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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알 권리와 인격권 사이… 선고 장면만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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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주요 재판 선고 TV중계"]

"사법부 신뢰 높이는 계기" "재판 진행 차질 빚을 수도"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격론

美 50개주·영국·호주선 허용, 독일·프랑스·일본에선 불허

한국당 "인민재판하겠다는 것"

대법원이 주요 재판의 1·2심 선고를 TV 생중계하기로 결정하면서 법원 안팎에선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우선 판사들이 판결문을 일반인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법원 판결문은 그동안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 '숨 넘어가는 판결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법원은 선고 생중계 결정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확대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생중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2년 "사회적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사건 등에 대해선 재판 전체를 TV로 중계해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대법원은 공청회 등을 열어 생중계의 범위 등을 논의해왔다. 헌법재판소가 올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 장면을 TV로 생중계하고 좋은 반응을 얻자 대법원의 논의도 한층 탄력을 받았다. 대법원이 지난달 전체 판사 29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국민적 관심이 큰 재판의 1·2심 선고는 TV 생중계를 허용하자'는 응답이 73%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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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25일 1·2심 판결 선고를 TV로 생중계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 장면도 생중계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지난 5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가 재판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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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재판 생중계가 어려웠던 것은 피고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생중계에 찬성하는 쪽은 사법부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반대하는 쪽은 피고인 등에 대한 내밀한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될 수 있고, 생중계에 대한 부담으로 재판 진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해왔다.

이번 대법관 회의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논의 끝에 ①생중계 범위를 판결 선고로 한정하는 방안 ②최종 변론(결심)까지 해보자는 방안으로 좁혀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20일과 25일 이틀간 대법관들이 격론을 벌인 끝에 논란이 가장 적은 선고만 중계하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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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재판 생중계 범위는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미국은 워싱턴 DC를 제외한 50개 주(州)가 원칙적으로 생중계를 허용한다. 다만 연방대법원을 포함한 연방법원들은 영상이 아니라 변론을 음성으로 녹음한 파일을 재판이 끝난 뒤에 공개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은 재판의 전 과정을 생중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마찬가지다. 반면 독일·프랑스·일본은 재판 생중계는 허용하지 않고 첫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정 모습을 촬영하는 정도만 가능하다.

1·2심 선고 생중계 허용으로 법조계 안팎의 관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쏠리고 있다.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선고는 각각 10월과 8월 중에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재판 생중계 허용은 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판장이 '공익적 필요가 있는 경우' 직권으로 할 수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와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가 판단할 문제라는 얘기다. 두 사람의 재판이 국민의 관심이 큰 사건이라는 데 대해서는 법원 내부에 큰 이견이 없다. 따라서 선고 생중계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선고 장면을 생중계하더라도 피고인의 얼굴은 나오지 않게 하고 재판장의 모습만 나오도록 운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걸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논평에서 "생중계 허용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사법부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이 여론재판, 인민재판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인민재판을 벌써 한 번 받았는데, 다시 (재판 선고를) 공개해서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자기들이 쫓아내고, 집권하고 할 거 다했는데 이제 또 (탄핵당한 대통령) 시체에 칼질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검찰은 "변호인이 (법정에서) 휴대폰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여줬다고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유영하 변호사는 "선고 공개 여부에 대한 뉴스를 공동 변호인이 잠시 보여준 것 같다"며 "실수였다"고 설명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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