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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결혼, 강간 면죄부 아니다"…레바논 악법폐지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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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522조' 폐지 움직임 확산

뉴스1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의 코니쉬 해안가에 줄에 묶인 웨딩 드레스 수십벌이 전시돼 있다. 이는 강간범이 강간 피해자와 결혼할 경우 기소 면책권을 주는 '형법 522조' 폐지를 촉구하는 비정부기구(NGO) 아바드의 여성 인권 캠페인이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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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진 기자 = 레바논의 아름다운 코니쉬 해안가에 수십벌의 웨딩드레스가 등장했다. 드레스들은 마치 교수형에 처한 사람처럼 줄에 매달린 모습이다. 수도 베이루트에는 피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판이 등장했다. 광고는 "순백의 드레스가 강간을 감추진 못한다"고 전한다.

레바논에서 강간범에게 면죄부를 주는 악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모로코와 요르단에 이어 레바논에서도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문제의 악법은 '형법 522조'다. 이 조항에 따르면 강간 가해자는 피해자와 최소 3년간 결혼 관계를 유지하면 기소를 피할 수 있다. 여성의 순결을 가문의 명예로 여기는 레바논에서는 강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오히려 추문과 위협의 대상이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사법당국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결혼을 조언하는 일도 은밀하게 일어난다.

가해자와 결혼해도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일어난다. 레바논의 바스마 모하마드 라티파(22·여)는 3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과 결혼했으나 가정폭력을 견딜 수 없어 이혼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라티파는 지난 6월 자택에서 전 남편의 총에 맞아 살해됐다.

문제가 불거지며 레바논 의회에서도 형법 522조 폐지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의회는 빠르면 올 여름 폐지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폐지 찬성 측을 이끄는 와파 바니 무스타파 의원은 단 하나의 변화가 사회 규범들을 바꿀 수 있다며 "법안 폐지 없이는 면죄부가 지속되고 가족의 이익이 피해자의 권리를 우선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인권 단체들도 가세했다. 여성 인권 단체인 아바드는 코니쉬 해안가에 목을 매단 웨딩드레스를 전시해 이를 비판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 단체인 카파는 폐지안 통과가 '도덕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교육 확대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집단 행동이 중동 국가 내 유사 악법 폐지 움직임을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모로코는 관련 법안을 지난 2014년 폐지했고 요르단에서는 지난 4월 왕실 사법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관련법을 폐지하는 정부안이 발의됐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 중동 지역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법을 시행하는 국가가 많다.

터키에서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강간 혐의로 기소된 남성 가운데, 피해자와 결혼하고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은 3000여명을 상대로 무죄를 검토한다고 제안해 논란을 빚었다. 바레인에서는 의회가 지난해 유사 법안의 폐지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행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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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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