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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제’ 김연경과 ‘황금세대’ 배구판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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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그랑프리 2그룹 폴란드전 3-0 완승… 예선 1위로 결선행

“감독님, 그냥 이대로 갑시다.”(김연경)

“만일 내가 안 보이면 감독 역할까지 해줘야 한다.”(홍성진 감독)

2017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제2그룹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 주장 김연경(29·상하이)과 홍성진(54) 감독이 나눈 대화다. 대회 직전 한국은 배유나(도로공사), 이소영, 강소휘(이상 GS칼텍스)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엔트리 14명 중 12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던 홍 감독이 찾은 사람은 2012 런던 올림픽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은 레프트 김연경이다. 김연경이 추가 엔트리 없이 가자고 큰소리친 것이다. 홍 감독은 자신만만한 김연경에게 “넌 나와 같이 가야 한다”며 사실상 ‘코트 위의 감독’ 역할을 맡겼다.

세계일보

“여덟번 이겼어요” 배구 여자대표팀이 23일 FIVB 그랑프리 대회 제2그룹 H조 1위를 확정한 뒤 예선에서 거둔 ‘8승’을 뜻하는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수원=연합뉴스


이후 김연경은 서릿발 호통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언니’로 변신했다. 후배가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면 가차 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통에 군기가 확실히 잡혔다. 열악한 상황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이에 세터 염혜선(26·IBK기업은행)은 “억양이 세서 막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칭찬도 많이 해준다”며 싫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23일 ‘김연경과 아이들’이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2그룹 H조 예선라운드 폴란드와의 최종전에서 세트스코어 3-0(25-23 25-20 25-23) 완승을 거두고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조 1위를 확정했다. 전날 대표팀은 콜롬비아 역시 3-0으로 꺾고 결선행을 조기에 결정지었다. 8승1패(승점 25)로 예선을 마감한 한국은 오는 29일부터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리는 결선에서 우승컵을 노린다. 결선에는 개최국 체코, 2그룹 상위 3개팀이 맞붙는다.

이날 경기도 김연경이 양팀 최다인 17득점을 올리며 공격을 주도했다. 무려 3m10에 달하는 스파이크 리치와 3m의 블로킹 높이, 그리고 공격만큼 완벽에 가까운 수비력도 발군이었다. 특히 김연경은 3세트 들어서도 전혀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20 동점 상황에서 빈곳을 노린 연타로 득점하면서 폴란드의 기를 완전히 꺾었다. 라이트 김희진(26·IBK기업은행)과 센터 양효진(28·현대건설)도 김연경의 뒤를 받쳤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보람은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의 기량이 훌쩍 오른 점이다. 지난 20일 카자흐스탄전 수훈선수에 꼽힌 염혜선은 세터 기근 현상을 겪고 있는 여자 배구에 한 줄기 빛으로 떠올랐다. 김연견(24)와 황민경(28·이상 현대건설), 김미연(24·IBK기업은행) 등 백업 선수들도 적시에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홍 감독도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백업 선수들이 상당히 잘해줘 버틸 수 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다만 양효진, 김수지(30·IBK기업은행) 등 일부 베테랑 선수에 의존하는 센터 라인 만큼은 세대교체를 위해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김연경과 주전 센터진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이 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를 위해선 올림픽에 맞춰 젊은 선수들을 더욱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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