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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불붙은 '증세 논쟁']‘부자증세 공식화’ 장하성이 주도… 김동연 조연으로 전락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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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조연 맡겠다던 장하성 실장
추미애 대표와 증세 공식화 주도…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
청, 내각 위에 군림 않겠다던 국정운영 원칙 흔들리나
입 닫아버린 김동연 부총리
"증세 없다" 천명한지 이틀만에 청와대가 뒤집자 당혹
내각의 경제사령탑, 나흘째 침묵 이어져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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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청와대와 여당이 증세를 공식화한 가운데 내각의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흘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증세는 없다"며 '증세 없는 복지'를 천명한 지 이틀 만에 청와대가 '부자 증세'를 선언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의 '부자증세' 공식화는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청와대 정무라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여당의원 출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파악된다.

지난 6월 문재인정부 경제팀 첫 상견례 때 "경제컨트롤타워는 (내각의) 김동연 부총리가 중심"이라며 스스로 '조연'을 자처했던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 결국엔 주도권을 쥐고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 실장은 심지어 내각에서 김 부총리와 호흡을 맞출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문 대통령에게 추천, 내각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는 내각에 군림하지 않을 것이며, 국정운영의 중심은 내각에 있다'고 한 국정운영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연 '조연'으로 전락하나

23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문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20~21일) 참석 하루 전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집무실에 머물며 발표자료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심지어 앞서 열린 국정보고대회 때처럼 무대에서 발표하는 것을 검토할 정도로 회의 준비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국가재정전략회의 이틀간 할당된 발표 외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1일 "이날 진행된 3개 세션(총 4시간30분)의 회의록을 확인하니 김 부총리의 발언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발언 신청자가 몰려서 사회를 본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발언 시간을 1분으로 제한할 정도로 열띤 토론이 이뤄졌던 상황이었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경제수석이 정책실장의 발언 신청도 자를 정도로 청와대가 자율적"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김 부총리가 침묵한 건 회의 첫날 추미애 대표가 부자증세를 문 대통령에게 공식 건의한 직후부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청와대는 "추 대표의 건의를 일부 참석자들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일부 참석자가 누구인지 실명공개는 하지 않았으나 취재 결과 여당 의원 출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두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 부총리는 아무런 반박이나 첨언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증세 없이도 5년간 178조원이 들어가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이 가능하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말바꾸기 상황에 처했다는 점, 나아가 청와대와 당이 중심이 된 증세 논의에서 김 부총리가 소외됐기 때문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청와대는 지난 20일 일찌감치 기재부 측에 두번에 걸쳐 국가재정전략회의 언론 메시지와 관련, "기재부는 손 떼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며 증세문제에 직접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결국엔 청와대가 큰 그림을 주도하면 내각은 이를 뒷받침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연 자처했던 장하성의 '부상'

정부 출범 두달여 만에 장하성 정책실장의 존재감이 뚜렷해지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회의 때 정책실장이 보이지 않는다" "구석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라" "장 실장이 경영학을 전공한 교수로 재벌개혁은 해봤어도 거시경제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라는 얘기가 들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그는 청와대 내부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자신있게 의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지난 17일 문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때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의 시작 직전 헐레벌떡 입장하자 "한번만 더 늦으면 그 자리(비서실장 자리) 내가 차지할 것"이라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하기도 했다.

임 실장과 장 실장 간 호칭은 직제상 위인 임 실장이 장 실장에게 "실장님"이라고 부르는 반면, 장 실장은 "임 실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50대 초반인 임 실장이 60대 중반인 장 실장을 예우해 준 것이란 전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우리 (장하성) 정책실장이 아주 강력하게 추천을 했는데, 함께 잘 콤비를 이뤄서 잘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해 장 실장이 내각 인사에 적극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이번 증세 논의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 장 실장과 여당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장 실장은 앞서 2014년 펴낸 '한국 자본주의'에서 소득세에 관해 "상위 1% 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누진세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했고, 법인세에 대해선 "초대기업에 현재의 22%보다 훨씬 더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내각의 정책 주도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권력의 핵에 위치한 청와대가 내각을 압도해 왔다. 대개 청와대가 지시하면 내각은 이를 집행하는 조직에 불과했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엔 청와대와 내각의 경제팀이 증세 문제를 충분히 숙의하기도 전에 청와대와 여당이 '속전속결' 증세를 추진키로 하면서 내각 소외현상이 상대적으로 일찍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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