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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567명이 한 사람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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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화상입은 김기현씨 위해 중동고 동문 1억3000만원 모아

2016년 5월 서울 강남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이 모두 탔을 정도로 큰 불이었다. 집에는 뇌염으로 투병 중이던 김기현(26)씨가 있었다. 부모님은 잠시 집을 비운 상태였다. 공대생이던 김씨는 2011년 뇌염에 걸려 5년 동안 투병 생활 중이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땐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약 기운 때문에 덮쳐 오는 불길을 제때 피하지 못했다.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온몸에 중증 화상을 입었다. 김씨는 14번의 피부 재건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두 다리와 왼쪽 팔, 오른쪽 손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의료진은 "아침에 병실에 가면 김씨가 살아 있을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했다. 5개월 동안 혼수상태를 헤매다 깨어났다. 김씨는 14차례 수술을 견디며 재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 모습이 지난 5월 EBS 다큐멘터리에 방영됐다. 이 방송을 그의 고등학교 친구가 우연히 봤다.

조선일보

지난 5월 김기현(왼쪽에서 셋째)씨가 입원한 병실을 고교 친구들이 찾았다. /중동고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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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동고 104회 동기인 노재상(26)씨가 총동문회 사이트에 김씨의 사연을 올렸다. 이를 접한 중동고 총동문회는 7월 한 달 동안 대대적인 모금 운동에 나섰다. 우이형(63) 총동문회장은 "지금 고통 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재기를 꿈꾸는 후배를 위해 선배들이 나섭시다"라고 했다.

중동고 동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모금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6500만원이 모였다. 25일까지 567명의 동문이 총 1억3000여만원을 보냈다.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후배를 위해 익명으로 1000만원을 보낸 동문도 있었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선배들도 소액으로 모금에 동참해 후배를 응원했다. 후배를 위한 성원은 국외로도 이어졌다. 뉴욕 동문회, 베트남 호찌민 동문회에서 성금 모금 운동에 나섰고, LA동문회는 8월 6일 200여명이 참가하는 바자회를 열어 후원금을 모을 예정이다.

최근 김씨는 활기를 되찾았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을 만나면서 재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매일 재활운동 시간만을 기다리고, 태블릿 PC를 이용해 전공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김씨는 최근 병동을 찾은 친구들에게 "다시 너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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