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S 스토리] 여심 저격 ‘핑크’ 현충일엔 ‘밀리터리’… 스페셜유니폼 진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자주 바뀌는 프로야구 '저지'의 경제학 / 저지 시장 포화 상태… 돌파구 찾기 분주… KBO, 통합마케팅 도입 고민

지금은 익숙한 ‘저지 문화’가 한국 프로야구에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지 않았다. 두산이 2007년 선수용 ‘어센틱(authentic)’ 저지를 최초로 판매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이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미국 관중들의 ‘저지 문화’를 눈으로만 봤던 한국 팬들이 한참 후에야 저지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2006년 처음 개최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신화가 이어지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폭발했고 저지 시장 역시 동반 성장했다.
세계일보

프로야구단이 포화상태에 놓인 저지 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의 새 유니폼을 내놓고 있다. 20일 LG와 kt의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LG트윈스 유니폼 매장에서 팬들이 저지를 고르는 모습. 남제현 기자


2006년 304만명에 불과했던 프로야구 관중 수가 2008년 500만명을 넘더니 지난해에는 833만명까지 늘어나 10여년 새 2.7배나 증가했다. 프로야구 중흥기와 ‘저지 문화’가 결합되며 미미했던 저지 시장은 구단별로 전체 상품판매량 가운데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67% 수준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제 저지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저지 시장도 정체기를 맞았다. 이왕돈 두산 마케팅 팀장은 “이제 야구팬이면 저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한다. 저지 시장이 포화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세계일보

◆포화시장의 돌파구 ‘스페셜 저지’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는 저서 ‘디맨드(Demand)’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조하는 혁신이 성장의 동력이라고 했다. 특히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제품 라인의 다변화 노력을 강조한다.

포화상태인 저지 시장의 돌파구도 여기서 출발한다. 한 구단이 10년간 똑같은 유니폼으로 경기에 나선다면 팬들도 10년간 새 저지를 살 이유가 없다. 팬의 새로운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해 구단들이 주기적으로 구단 로고나 BI 등을 변경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로고는 대개 10년 주기로 바꾸는 게 정석이다.

대신 그 공간을 채울 스페셜 저지가 탄생했다. 시초는 일요일만 입는 ‘선데이 유니폼’이었다. 더 나아가 저지와 ‘스토리’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미국 메이저리그가 먼저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에 밀리터리 유니폼을 등장시켰고, 어머니의 날에는 30개 구단 전체가 ‘핑크 유니폼’을 입는다.
세계일보

LG 밀리터리 유니폼.


세계일보

한화 핑크 유니폼


국내 구단들도 여기에 눈을 뜨게 된다. 단순히 미국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특색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태동기 어린이회원이었던 이들이 소비의 주축 세대가 되자 향수를 자극하는 ‘올드 유니폼’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우승한 해 저지에는 ‘챔피언 유니폼’으로 의미를 더한다. 특히 선수들이 상품 모델이 되고 TV 중계로 자연스러운 상품 노출이 이뤄지는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판매전용 저지 종류도 늘어나고 있다. 여성팬의 증가세가 눈에 띄자 핑크유니폼이 등장했고 LG가 헬로 키티와 스타워즈, 캡틴 아메리카 등 다른 문화적 아이콘과 결합된 저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롯데 역시 지난해 도라에몽 캐릭터 유니폼을, SK도 피카추 유니폼을 선보였다. NC는 광복절 태극기 유니폼이 처음 한정판으로 나왔을 때 단시간 매진되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저지가 다양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집가’들도 만들어졌다. 한정판 희귀 유니폼을 중심으로 새 저지가 나올 때마다 구매하는 팬들이 생긴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두산 오재원의 팬뿐 아니다. 구현준 한화 홍보팀 대리는 “한 30대 여성팬은 10년 전부터 14종 이상의 유니폼을 구매해 구단이 신경 쓸 정도”라고 소개했다. LG 오지환의 여성팬은 다양한 저지를 들고 경기장을 찾아 중계 화면에도 여러 번 잡히기도 했다. 위탁판매 시스템인 탓에 정확한 파악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각 구단마다 수집가 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케팅 담당자들은 실감하고 있다.

◆스페셜 저지가 또 다른 이벤트로

저지가 이제는 이벤트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롯데의 ‘유니폼 위크’다. 올해도 6월27일부터 7월2일까지 부산 홈 6연전에 매일 다른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 팬들의 보는 재미를 더했다.
세계일보

KIA 러브투게더 유니폼.


저지에 구단의 사회공헌활동도 함께 녹이기도 한다. 롯데의 ‘유니세프 유니폼’과 KIA의 ‘러브 투게더 유니폼’이 대표적이다. SK는 저지에 선수 이름 대신 미아 이름을 새겨 실종 아동 찾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성용 SK 고객가치혁신그룹 매니저는 “잠깐 끝나는 이벤트성 행사보다 경기를 펼치는 3~4시간 동안 노출되는 유니폼에 메시지를 담으면 더 오래 전달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저지 판매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새기는 ‘마킹’ 작업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 구단은 팀내 누가 인기 선수인가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팀내 인기 선수를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이나 상품 개발을 위한 최고의 데이터가 저절로 모이는 것이다. 팬들도 누가 최고 인기 선수인지 알아보는 척도로 이를 활용한다. 실제 통합마케팅을 실시하는 메이저리그는 매년 선수별 저지 판매량 순위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세계일보

◆통합마케팅, 저지 시장 키울 대안 될까

현재 프로야구 마케팅은 구단별 사업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 30개 구단이 통합마케팅을 실시해 생긴 수익을 똑같이 분배한다. 일본 퍼시픽리그도 2008년부터 통합마케팅에 들어갔다.

통합마케팅을 하면 인력과 재원의 효율적 활용은 물론 리그 전체를 아우르는 사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저지의 경우도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기획→디자인→샘플제작 및 수정→최종 확정과 이벤트 진행’이라는 네 단계를 거치며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해 한 구단이 하기에 부담이 크다. 롯데나 SK가 한때 직영에 뛰어들었다가 위탁 판매로 돌아선 이유이기도 하다.

KBO도 통합마케팅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각 구단의 이해관계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 프로야구 마케팅 시장이 빅마켓과 스몰마켓 구단으로 양분된 부익부 빈인빈 구조인 탓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빅마켓 구단과 그렇지 않은 구단의 매출 차이가 너무 크다. 전체를 안고 가면 빅마켓 구단까지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결국 저지 시장을 중심으로 한 프로야구 마케팅 시장은 아직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송용준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