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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싱크로드] 여행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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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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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가장 가슴 설레는 추억은 아마 수학여행일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여행이라고 부르는 이동과 체험, 거기에 수반된 추억의 생성과 간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활동의 출발점이었다. 사회생활과 함께 크고 작은 많은 여행을 하게 된 후로 수학여행이 아로새긴 여행의 설렘도 희미해져 갔다.

이제는 단순한 설렘 때문에 여행을 하지는 않는다. 일상을 벗어나서 재충전하기 위해, 새로운 풍경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고착된 사고를 탈피하려고, 여행 체험이 교양을 넘어 학위가 돼 가는 세태에 발맞추기 위해….

저마다 동기가 있겠지만 이제 여행은 일생일대 이벤트거나 여름 휴가철 연례행사가 아니라 의식주 못지않게 불가결한 일상이 돼 가고 있다. 여행을 삶의 목표로 살아간다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느 나라든 불경기에 아랑곳없이 해외 여행객 수는 증가 일로다. 여행이나 관광은 거의 유일하게 매년 성장하는 산업이다.

성장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 보편적이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온라인트래블에이전시(OTA)가 인공지능화되면서 비용 절감 기술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모든 재화·용역의 가격이 올랐지만 일본과 동남아 여행경비는 더 싸졌어요. 그러니 안 갈 이유가 있겠어요?" 여행박사를 창업해 자유여행 붐을 주도한 신창연 사장의 말이다. 여행 소비의 증대는 가격 경쟁력이 결정적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여행의 한계효용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5인치 안팎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포획당한 모바일 폐족에게 여행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다.

기술 진보가 가져온 삶의 규격화를 탈피하려는 저항이 여행 욕구의 증대를 가져왔는지 모른다. 여행을 통해 비로소 화면에 갇혀 있던 시선이 해방되고 단절됐던 관계와 소통이 회복된다. 자발적인 학습과 능동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지금 우리가 열망하는 여행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분출되는 대중의 욕구는 거대한 트렌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트렌드를 빨리 읽고 적응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매일경제

여행+ 대표


'4차 산업혁명'이 일종의 신탁(神託)이 된 시대의 여행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행을 행락이나 유흥의 일환으로 여기고 저평가해 왔다. 정책당국도 사업자도 그랬다. 여행을 비로소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게 된 티핑포인트는 2000년 하나투어의 상장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고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새로운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면 여행은 단순한 산업 이상의 무엇이 될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관광산업 정책자들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상이자 복지이고, 꿈이자 미래가 돼 있는 여행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다가는 뼈아픈 기회의 상실을 대가로 치를 수 있다. 이제 그동안의 여행 패러다임에 작별을 고하자.

[이창훈 여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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