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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삶은 있는 그대로 가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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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일본만화 '보노보노'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

매일경제

"조개를 전부 먹어버렸어."(보노보노)

"그게 왜? 뭐가 곤란해?"(너부리)

"먹을 게 떨어져서 나중에 곤란해질 거야."(보노보노)

"나중에 곤란한 일을 왜 지금부터 곤란해해?"(너부리)

호기심만큼 겁도 많다. 유일한 장점은 참을성. 하늘색 동그란 얼굴에 조금 멍한 표정으로 숲속 여기저기를 탐험하는 보노보노는 아기 해달이다. 숲속 친구들은 이런 보노보노를 답답해하면서도 기꺼이 돕는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솔직하고 순수하다. 솔직함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순수함은 인생의 이면을 비춘다.

귀엽고 단순한 그림체에 깃든 만화의 따뜻한 위로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1986년에 시작해 31년째 연재 중인 네컷만화 '보노보노'는 일본에서만 10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한국에서도 작년 11월부터 3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투니버스에서 방영돼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대화 중 우리 삶에 위로가 되는 주옥 같은 문장들을 적은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현재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8위에 올라 있다. 화장품회사 '어퓨'는 올여름 보노보노 에디션을 출시했다. 또, 서울머천다이징컴퍼니가 라이선싱을 2006년부터 확보해 의류와 문구류 등에 선보여 온 보노보노는 한국에서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민 캐릭터'다.

만화는 아주 느릿느릿 흘러간다. 대사 한마디 없는 컷도 많고 보노보노가 고민하는 모습만 수십 컷에 걸쳐 그려지기도 한다. '빨리빨리'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로운 보노보노의 일상은 곧 '힐링'이다.

"저 자신은 사실 굉장히 서두르는 타입이에요.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생활하는 보노보노는 사실 저의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도 그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보노보노'의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62)의 말이다.

이가라시는 다섯 살 때부터 만화가를 꿈꿨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백수로 지내다 인쇄소 등을 전전하던 중 1979년 만화잡지 '천재클럽'을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이었다. 스케줄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 2년간 펜을 놓았다. 생활비가 거의 바닥났을 무렵 TV에서 해달 한 마리를 보게 됐는데 배 위에 조개를 올려두고 느긋하게 돌멩이로 깨서 먹는 모습이 그를 매료시켜 버렸다. 보노보노의 탄생이었다.

작지만 고집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포로리, 직설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쉽게 상처 받는 너부리, 참을성 많고 순수한 보노보노. "사실 이 셋 모두 제 안의 다른 모습들이죠. 방금까지는 보노보노였는데 지금은 너부리 모드인 것 같습니다.(웃음)"

김신회 작가는 "대단한 꿈 없이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어릴 적 기대엔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기만 하진 않는 사람들, 가끔 의욕이 없고 게을러 보이는 사람들….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별하게 씩씩하거나 밝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가라시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무엇이 되고 싶어 하거나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필요 없어요.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일입니다. 너무 열심히 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삶은 있는 그대로도 가치가 있으니까요."

애독자들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 바로 '보노보노의 엄마는 어디 있을까'다. "보노보노 엄마 이야기는 원래 마지막 화로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41권에서 그려 버렸습니다. 한국에도 곧 출간될 테니 독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겠네요. 내용은 비밀입니다.(웃음)" 한국에서는 21권까지 발매된 후 출판사 사정으로 잠정 중단됐다가 작년부터 거북이북스에서 재발행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는 42권까지 출간됐다. 벌써 서른한 살을 먹은 보노보노의 마지막은 언제일까. "30년 넘는 인기 예상 못했어요. 마지막 이야기를 써 버렸으니 앞으로 제가 펜을 들 수 있는 순간까지 보노보노도 함께 살아가겠죠."

[김연주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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