지는 않는 곳이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그랜드 힐튼 호텔, 롯데호텔 서울, 63스퀘어,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더 플라자 등은 무슬림 프렌들리 인증을 받았다. 더 플라자는 “모든 레스토랑 주방에 무슬림 프렌들리 메뉴만 조리하는 전용 조리구역과 도구를 뒀다”고 했다. 롯데호텔서울은 “할랄 요리 예약이 들어오면 할랄 식재료를 따로 발주하고, 전용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고 했다.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역시 무슬림에 맞춘 식단을 이미 갖췄거나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정식당 김정호 헤드셰프는 “무슬림 맞춤 식단을 마련하는 건 비건 채식주의자 용 식단을 준비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라고 했다. 김 셰프는 “다만 할랄 식재료 선택 폭이 넓지 않고, 할랄 재료로 대체했을 때 요리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 등이 문제”라고 했다. 밍글스 김민성 매니저는 “무슬림 고객이 예약을 하면 할랄 인증 고기를 준비한다”며 “예약 시 피해야 할 식재료를 묻는 ‘알러지 체크’ 때 세세히 묻고 맞춤형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융숭한 손님 대접으로 유명한 아랍 지역에서는 호스트가 식사를 내놓을 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우리 집은 당신 집입니다. 알라의 이름으로 드세요.” 이슬람은 분명 한국에서 낯선 종교이자 제약 많은 풍습이다. 그러나 맞아야 할 손님이다. 환대의 정신이 요구되고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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