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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디 오픈 우승 조던 스피스, 13번 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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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슬라이스같은 티샷

언덕 넘어 투어밴 옆에 드롭

영리한 룰 적용, 보기로 막아

이후 버디-이글-버디-버디

스피스

“가장 많은 것 끌어낸 라운드”

미국 언론

“메이저 역사상 최고의 보기”

중앙일보

클라레 저그에 입을 맞추고 있는 조던 스피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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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스피스(24·미국)가 24일(한국시간) 오전 잉글랜드 리버풀 인근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서 끝난 146회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1언더파 69타, 최종합계 12언더파로 매트 쿠차(미국)를 3타 차로 제쳤다.

“12번홀까지는 생략할거죠?”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스피스는 이렇게 물었다. 13번 홀에서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스와 쿠차는 8언더파 동타로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왔다.

전세는 쿠차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스피스는 첫 4개 홀에서 보기 3개를 하면서 3타 차 리드를 다 날려버렸다. 5타 차 선두를 달리다 무너져버린 2016년 마스터스 최종라운드가 연상됐다.

스피스는 평소와 달랐다. 퍼트 귀신으로 불리던 그가 퍼트에 자신이 없었다. 의심이 가는 듯 캐디에게 자꾸 라인을 물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너에 몰린 13번 홀에서 스피스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휘었다. 아마추어의 슬라이스처럼 엄청나게 휘어 날아갔다.

페어웨이 옆 관중들을 너머 깊고 질긴 러프로 들어갔다. 관중들이 그 공을 찾아내긴 했다. 그러나 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욕심을 내다간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 스피스의 절친인 저스틴 토마스는 2라운드, 비슷한 곳에서 공을 치려다 퀸튜플보기를 했다.

스피스는 위기에서 더 냉정해졌다. 그는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했다. 옵션은 세 가지다. 친 곳(티잉그라운드)으로 돌아가는 것, 두 클럽 이내, 아니면 홀과 공이 있던 곳을 연결하는 직 후방 선상이다. 티잉그라운드는 너무 멀다. 500야드가 넘는 홀이어서 최소한 더블보기를 예상해야 했다. 두 클럽 이내는 모두 비슷한 러프였다.

세 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공을 치기에 좋은 장소를 세심하게 찾았다. 오래 걸렸다.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광야를 헤매는 것 같다는 빈정거림이 나왔다. 스피스는 "연습장 지역이 OB구역인지 물었다. OB가 아니라고 해서 그 쪽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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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홀에서 둔덕 넘어 드롭을 하고 공 칠 방향을 확인하고 있는 조던 스피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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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덕을 넘어가 골프용품을 수리하는 대형 밴(투어밴)들이 있는 곳에 드롭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TIO : Temporary Immovable Obstructions)이다. 스윙, 스탠스에 방해가 될 경우 규칙 벌타 없이 드롭할 수 있다.

스피스는 다시 구제를 받았다. 밴 옆쪽으로 나와 완벽한 라이에 공을 드롭했다. 홀과의 거리는 235야드였다. 앞에 거대한 둔덕이 있어 시야를 가렸지만 스피스는 하이브리드로 그린 앞에 공을 보낸 후 다음 샷으로 그린에 올려 1퍼트로 보기를 했다.

공을 찾고 드롭하는 시간은 20분이나 걸렸다. 그러나 스피스는 최소한 더블 보기, 최악의 경우 쿼드러플 보기 이상도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보기로 막았다. 흥분된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았고 룰을 정확히 알고 냉철히 대응했다.

저명한 골프 저널리스트인 댄 젠킨스는 “메이저대회 사상 가장 위대한 보기”라고 말했다. 미국 골프 채널은 “스피스의 드롭 장소에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 보기 이후 스피스는 확 달라졌다. 파 3인 14번 홀에서 거의 홀인원이 될 뻔한 티샷을 하면서 버디를 잡았다. 파 5인 15번 홀에서는 2온에 성공해 15m 정도 되는 이글 퍼트를 넣어버렸다. 그는 캐디에게 홀을 가르키며 “저 공 가져와”라고 말했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고 자신감이 넘쳤다. 스피스가 다음 홀에서 10m 버디를 또 우겨넣었을 때 항상 웃던 매트 쿠차가 미소를 잃었다. 스피스는 그 다음 홀에서 또 버디를 잡았다.

13번 홀에서 역전을 허용한 보기를 한 후 스피스는 버디-이글-버디-버디를 했다. 4개 홀에서 5타를 줄였다. 스피스는 “내 속에 가장 많은 것을 끌어낸 라운드였다”고 말했다.

2015년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서 우승한 스피스는 이로써 메이저 3승을 기록했다. 2015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한 타가 모자라 연장전에 가지 못한 한도 풀었다. 힘 보다 경험이 중요한 디 오픈에서 1979년 세베 바예스트로스(당시 22세) 이후 가장 어린 챔피언이 됐다.

만 24세 이전 메이저 대회 3승을 한 선수는 진 사라센, 잭 니클라우스, 스피스 뿐이다. 이 중 각각 다른 메이저 대회 3개를 우승한 선수는 스피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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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용품을 수리하는 투어밴 옆에서 드롭할 곳을 찾는 조던 스피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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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스는 타이거 우즈를 추월했다. 스피스는 그러나 “우즈, 니클라우스와 비교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골프라는 스포츠를 만들고 다듬었다. 나는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내 출발이 좋지만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스피스는 동반 경기한 매트 쿠차에 대해 “그가 진 게 아니다. 우리는 경기를 잘 했다. 나는 먼 거리 퍼트가 들어가고 그의 퍼트가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스피스는 갈림길에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역전패했다면 지난해 마스터스 12번홀에서 개울에 공을 두번 빠뜨린 쿼드러플 보기 침몰의 상처는 두 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승으로 상처를 씻었다. 그는 8월 PGA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우승한다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기록하게 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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