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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름 서점가, 일본 소설 열풍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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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베스트셀러 10권 중 5권 차지... "독자군 세분화 강세 계속"

한국일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소설 코너에서 한 고객이 일본 소설 하나를 골라 보고 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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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점가에 일본 소설 바람이 불고 있다. 5년 만에 장편을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필두로 히가시노 게이고, 요시다 슈이치, 도리미 도미히코 등 인기 일본 작가들의 여러 소설이 쏟아지며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열리면 일본 소설 열풍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일본 소설 열풍은 여러 수치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일본 소설은 출판 판매 시장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 상위권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가 집계한 상반기 베스트셀러 소설 분야를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1위),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위)을 비롯해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0권 중 5권이 일본소설이다. 일본 소설은 교보문고에서만 지난해 11.8%, 올해 44%의 판매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1권(5위) 등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집계 기간 1월 1일~7월 24일) 10권 중 4권이 일본 소설이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일본 소설 판매량은 46%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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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찾아오는 일본 소설 열풍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소설은 국내 전체 소설 판매량의 20~24%를 꾸준히 차지해왔다.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는 영미권 소설과 2,3위를 다퉈왔다. 국내 일본 소설 열풍은 2000년대 중반 시작됐다. 양수현 문학동네 해외문학팀 차장은 “2000년대 초중반 일본 소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당시 국내 소개되지 않았던 양질의 작품이 선별돼 들어왔다”며 “질적인 면에서도 만족할만한 작품이 많아 (일본 소설) 유행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이후 대략 5년 주기로 일본 소설 열풍이 서점가에 몰아쳤다. 하루키 신작 출간과 동일본 대지진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새 작가, 작품이 일제히 소개되며 2000년대 중반 일본 소설 열풍을 이끌었다면 이후에는 하루키의 신작이 열풍을 좌우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소설 판매량 중 일본 소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20%를 돌파한 후 21~23% 사이를 오가다 ‘1Q84’가 출간된 2010년 24.7%로 정점을 찍었고 2011년 19.8%, 2012년 18.7%로 뚝 떨어졌다. ‘기사단장 죽이기’가 출간된 이달만해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일본 소설 판매신장률이 103.7%에 달한다.

양수현 차장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 소설 인기가 떨어졌다가 2,3년 전부터 회복되고 있다”며 “국내 세월호 참사처럼 사고 직후 이렇다 할 신작이 없다가 문학으로 승화하려는 작가들의 시도가 잇달았고, 일본 경기가 좋아진 게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영미 유럽 놔두고 왜 일본이 더 인기?

일본 소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출판계 관계자들은 해외 소설 시장 자체의 성장을 우선 꼽는다. 김영정 현대문학 기획이사는 “20~30대 독자는 예전보다 훨씬 외국 문학에 익숙한 세대”라며 “외국 소설의 플롯, 언어, 배경 지식에 예전보다 훨씬 익숙해 한국 소설보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외국 소설에 높은 흥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일본 소설의 강점은 장르별로 확실한 독자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양수현 차장은 “2000년대 초반에는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 대중문학 작가들이 인기를 모으다 추리, 미스터리물이 소개되며 저변이 넓어졌다”며 “국내문학이 소화 못하는 장르”라고 말했다. 일본이 영미나 유럽권에 비해 정서적으로 더 공감하기 쉬운 국가이고 실시간에 가깝게 빨리 번역되면서 공감대 형성이 크다는 점도 강세의 요인으로 꼽힌다. 양 차장은 “애니메이션 같은 하위문화의 영향을 받은 세대가 라이트 노벨(가벼운 장르 소설)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일본 소설 시장이) 커진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작가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비슷한 지명도의 해외 작가라도 일본 작가의 번역 판권료가 더 높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선인세가 30억원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외로 치더라도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내는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의 판권료는 1만~10만 달러(1,100만원~1억 1,000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엇비슷한 인지도를 지닌 영미, 독일어, 프랑스어권 작가들의 판권료가 1만~3만 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가격대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서구 영미작가는 독점 에이전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일본은 같은 작가라도 출판사, 에이전시를 여럿 두고 있어 무차별로 판권 계약 경쟁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일본 소설의 강세는 당분간 쉬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정 이사는 “작가 중심 서구와 달리 일본은 세분화된 장르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독자층이 형성된다”며 “미스터리도 본격 미스터리, 사회파 미스터리 등으로 나뉘어 연령별로 독자층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나이를 먹는 출판시장의 특징을 감안했을 때 독자군이 성별, 연령별로 고른 일본 소설 시장은 한동안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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