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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靑과 주파수 맞추는 기업들 “협력업체 지원-비정규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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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27일 재계 간담회]대통령 면담 앞서 ‘상생 방안’ 쏟아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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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LG디스플레이를 시작으로 26일 삼성디스플레이까지, 최근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주일여 간격으로 2, 3차 협력업체 지원을 위한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포문은 LG그룹이 열었다. LG디스플레이가 400억 원 규모이던 1차 협력사 전용 기술협력자금을 1000억 원으로 늘려 2, 3차 협력사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자 이틀 뒤 현대·기아차도 1500억 원을 들여 2, 3차 협력사 전용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SK그룹은 25일 4800억 원 규모로 운영하던 ‘동반성장펀드’를 6200억 원 규모로 늘려 1차 협력사 외에 2, 3차 협력사들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대화’를 하루 앞둔 26일 2000억 원 규모의 ‘물대지원펀드’를 만들어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이 줄지어 내놓은 상생협력 자금 규모는 그룹 자산 순위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과제를 요구하면 전경련 회원사들이 재계 순위별로 암묵적 비율에 따라(삼성이 2이면 현대차가 1.2, SK가 1, LG가 0.8) 자금 지원을 발표하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정권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안테나를 한껏 세우고 있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가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난 자리에서 2, 3차 협력업체 지원을 요구한 것이 기업에 주는 메시지라고 해석하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의 간담회에서 1차 협력사에 대한 지원은 잘 이뤄지고 있는데 2, 3차에 대한 지원이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와 급하게 지원책을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B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5월에 2차 협력사에도 전액 현금으로 결제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 최근 일자리위원회 간담회 자리에서 긍정 사례로 평가받았다”고 덧붙였다.

상생협력 외에 정부가 재계에 제시한 또 다른 과제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는 CJ그룹이 ‘응답’했다. CJ는 26일 그룹 내 방송 제작, 조리원 직군 등 간접고용 중이던 3008명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 회장이 27일 대통령과의 만남에 참석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루 전날 일자리 정책을 발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상생 협력 방안을 쏟아내는 데 대해서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주요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정부의 자연스러운 통치행위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동시에 정부가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하면 기업들이 ‘알아서 성의껏’ 줄서야 하는 악습이 여전하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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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관계자는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먼저 내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새 정부가 요구하는 사안인데 어느 누가 거스르려 하겠느냐”고 했다. 고질적인 정권 눈치 보기라는 얘기다. 또 다른 4대 그룹 임원은 “기업은 하라고 하면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난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라고 할 때에도 처음엔 취지가 좋으니 일단 내자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일방적 메시지를 따라야 하다 보니 기업별 주력 업종 및 사업구조와 무관한 상생방안을 마련하는 경우도 문제다. 4대 그룹 관계자는 “그래도 지난해 창조경제센터는 각사의 전문성을 살려 지원할 수 있게 해줬는데 이번에는 2, 3차 협력사 지원 방안을 계열사별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이전 정권들에서도 ‘고졸 채용’ ‘시간선택제’ 등 새 키워드가 제시될 때마다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업종 특성상 해당 고용 정책이 전혀 맞지 않는데도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채용공고를 내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 한 대기업에선 경력단절여성 채용이라는 정부의 과제를 풀기 위해 소프트웨어 전문직 분야의 경단녀 채용공고를 여러 번 냈는데도 지원자가 거의 없어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27, 28일 열리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등을 허심탄회하게 청취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과 법인세 증세 등에 대한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핵심 경제기조로 내세운 일자리 중심 경제, 소득 주도 성장 등을 위해선 대기업의 협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 지원을 통한 상생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경제철학이다.

다만 과거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대기업에 노골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조한 청와대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민간기업의 문의가 많으니 원론적인 방향이라도 전달하자”는 참모진의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정부가 민간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김지현 jhk85@donga.com·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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