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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택희의 맛따라기] 맛있는 건강식 석이술, 석이멍게젓갈 … 특허 음식점 대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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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석이 전문음식점 석이원의 대표 음식인 석이전복백숙. 오리·전복·문어·석이가 들어간 백숙의 국물은 오장에 좋은 한약재 5가지씩 25가지를 포함해 모두 30가지의 약재가 들어갔다. 갈색 맑은 국물은 보기엔 한약 같지만 약 냄새가 전혀 없다. 맛이 맑고 시원하며 구수하고 깊다. 떠있는 검은 조각들이 석이버섯이다. 따끈한 국물 한 대접 마시면 ‘맛있는 보약’ 한 첩 먹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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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보약, 발효와 부패 경계에서 꽃 핀 별미
석이 음식에 신명(身名; 몸과 명예)을 바친 사나이가 있다. 석이로 맑은 술을 빚고 맛있는 건강식도 만든다. 곁눈질 않고, 돈이 되든 안 되든 빠져 지낸 지 10년째다. 특허도 2개를 받았다. 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내와 딸은 음식점을 한다. 특허받은 음식과 술을 주메뉴로 내는 ‘석이원(대전 서구 둔산로137번길 31 건우빌딩 2층/전화 042-485-5520)’이다. 대전고등법원 정문 앞에 있다.

지난달 말 해거름에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좋은 술이 있어 생각이 났다며 서촌 주막으로 오라고 했다. 맑은 술 380mL(2홉)들이 한 병을 내 몫으로 남겨뒀다. 전통주 불모지인 대전 술인데 이름이 ‘석로주(石露酒) 純’이었다. 술을 빚은 ‘석이원주조’ 이상권(56) 대표는 석이(石耳)와 한약재를 넣고 45일간 3단 발효해 3개월 저온 숙성한 삼양주라고 설명했다. 술에 혹해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맛부터 봤다. 첫 잔은 그저 그렇더니 마실수록 입맛이 당겼다. 한 병은 미진했다. 술이 궁금하고 더 마시고 싶기도 해서 주말(지난 8일)에 양조장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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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던 토요일 오후 1시인데도 음식점에는 손님이 많았다. 칸막이 벽에는 이상권 대표와 석로주를 소개한 각종 매스컴 기사 스크랩이 게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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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시간 피한다고 오후 1시에 석이원에 들어갔다. ‘석이원주조‘도 한 곳에 있었다. 대전 중심상권에 있는 건물 2층 260.86㎡(79평)를 모두 쓰고 있었다. 대표 이씨와 4시간 동안 석이 술·음식을 즐기며 얘기를 들어봤다. 차를 마시며 1시간 더 대화를 했다. 음식과 술은 순수와 정갈 그대로였고, 삶은 끝없는 고난을 뚝심으로 헤치며 너덜밭을 옥토로 가꾼 개척의 험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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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6가지, 해산물 2가지로 구성된 기본 8찬. 농산물 중 60%쯤은 직접 재배하고 나머지도 대부분 생산자에게 직접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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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차려져 있었다. 같은 모양 접시에 8찬을 차렸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저녁상을 받은 듯한 차림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이지만 주인 부부와 내 고향은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18㎞(45리) 상간에 있다. 물산이나 조리관습이 같은 권역이다. 배추김치·콩나물무침·애호박볶음·총각김치·미역초무침·멸치볶음, 간장으로 양념한 연두부와 밀가루 묻혀 찐 꽈리고추. 친숙한 음식이다. 맛이나 간이 삼남(충청·전라·경상도)의 경계 부근 내륙지역 특징대로 순박하고 무덤덤하다. 수더분하고 깔끔한 시골 음식이다. 화학조미료에 익숙한 사람은 화를 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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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8찬이 오른 석이전복백숙 상차림. 여기에 석이찰밥을 곁들이면 어른 3명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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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대표음식인 석이전복백숙(6만원)이 도기냄비에 담겨 나왔다. 갈색 맑은 국물엔 오리백숙이 잠겨있고, 그 위에 전복·문어·석이를 올렸다. 국물 표면에는 다진 파와 기름 막이 어울려 떠다녔다. 국물을 한 술 뜨니 맛이 놀랍다. 절묘하다. 음식과 보약 사이,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고 있다. 약 같은데 한약 냄새는 없고, 고기와 해물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은 깊다. 약재가 냄새는 가리고 재료 맛이 더 깊어지게 기운을 모은 듯하다. 국물은 따라 나온 석이찰밥을 말아 먹어도 좋고, 석로주 안주로도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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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에 따라 나오는 석이찰밥. 석이 채와 석이 우린 물로 밥을 지어 인산가 생활죽염으로 간을 했다. 백숙 국물에 말아서 먹으라고 나오지만 그냥 먹어도 아주 별미다. 따로 주문하면 3000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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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채 넣고 석이 우린 물로 지은 찰밥(단품으로는 3000원)은 예전에 돌절구에 찧어 인절미 만들던 찰밥이 생각나는 질감이었다. 간을 하려고 보니 소금이 ‘인산가’ 죽염이다. 아홉 번 구운 비싼 죽염은 아니고 세 번 구운 생활죽염이다. 그래도 이런 소금을 쓰는 대중음식점은 본 적이 없다. 주방 앞 현수막에는 된장·간장·고추장도 죽염으로 담근 것을 쓴다고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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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 여주인이 주방에서 상을 보고 있다. 음식 간을 죽염으로 하고 고추장·된장·간장도 죽염제품을 사용한다는 현수막이 주방 앞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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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입구에 걸려있는 ‘인산죽염 사용 음식점’ 표지. 2011년 제1호점으로 받았다. 주인 부부는 음식점을 열기 전 인산죽염 대리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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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 식탁마다 놓여 있는 인산가 3번 구운 생활죽염 통. 2011년 ‘인산죽염 사용 음식점’ 제1호 표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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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은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 오장에 좋다는 한약재 5가지씩 25가지를 넣고 우린 물이 바탕이다. 조리하면서 수삼과 석이가 들어갔다. 들어간 한약재를 물으니 주저 않고 줄줄 섬겼다. 지구자(헛개열매)·유근피(느릅나무 껍질)·갈근·당귀·천궁·백출·오가피·오미자·구기자·산수유·맥아·신곡(법제한 누룩)·사인·복분자·백복령·육계(5~6년 자란 계수나무 껍질)·국화·산조인(멧대추 씨)… 18가지까지 받아 적다가 그만하라고 했다. 중요한 건 약재 물목이 아니라 배합 양이기 때문이다.

대체의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 많은 한약재와 효능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버지 우보 이재희(尤步 李載熙, 1926~1999) 선생은 재야 한약학자였다. 예산농전 교수와 대전고등학교 화학교사를 역임하고, 약사검정고시에 합격해 대전 성남동에서 ‘동일약국’을 오래 경영했다. 양약사지만 한방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해 대한약사한방동호인회 회장을 지냈다. 책도 많이 냈다.『도설한방진료요방』(1977), 『최신한방강좌』(1981), 『이재희 선생의 본초강좌』(1985), 『한방해석』(1986) 등이 현재도 팔리고 있다. 국내 제1호 약학박사로 서울대 약대 교수와 학장을 역임한 홍문화(1916~2007) 선생이 가끔 옥천으로 놀러 와 두 분이 밤새 얘기를 하고 가기도 했다고 이상권씨는 기억했다. 그런 밤이면 아버지 술 심부름 좀 했다고 한다. 집에서 빚은 술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집에서는 약술도 빚고 백숙도 했다. 들어가는 재료들을 어려서 본 것이라 잊어버리고 있다가 어느 날 생각이 나서 아버지께 여쭤보니 알려줬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서 25가지로 정했다. 백숙에 문어와 전복이 들어가는데 아버지는 전복이 없으면 모시조개를 썼고 문어가 없으면 오징어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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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전복백숙의 갈색 국물은 맑지만 맛은 진하고 깊다. 약재가 30가지 들어갔지만 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음식을 개발하면서 맛이 제대로 나올 때까지 닭을 180마리쯤 삶아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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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재가 많이 들어간다고 좋은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인 이상 맛이 있어야 한다. 개발하면서 맛의 조화를 찾느라고 실험을 계속했다. 30차례를 넘어가니까 주변에서 “그만 둬라”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정경제에 부담이 간단치 않았다. 부인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속이고 야외로 나가 돈을 빌려서 거기서도 백숙을 끓여 먹이면서 친구들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지켜보던 친구 한 명은 400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며 “그래도 100만원은 남겨라”라고 했다. 쓰지 않고 돌려줬다. 한번 쓰면 그때까지 버텨온 의지가 무너질 것 같았다. 닭 180마리쯤 연습한 끝에 ‘석이전복백숙’을 완성했다. 그는 말했다. “친구 복이 있어 돈을 빌려 쓰기는 했는데 달라는 말도 안 하고 … 꼭 갚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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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름은 ‘석이멍게숙회’이지만 흔히 부르는 이름은 석이멍게젓갈이다. 석이버섯 추출액과 멍게를 죽염·마늘·과일과 섞어 저온에서 숙성 발효한 다음 급랭했다. 이상권 대표가 40대 말 만학으로 대학 대체의학과에 다닐 때 개발해 2012년 특허를 받은 건강 기능성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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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계속 돌았다. 석이멍게숙회(2만원)가 안주로 나왔다. 고급 멍게젓갈이다. 둥글 넙적하게 얼렸다가 수육처럼 잘라 접시에 펴 담고 구운 김 채를 풍성하게 올려서 내왔다. 멍게에 석이 추출액과 죽염·양파·과일을 넣고 저온 발효했다. 생으로 먹을 때보다 향이 진하고 맛이 깊었다. 바로 밥 생각이 났다. 이씨의 특허품이다. 40대 후반 늦깎이로 대체의학과에 다닐 때 석이 음식점을 하던 터라 거기 꽂혀서 석이 발효를 착상했다. 음식은 궁합이고 음양의 조화이니 산(양)에서 나는 석이와 바다(음)에서 나는 멍게의 조합을 생각했다. 멍게는 비교적 쌌고 먹어도 탈이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신티올 향 말고도 멍게엔 많지만 석이에는 없는 성분(식이섬유, 신티올, 프라스마로겐, 바나듐 등)과 석이가 가진 베타글루칸·코엔자임Q9·10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발효를 해보기로 했다. 1년 연구해 흡광도(吸光度)실험을 하니 항산화효과가 74%이상 나왔다. 그걸로 특허(제10-1207932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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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의 석이멍게젓갈 포장판매 제품. 밥에 계절나물 몇 가지 넣고 들기름 쳐서 젓갈 올려 비비면 멍게비빔밥이 된다.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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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얘기도 못 하고 시장에서 멍게를 사서 이 소금 저 소금 뿌려보고, 통영에 가서 멍게 사서 사람 뜸한 포구에 앉아 석이 달인 물과 소금 섞어 버무려두고 발효가 진행될 때까지 시간 보내느라 산에도 올라가고 바닷가도 기웃거리고 했다. 그러고 돌아와 밥을 비벼 먹어보면 맛이 안 났다. 돈이 없어서 밥은 집에서 싸가지고 갔다. 그러다가 통영에서 멍게 다루는 사람을 만났다. 발효 온도와 시간, 냉동처리 방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대학에 발효실 사용 요청을 했다. 학부생이었지만 만학도가 어렵사리 공부하는 걸 아는 학장의 배려로 발효실을 쓸 수 있게 됐다.

멍게젓갈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석이버섯을 잘게 다져 시럽과 누룩 추출물, 유용 발효미생물균 가루와 섞고 당화, 발효시켜 추출액을 만들고 ▷손질한 멍게의 물기를 제거한 다음 ▷죽염·마늘·양파·과일(배·사과)을 혼합해 하루 한나절 발효한 다음 급랭해 보관한다. 냉동은 발효를 정지시키는 조치다. 발효가 계속되면 멍게가 물러지고 향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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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받은 기술로 만든 멍게젓갈이 넉넉히 올라간 석이멍게비빔밥. 함께 나온 시래기 들어간 집된장찌개 국물을 두어 숟갈 넣고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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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안주 덕인지 술이 계속 당겼다. 술 기운이 온 몸을 도도하게 채웠지만 술이 좋아서 그런지 말이 휘청거리거나 성정이 들뜨지 않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밥이 아니겠느냐”며 멍게비빕밤(8000원)을 내왔다. 밥은 일반미에 흑미를 섞어 지었다. 다음달부터는 해죽순(海竹筍) 삶은 물로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해죽순은 미얀마 바닷가에서 자라는 야자수 순이다. 생김새가 대나무 순을 닮아서 해죽순이라고 부른다. 폴리페놀·비타민E·사포닌 성분이 풍부하고 항염증 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나물이다. 밥에 4가지 나물을 올린다. 주로 계절나물이다. 이날엔 고사리·무채·콩나물·애호박나물이 올랐다. 거기에 김 가루 올리고 석이멍게젓갈 얹은 다음 깨 가루 뿌려서 나왔다. 함께 나온 된장찌개는 집된장에 시래기를 넣고 끓였다. 찌개 국물을 두어 숟갈 떠 넣고 들기름 쳐서 비빈다. 들기름은 옥천 살림집 앞 밭에서 농사지은 들깨로 짰다. 멍게비빔밥에는 고추장을 쓰지 않는다. 멍게 향을 가리기 때문이다. 통영·거제에서 시작된 멍게비빔밥이 몇 년 새 전국으로 퍼져 흔해졌는데, 이 집 멍게비빔밥은 남다른 발효과정을 거친 멍게젓갈이 중심을 잡아 흔한 맛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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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와 여러 가지 버섯, 낙지가 들어간 석이버섯전골은 사골과 해물 육수를 섞어서 써 국물이 시원하고 구수하다.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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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제오리고기에 석이버섯·무말랭이무침·부추를 올려 쌈채나 명이장아찌에 싸서 먹는 석이오리훈제보쌈.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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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석이가 올라간 석이두부김치.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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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사골과 해물 육수로 끓이는 석이버섯전골(3만/4만원), 석이오리훈제보쌈(2만5000/3만5000원), 석이두부김치(1만8000원)가 있다. 식당 안 양조실에서 빚은 석로주·선인탁주(각 1만원)도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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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에서는 강원도 원통에서 채취한 석이를 공급 받는다. 요즘 시세는 정기·대량 구매자 우대가격으로 1㎏에 13만원이다. 석이는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어야 그 기운을 받아 조금씩 자란다고 석이꾼들은 얘기한다. 1년에 직경 1~2mm쯤 자라는데, 상자에 담긴 크기로 자라려면 20~30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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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는 강원도 원통의 석이꾼 고 박성진씨에게 받아 썼다. 그는 2015년 석이를 채취하러 산에 갔다가 실종됐다. 실족 사고였다. 혼자 산에 들어가서 아무도 몰랐다. 아들이 일주일을 산을 헤맨 끝에 발견해 시신을 수습했다. 지금은 아들이 대를 이어 석이를 채취한다. 생전에 그는 주문을 하면 석이를 일일이 솔로 털어서 가지런하게 포개서 박스에 포장해 보내줬다. 요즘은 그런 사람은 없다. 지금도 4kg 우체국택배 상자 하나를 풀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그의 정성과 솜씨를 오래 기억해 증언하고 싶어서 보전하려 한다. 현재 1㎏에 13만원씩 공급 받고 있다. 음식점에서 쓰는 식재료는, 할 수 있으면 생산자에게서 조달한다. 60%쯤은 옥천 살림집 아래 밭에서 재배한다. 나머지는 근교에서 농사 짓는 지인들에게 받는다. 아주 일부만 농산물시장에서 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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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옥각리에 있는 석이원 주인 부부의 살림집 아래 밭에는 여러 가지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식당에서 쓰는 채소와 양념류 60%는 이 밭에서 나온다.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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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로주(특허 제10-1297610호)는 대전에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받은 술이다. 무엇보다 내 입과 몸에 술이 맞았다. 그런데 판로는 거의 확보를 못한 상태였다. 뭔가 돌파구를 열어주고 싶었다. 그의 사업이 성공하고 말고는 둘째 치고, 석로주의 시장 수명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석로주 시음회를 열었다. 열흘 전(18일) 점심에 낙원동 한식집 ‘호반’에 6인이 모였다. 이상권 대표, 국내 최대 전통주 주점 ‘백곰막걸리&양조장’을 운영하는 이승훈·유이진 공동대표 부부, 중앙SUNDAY에 ‘오늘 한잔 어때요?’를 연재하는 이지민 PR5번가 대표, 술 빚는 요리사로 유명한 조성주 ‘한식주점 얼쑤’ 오너셰프와 나. 술에 관해서라면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13도 맑은 술인 석로주가 여러 순배 돌았다. 준비한 3750mL가 바닥났다. 술의 고수들이라 잔이 돌면서 깊이 있는 의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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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낮 12시 서울 낙원동 한식집 ‘호반’에서 내로라하는 애주가들이 모여 석로주 시음회를 열었다. 3명은 2015년 주류박람회 때 마신 석로주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술 맛이 많이 좋아졌다는 평을 들었다. 왼쪽부터 유이진·이승훈 백곰막걸리&양조장 공동대표 부부, 이상권 대표, 나, 이지민 PR5번가 대표, 조성주 한식주점 얼쑤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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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대표: 우리 맑은 술(약주) 중 이런 술이 많지 않다. 대다수가 너무 달거나 씁쓸하거나 한데 이 술은 그런 게 없다. 첫 맛이 싸한 게 표고솥밥에 달래간장 넣고 비벼서 이 술을 반주로 먹으면 좋겠다. 바솥 뚜껑 열 때 올라오는 버섯 향이 느껴진다. 짠 음식, 향이 강한 것과는 맞지 않겠다. 육회에 올린 배 채와 먹으니 시원함이 확 퍼진다. 달고 상큼한 과일 안주와 잘 어울릴 듯하다. 간장으로 양념한 닭찜·불고기·갈비찜, 버섯샐러드나 채소찜 같은 채소 음식, 사찰음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음식과 잘 어울려 계속 손이 간다.

▷이승훈 대표: 지금 이 술 맛이 좋다. 2년 전 주류박람회장에서 맛봤을 때는 약재 맛이 튀어 부담스러웠는데 부드러워졌고 숙성된 맛이다. 그때는 마시면 탁 치고 올라오는 맛 때문에 대중성 확보 문제가 불안했다. 이 정도면 한식과 잘 맞겠다. ‘호반’ 순대랑 잘 어울린다. 오래 마실 수 있는, 물리지 않는 술 맛이다. 예전보다 대중성이 많이 넓어져서 다행이다. 이번 주부터 백곰 주점에서 판매를 시작하겠다.

▷유이진 대표: 맛이 잔잔하고 부드럽다. 손님들이 달거나 신맛을 좋아하는데 중간 맛의 우리 술을 찾으면 마땅한 답이 없다. 이 술은 은은하고 입에 붙어 그런 손님에게 권하면 좋아하겠다. 요리안주랑 함께 먹기에 좋다. 우리 음식과 잘 맞는다. 마실수록 매력이 있다.

▷조성주 셰프: 처음엔 밋밋하더니 좀 더 마시니 은은한 향이 올라온다. 주질이 나쁘지 않다. (※그는 아마추어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황금빛 오양주를 빚어내는 고수다.) 향이 좀 있는 식재료로 만든 안주가 좋겠다. 요리안주 종류와 궁합이 맞겠다. 한국 가양주의 문제들을 많이 해결한 술이다. 여러 병 마실 수 있겠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술이다. ‘얼쑤’에도 들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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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버섯을 넣고 술을 빚어 45일 동안 세 번을 익히고 걸러서 3개월을 더 저온 숙성한 13도 맑은 술 삼양주인 ‘석로주 순’. 모든 생산과정을 손으로 하는 수제품이다. [사진 석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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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대표: 초기 석로주의 레시피를 바꾸고 당도는 낮췄다. 2015년 주류박람회 때는 단맛이 더 있었다. 술 이름도 ‘석로주 純’으로 다르게 했다. 석이는 삽(澁)한 맛이 있다. 떫은 듯도 하고 매운 기운 같기도 한 맛이다. 주류박람회 때 이 맛 때문에 전통주 품평가들이 술은 좋은데 약 냄새 난다고 싫어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원재료 성질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없애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는다. 발효와 부패의 경계에서 맛이 나오듯 음식과 약의 경계에 보신음식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내 술도 그렇다. 술을 빚으면서 한 독을 거를 때마다 두 되는 맛을 본다. (※그는 엄청난 대주가다.) 칼칼한 것과 석이는 안 맞더라. 돼지고기도 안 맞는다. 석로주는 석이와 30여 가지 생약초를 누룩·찹쌀과 배합해 45일간 3단 발효한 다음 산죽·솔잎 청을 가미해 3개월 이상 저온 숙성해 빚는다. 누룩은 송학곡자 제품에 자가 누룩을 좀 섞는다. 옥천에 사는 장모님이 메주 솜씨가 좋은데 부탁해서 누룩을 조금씩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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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로주를 아끼는 안문영 충남대 교수가 술 맛을 보고 임진년(2012년) 한 여름 보름 만에 지어서 써준 ‘석로주가’ 액자가 음식점 벽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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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61년 음력 12월 16일(호적엔 1962년 2월 1일) 대전 대흥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기계체조를 했다. 체육중학교 진학이 확정된 6학년 2학기에 전국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경희대 체육관에서 열린 경기 중 고난도 기술을 시도하다 회전을 과하게 해 거꾸로 떨어지면서 잘못 디뎌 오른팔이 완전히 꺾였다. 지금도 오른팔로는 힘든 일을 하지 못한다. 지체장애 6급이다. 이후 공부와는 사귀지 못했다. 중·고등학교를 무얼 하며 다녔는지 기억이 없다.

1980년 순천향대 물리학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전두환씨와 신군부가 정권찬탈 작전을 강행할 때다. 5월에 광주민주화투쟁이 벌어졌다. 충청도 대학가도 조용하지는 않았다. 시위에 열심히 쫓아다녔다. 대학마다 장갑차가 진주한 후 얼마 안 있어 강제징집 영장이 날아왔다. 학교에서는 제적됐다. 제대 후 취직했지만 불법·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때문에 회사와 마찰이 잦았다. 2년여 만에 회사를 나왔다.

1986년 부모님이 사는 옥천에서 사슴목장을 시작했다. 당시 사슴목장은 축산업이 아니라 특수가축으로 분류됐다. 사슴은 잘 자라고 목장도 나날이 커가던 1988년 4월 17일 동네 아주머니 중매로 한 마을 큰애기와 결혼했다. 사슴은 1마리에서 시작해 67마리까지 늘었다. IMF 외환위기의 광풍이 지나갈 무렵인 1990년대 말 사슴 부제병(腐蹄病; 발굽을 통해 감염하는 염증성 병)이 돌았다. 도살처분을 해야 했다. 보상금으로 시세 1500만~1700만원짜리 엘크 사슴은 180만~200만원, 150만~200만원 하던 꽃사슴은 10만~20만원을 받았다. 어린 꽃사슴은 5만원을 받기도 했다. 10%도 건지지 못했으니 도산이었다.

아이들과 살기 위해 대전 송촌동으로 나가 건강원을 차렸다. 2002년께부터 홍삼·인산죽염 대리점을 하면서 건강식품을 팔았다. 그게 인연이 돼서 2005년 전주대 대체의학과 1기로 입학했다. 녹음 테이프로 수업을 반복해 들으며 대전에서 전주까지 통학했다. 40대 초반의 만학이었지만 189명 중 1학기 수석, 2학기 차석을 했다. 그러나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기 어려워 1년만에 휴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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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은 건물 2층 260.86㎡(79평)를 모두 쓴다. 대부분 음식점이고 그 중 일부를 ‘석이원주조’가 사용한다. 술을 연구하고 빚는 공간인 ‘석이원주연재’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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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주조의 연구실 겸 실험실이자 이상권 대표의 공부방. 벽에는 특허증·제조허가서·영업신고서 등 각종 증명서가 걸려있다. 벽으로 나뉜 옆 칸은 석이원 음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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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하고 2년을 쉬면서 술 빚기에 도전했다. 쌀이 없어서 자원봉사 활동을 가서 현장에서 남는 밥을 얻어다가 술을 빚기도 했다. 빚으면서 술을 파는 음식점을 생각했다. 2008년 계룡산에 석이 전문음식점 ‘석이원’을 처음 차렸다. 음식점을 하겠다 하니 지인이 석이를 알아보라고 권했다. 지리산 자락 함양군 마천에 찾아갔다. 동네 할머니가 석이볶음을 만들어 팔고(현재도 함), 석이꾼 한 사람은 석이염소불고기를 해서 팔고 있었다. 비싼 게 흠이지만 맛은 매력 있었다. 자료를 검색해 유사업종이 있는지 알아봤다. 석이 전문음식점은 없었다. 주변에선 “망한다”며 말렸지만 동학사 119안전센터 옆에 19평 음식점을 냈다. 대전은 공무원 도시라 음식점 사업하기 너무 어렵다고 대전 사람들은 한탄한다. 대전서 성공하면 전국 어디를 가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음식점을 시작한 2008년 대학에 복학했다. 자연치유 관련 발효음식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멍게 발효 프로젝트를 맡아 1년간 수행하고 제품 개발도 했다.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 11월 석이버섯을 이용한 멍게 젓갈 특허를 받았다. 생애 첫 특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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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원 카운터에는 석로주·석이멍게젓갈·아로마 등 이상권 대표가 생산하는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현장 판매도 하고 택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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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앞 음식점은 성과는 좋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2008년 7월 시작해 2010년 1월 자리를 내줘야 했다. 계룡대와 가까운 한적한 시골이어서 군인들이 많이 찾아줬다. 매상 100만원 넘는 날이 월 15일은 됐다. 장사가 잘 되니까 건물주가 월세를 올렸다. 빚도 많은데 임대료까지 올리니 안 되겠다 싶어 대전으로 나가기로 했다.

신도시 중심인 탄방동으로 진출했지만 주차장이 없어서 곤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장애등급 판정을 받아 2012년부터 중기 인큐베이팅 지원(점포 지원 분야)을 받게 됐다. 1억2000만원을 5년 무이자로 융자해주는 조건이다. 응모 서류를 8~9번이나 수정해 신청했는데 뽑힌 25명 가운데 최우수 사례로 평가 받았다. 그 덕에 2012년 7월 1일 현재 위치로 음식점을 옮겼다. 그로부터 1년 정도는 비록 빚더미 위에서였지만 승승장구했다. 석이원 매출은 늘었고, 신제품도 연달아 나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공무원 도시 대전의 소비심리를 완전히 얼어붙게 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사람 많은 곳을 누구나 기피해 집객업소 타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2016년 9월 김영란법 시행은 카운터 펀치였다. 전반적으로 음식점 경기는 그로기 상태가 됐다. 개발한 제품들은 ‘형장의 이슬처럼’(이상권씨 표현) 사라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었다. 올해 6월 말로 무이자 융자는 끝났다. 천신만고 끝에 올 7월 1일부터 신용보증기금 지원을 받아 빚을 내서 겨우 연명은 했다. 그는 “정말 용 쓰는 거죠. 너무 어려워요”라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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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대표가 석이주 발효실에서 술에 들어가는 한약재를 보여주고 있다. 오장에 좋은 약재 5가지씩 25가지가 들어간다. 하얀 포가 덮인 항아리에서는 술이 익고 있다. 독 하나는 시험적으로 석탄주(惜呑酒; 향이 좋아 삼키기 안타깝다는 이름의 술)를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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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하면서 시작한 석이버섯 발효주 연구는 계속했다. 술 빚는 일을 가장 처절하게 했고 진척도 많았다. 물은 옥천 집에 판 지하 287m 암반수를 사용한다. 관정을 뚫을 때, 파도 파도 물이 안 나와 시공업체서 중단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나절만 더 파보자 애걸했다. 그날 밤, 돌아가신 아버지가 처음으로 현몽해 “저기를 파면 물이 나올 텐데 바보같이 엉뚱한 곳만 파고 있다”고 야단을 쳤다. 꿈에 나온 곳을 한나절 더 팠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일하던 사람들이 장비를 수습해 떠나려는 걸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1m만 더 파보자고. 조금 더 파자 물이 콸콸 솟구쳤다. 물 맛이 기가 막혔다. 그 물을 길어다가 술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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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로주 발효실에서 이상권 대표가 술 빚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발효실에서 세 번 익혀서 걸러 별도의 저온창고에서 3개월 더 숙성해야 술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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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서 익어가고 있는 석로주.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것이 석이버섯이다. 술이 익을수록 석이는 서서히 녹아서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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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마음에 들게 나올 때까지 그는 술독 두 개를 깨부쉈다. 하나는 아내와 다툼 끝에 모든 걸 그만두겠다는 심정으로 그랬고, 다른 하나는 술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제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망치를 휘둘렀다. 깰 때는 스트레스가 좀 풀렸을지 모르지만 뒤치다꺼리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충분히 활성화된 술독의 미생물들이 발효실 곳곳에 스며들어 곰팡이로 들고 일어났다. 닦고 말리고 소독하고 … 그걸 진정시키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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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멍게젓갈과 석이술 제조방법과 제품을 특허등록원부에 등록했다는 특허증이 나란히 걸려있다. 2012년 12월과 2013년 8월에 각각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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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을 뚫고 그는 2013년 8월 석이버섯 발효주 특허를 받았다. 쇠뿔도 단 김에 뺀다고 2013년 3월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에 진학하고 푸드테라피를 전공해 2015년 8월 보안대체요법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 제목은 「석이버섯을 이용한 전통발효주 개발에 관한 연구」. 뚝심으로 난관을 뚫고 쌓은 공든탑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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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술 특허를 받은 2013년 이상권 대표는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에 진학해 ‘석이버섯을 이용한 전통발효주 개발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2015년 8월 보완대체요법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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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에서 2014년 이상권 대표에게 수여한 전통주(석이주) ‘한국무형문화유산 명장증’. 석이주 특허를 받은 지 7개월 뒤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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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받침은 아내 몫이었다. 옥천 사슴농장 도산하고 건강원 시작할 때 아내는 “너무 좌절하지 말고 뭘 해도 내가 뒷바라지해줄 테니 공부하라”고 격려했다. 우송대 영어회화과정을 1년 다니고, 2007년에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전통문화지도사 과정을 배우러 다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술에 빠져 삐뚤어질 것 같았다. 생각조차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공부하러 서울 가면 헌법재판소 옆 포장마차에서 어묵꼬치 2개에 국물만 잔뜩 마셔 저녁을 때웠다. 서울역 순대국밥도 비싸서 사 먹지 못할 만큼 어려웠다. 그때 아내가 고생 많이 했다. 겉으론 티격태격하지만 암암리에 지원해주고 지탱해주고 … 그 시절 공부를 밑천으로 요즘은 대전 문화유산답사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가 답사회(스카우트연맹 대전자모회) 회장이다. 해설 도와주는 걸로 신세를 갚는 셈이다.

그가 술을 빚는 것에만 빠져있는 건 아니다. 우리술 문화을 연구하고 대전 지역에 전파하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내일 오후 4시부터 석이원에서 향음주회를 연다. 행사 이름은 제2회 석로주와 함께 하는 전통주 문화 이야기. 향음주회는 1000년 넘게 이어진 전통사회의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현대사회에 적용해 술을 나누며 관심사를 논의하는 모임이다. 석탄주 맛보기, 우리술 빚기 체험, 근대 우리술 문화(대폿집 이야기) 강의 등이 진행된다. 참석 문의는 이상권 대표(010-7660-6688).

이런 일들을 하려면 알아야 하니 그 분야 공부를 꾸준히 했는데, 10년 전에 수강한 일을 잊지 않고 얼마 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통문화지도사 시험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지난달 말 시험 날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지난 6일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낙원동에서 시음회(18일)를 마친 그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멀지 않으니 합격증(전통문화지도사 자격증)을 수령해 대전으로 가겠다며 작별을 고했다. 걸어가는 뒷모습에 신바람이 일렁거렸다. “술로 번 돈은 한 푼도 없어요, 아내는 ‘언제나 빛 보느냐’고 묻는데 유구무언이지요”라며 풀이 죽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곧 빛을 볼 것 같다는 기대와 함께.

음식점 영업시간은 매일 오전 11시30분~오후 9시이고, 일요일엔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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