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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농협오이·하겐다즈·박카스…소극장 무대 선 '기업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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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 미 나우’ 아이스크림 협찬

연극 ‘창조경제’ 박카스 CF 패러디

기업·제작사 긍정적이지만 ‘돈은 안되네’

시너지 데이터화한 공식 분석 없어

저비용 고요율 vs 몰입감 해친다

“흐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용해야”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난 사실 아이스크림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건 또 뭔 소리야.” “너무 좋아하는데 돈은 없고, 그래서 여러 번 훔쳐 먹었다가 싸움나고, 시설에선 독방에 감금시켜요. 그럼 그 방에서 상상해요.” “엄마는 초콜릿, 아빠는 풍선껌이고 나는 아이스크림이다?”

16일 막을 내린 연극 ‘킬 미 나우’에서 주인공 ‘트와일라’와 ‘라우디’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고받는 대사다. 좋아하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 장면은 극의 흐름상 주요 부분이다. 극중 실제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는 점도 이 때문이다. 소품으로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은 브랜드 ‘하겐다즈’에서 협찬했다.

공연제작사 연극열전 관계자는 “녹는 아이스크림 특성상 매회 사야 하는 번거로움과 비용 최소화를 위해 협찬을 결정했다”며 “제품 외에 현금 협찬은 따로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장면은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라면서 “장애와 그 가족, 안락사를 다룬 작품에 꼭 필요한 장면으로 판단했다. 몰입감을 방해한다면 협찬을 포기했을 것”고 말했다. 이번 PPL로 인해 컴플레인을 받은 적도 없다.

요즘 공연 무대에선 익숙한 상품명이 종종 눈에 띈다. 삼양라면·프리마·투썸플레이스·베지밀·문학잡지 악스트(Axt) 등 무대 위 등장인물로부터 호명되거나 제품의 브랜드 로고가 드러나는 식이다. 영화와 드라마, 일부 대형 뮤지컬에 흔했던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가 대학로 소극장 무대로 파고들었다.

△난타-농협·판-CJ 등 대학로 간접광고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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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방식은 극에 필요한 소품 지원이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중구 명동 남산예술센터에서 상연한 연극 ‘창조경제 공공극장편’이 대표적인 예다. 연극계 처음으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차용한 작품은 공연중 대놓고 동아제약의 박카스 광고를 내보낸다. 협찬기업의 제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유명 TV경연 프로그램을 흉내 내어 극중 광고 형태로 PPL 장면을 구성한 것이다.

김지우 남산예술센터 PD는 “피로회복제 박카스가 가진 이미지와 젊은 연극인들의 도전이란 연극적 콥센트가 일치해 협찬이 성사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공연 뒤 실물 박카스가 관객에게 실제 제공됨에 따라 ‘재미있다’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진짜 서바이벌 연극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효과도 가져왔다”고 했다. 동아제약은 총 9회 공연에 2250개의 박카스를 협찬, 남산예술센터 측으로부터 티켓예매처 노출, 프로그램북 내 광고 게재 등을 제공받는다.

CJ문화재단서 제작한 소극장 뮤지컬 ‘판’은 극중 자연스럽게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투썸플레이스’를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19세기 말 조선 양반자제인 ‘달수’가 전기수(이야기꾼) ‘호태’에게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는 매설방(이야기방)의 가게이름을 ‘춘섬플레이스’라고 이름 붙이는데 ‘투썸플레이스’를 연상케해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공연 전 광고 영상을 틀어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는 공연 전에 농협유통 광고를 송출하는 대신 2010년부터 8년째 야채를 협찬 받는다. 1회 공연당 사용하는 야채만 오이 10개, 양파 4개, 양배추 7개, 당근 10개 등이다. 연간 1억원 상당의 농산물을 농협이 지원한다.

△저비용·고효율? 기업·제작사 ‘긍정적이지만…’

기업들은 소극장 뮤지컬·연극 무대가 저비용·고효율의 제품 홍보의 장이라고 평가한다. 대체로 제품의 무상 제공 형태로 광고비가 지불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드라마·영화에 비하면 대체로 적은 편이다. 반면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제품 노출에 좋고 관객층에 따른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학로 극장의 이점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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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 미 나우’에 PPL을 진행한 한국하겐다즈 측 관계자는 저예산으로 약 석달 간 기업 브랜드를 노출했다. 실제 이 회사는 총 80회 공연에서 하겐다즈 쿼터 사이즈 딸기맛 102개를 협찬, 불과 198만 9000원의 광고비를 지출했다. TV드라마 PPL의 경우 요일·시간대 편성에 따라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는데 비해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보는 셈이다. 하겐다즈는 “이 연극의 관객층은 아이스크림의 주 소비층이자, 작품에 소재가 잘 녹아든다는 판단으로 협찬을 결정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열악한 공연 제작환경에서 간접광고비용은 제작에 무시 못할 도움이 된다. 한 연극기획사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적은 금액이지만 PPL 하나가 절실한 극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기업 후원 넘어 효과분석·수익 이뤄져야

다만 공연계 일각에서는 하나의 연극적 장치(소품)에 한정하거나 물품 지원을 받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아쉬워했다. A공연기획사 관계자는 “협찬 제안서를 넣었을 때 소극장 연극이라고 하면 관심이 별로 없다. 파트너라기보다 물품 기부나 후원 정도로 생각한다”며 “결국 제작비 절감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기업과 제작사 모두 경제적 수익과는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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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브랜드 노출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는 곳도 없다. PPL 이후 시너지 효과를 정식으로 데이터화해 분석한 케이스도 전무하다. 한국하겐다즈 역시 “큰 효과를 기대한 것이 아니다. 소극장 연극 후원으로 공연 문화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PPL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극 기획사 관계자는 “결국 PPL이 작품 몰입에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며 “극 전개와 상관없는 PPL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몰입감을 방해한다. 작품의 흐름에 해가 되지 않는 선은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연평론가는 “기업과 제작사가 서로 이득을 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 반응”이라며 “척박한 여건 속에서 초기 제작비를 줄이고, 관객 유도를 위한 사은품을 마련해야 하는 중소 제작사가 기업의 협찬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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