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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백제 무왕·선화공주 무덤의 실체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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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내달 익산 대왕묘 발굴

세계일보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가 쌍릉 중 대왕묘 발굴에 착수해 7개월간 조사가 이뤄진다. 1917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쌍릉을 발굴한 이후 100년 만이다.

쌍릉은 익산 북동쪽 석왕동 작은 숲속에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한 2기의 무덤이다.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지름 30m, 높이 5m),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지름 24m, 높이 3.5m)로 불린다. 무덤은 모두 원형 봉토분이며, 내부 구조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같은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돼 있다.

고려사 금마군조(金馬郡條)와 세종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는 쌍릉이 무강왕(武康王)과 비(妃)의 무덤으로 기록돼 있다. 대왕묘는 무왕, 소왕묘는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해 1월 일제강점기 쌍릉 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 같은 통설에 의문이 제기됐다.

세계일보

국립전주박물관은 대왕묘 목관 내부에서 추가로 찾아낸 치아 4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닳은 정도가 비슷하고 중복된 부위가 없어 한 사람의 치아일 가능성이 크다”며 어금니와 송곳니는 20∼40세 여성의 치아라고 밝혔다.

또 대왕묘 석실 내부 목관 앞에서 발견된 적갈색 연질 그릇 형태에 대한 조사에서도 백제 토기가 아니라 7세기 전반의 신라 토기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당시 백제 지역에서 유행한 바닥이 편평한 회색 계통의 그릇과 다르고, 경주 방내리 고분군 등 신라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 토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계 일각에서는 대왕묘의 피장자가 여성이므로 무왕의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제 무덤에서는 이례적으로 신라 토기가 출토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대왕묘의 주인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치아와 함께 발견된 비단 ‘위금(緯錦)’ 직물은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된 것보다 1세기 앞서며,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왕묘에서는 금송(金松)으로 제작된 대형 목관과 함께 나무 베게로 추정되는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파손이 심해 전체적인 형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나무 베개와 같은 유물로 추정됐다. 목재 편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결과 백색 안료 바탕에 묵서(墨書)로 그린 넝쿨 무늬를 확인했는데, 전체적인 모양은 639년에 조성된 미륵사지석탑(서탑) 출토 금동제 사리 외호의 문양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이수정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조사 당시에도 이미 도굴된 상태여서 잔여 유물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쌍릉 피장자의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유물 수습과 무덤 축조 방식 등을 자세히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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