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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장밋빛 노후 보장 ‘IRP’? 완주 못하면 잿빛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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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Weconomy | 소비자 리포트_‘개인형 퇴직연금’ 알고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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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기대? 절세 핵심!

작년 수익률 1.09%…예금보다 못해

불입액 16.5% 세금공제는 큰 혜택

중도해지·일시금 수령땐 토해내야

금융권 ‘수수료 장사’

고객들 대부분 운용지시 안 하는데

평균 0.46% 수수료 꼬박꼬박 챙겨

26일 가입대상 확대…은행 ‘과당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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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가입 대상 확대를 앞두고 은행권에서 ‘예약가입 마케팅’ 등 과당경쟁이 금융당국 규제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성행하고 있다. (▶참조 : [단독] IRP 26일부터 가입대상 확대…은행들 또 ‘진흙탕 마케팅’) 은행권이 판매하는 개인형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자금운용 지시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갈리는 ‘특정금전신탁’ 상품이다. 중도해지 손실 문제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수적인데도 불완전판매 소지가 커서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소비자가 개인형 퇴직연금에 가입하기에 앞서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짚어봤다.

중도해지나 일시금 수령 땐 큰 손실

개인형 퇴직연금은 직장인이 일시금이나 중간 정산으로 받은 퇴직금을 자기 명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두고 55살 이후 노후자금으로 계속 관리할 수 있는 상품이다. 개인적으로 추가 불입을 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26일부터는 600만 자영업자를 비롯해 모든 취업자로 가입대상이 확대된다.

2005년 말 첫선을 보인 이 상품은 수익성이 대단히 떨어지는 편이다. 연간 수익률은 지난해 1.09% 그쳤다. 과거 5년 평균을 보아도 연 2.64%에 머문다. 지난해 은행권 1년짜리 정기예금 평균금리가 1.56%였고, 5년 전인 2012년엔 3.71%였던 점을 고려하면 단기성 정기예금만도 못한 성과를 내는 셈이다.

여기엔 금융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가입자들이 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돈을 몰아넣는 데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운용지시 변경도 잘 하지 않는 점이 작용했다.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계좌 수는 지난 2015년 말 기준으로 238만4천개이고, 적립금 규모는 2016년 말 기준으로 12조4천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는 돈이 8조6천억원으로 69.2%나 된다. 주식·채권형 펀드 등 실적배당형에 투자된 돈은 2조2천억원으로, 17.8%에 그쳤다. 그나마 실적배당형에 들어간 돈도 80% 이상은 채권·채권혼합형 펀드에 투자돼 수익성이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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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상품은 정부가 노후자금 마련을 장려하기 위해 크나큰 ‘세액공제’라는 세금혜택을 준다. 예컨대 연간 납입액 최대 700만원 한도(연금저축과 통합한도)에서 개인이 추가 불입을 할 경우, 16.5%(연봉 5500만원 이상은 13.2%)에 해당하는 돈을 세금에서 깎아준다. 가입자 처지에선 연간 최대 115만5천원(연봉 5500만원 이상 직장인 92만4천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1%대 운용수익보다는 최대 16%대에 이르는 세금 혜택이 실제 수익으로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절세는 수익과 다르다. 연봉이 그리 높지 않고 이런저런 소득공제를 많이 받는 직장인이라면 돌려받을 세금이 별로 없어서 세액공제 혜택을 100%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구나 개인형 퇴직연금은 어디까지나 55살 이후에 연금으로 돈을 타가는 것을 전제로 세금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파산 등 몇몇 예외사유를 빼곤 중도해지를 하거나 55살 이후 일시금으로 돈을 타가려 할 땐 연간 최대 115만5천원씩 돌려받았던 세금을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 또 ‘페널티’ 개념이 있다 보니, 일부 가입자는 돌려받은 세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반납해야 한다.

결국 많게는 연 115만원에 이르는 절세 혜택을 실제 수익으로 착각하고 가입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상품 가입에 앞서 55살까지 연금상품에 돈을 묶어두는 것은 물론, 55살 이후에도 이를 일시금으로 수령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자금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26일 이후 새로 가입대상에 포함되는 자영업자처럼 평생 소득의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운용·관리 수수료 만만찮아…은행권은 꽃놀이중?

개인형 퇴직연금의 ‘수수료’는 수익률 수준을 고려할 때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사용자가 적립하는 퇴직연금은 원칙적으로 수수료를 회사가 부담한다. 하지만 개인형 퇴직연금은 금융투자상품이기 때문에 물어야 하는 수수료가 모두 개인의 부담이다.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세 가지 수수료를 비용으로 부담한다. 해당 계좌를 설정·유지하는 비용인 자산관리수수료, 가입자의 운용지시를 전달하고 이행하는 비용인 운용관리수수료, 운용 포트폴리오에 따라 개별 펀드상품을 샀을 때 발생하는 펀드상품 수수료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가입자가 연간 700만원을 납입했을 경우, 지난해 연평균 수수료율인 0.46%를 적용하면 3만2200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수수료 차감 뒤 연간 수익률이 1.09%로 7만63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회사가 챙기는 돈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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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돌려 생각하면 은행 같은 금융회사로선 땅 짚고 헤엄치는 수수료 장사일 수 있다.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금융투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시간도 없다 보니 운용지시를 잘 바꾸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입자들은 처음에 자금운용 포트폴리오를 정한 뒤 운용지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자금운용 구성도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에 넣어두는 돈이 70%에 가깝다. 특히 금융권 중 은행은 개인형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적립금 기준)이 64%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꽃놀이를 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4대 시중은행인 ㄱ은행은 가입자가 추가 납입한 개인형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해 자산관리수수료로 연 0.18%를, 운용관리수수료로 연 0.22%를 받아, 모두 0.4%의 수수료를 챙긴다. 퇴직한 회사에서 일시금으로 받아 적립된 돈에 대해선 좀 더 높은 연 0.46~0.5% 수수료를 받아간다. 이는 가입자가 자금 운용지시를 3년짜리 정기예금으로 정한 뒤 3년간 이를 바꾸지 않아도, 꼬박꼬박 치러야 하는 돈이다. 가입자로선 은행에서 일반 정기예금 상품 이상의 서비스를 받은 바가 없는데도, 별도로 상당한 수수료를 떼어줘야 하는 셈이다. 현재 개인형 퇴직연금의 수익구조 현황을 볼 땐, 가입자에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수익은 정부가 세금으로 주고 있는데, 수수료 수입은 은행이 큰 기여 없이 앉아서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이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 유치를 위해 과당경쟁을 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은행들이 예약가입 마케팅을 하면서 임직원에게 판매목표 할당을 하고, 실질적으로 방문판매가 금지된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임직원들이 영업점 밖에서 계약하도록 하는 등 불완전판매 소지를 키우는 이유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수립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볼 땐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계좌는 구조적으로 늘어나게 돼 있다. 일반 퇴직금제가 아닌 퇴직연금제 적용 사업장에서 퇴직하는 경우 반드시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퇴직 일시금을 받게 된다. 그런데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 사업장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또 직장인들의 근속 기간은 짧고 이직률도 높은 편이다. 퇴직과 이직의 반복으로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계좌는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난 가입자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세제혜택을 이유로 장기 계획 없이 추가 납입을 했다가 중도해지를 하면 금융회사에만 좋은 일을 해주게 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형 퇴직연금은 중도해지를 하면 손실이 크기 때문에 장기 가입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는 등 불완전판매가 일어나지 않도록 업계에 경고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노후자금을 쓰지 않고 묶어뒀다가 연금으로 받도록 장려하는 차원에서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인 만큼 가입자도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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