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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과학TALK] 스스로 몸체 바꾸는 ‘덩굴 로봇’ 등장...소프트로봇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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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 건설이나 건물 철거 현장에서 구조체가 순식간에 붕괴돼 인부가 매몰되는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올해 4월에도 서울 강남 빌딩 철거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2명이 매몰됐다가 구조됐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공사중인 건물이 무너져 매몰된 수십 명의 인부를 구출하다가 주인공이 부상당하는 아찔한 장면도 나온다.

건물 붕괴 사고시 인명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자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무너진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의식을 잃은 생존자를 확인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무선 조종할 수 있는 소형 차를 잔해 사이로 집어넣어 확인할 수 있지만 복잡한 잔해 더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스스로 몸체를 자라게 하면서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균주나 성장중인 뉴런, 덩굴식물 등 자연현상에 착안한 신개념 소프트 로봇을 개발하고 로봇 전문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 최신호에 발표해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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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덩굴로봇. 압축된 공기에 의해 끄트머리를 뒤집는 힘으로 스스로 자라나며 움직인다. 끄트머리에는 카메라가 달려 장애물을 피해 좌우로 자라날 수 있다./스탠퍼드대 제공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화학 반응으로 만든 공기를 내부에서 순환시키는 힘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문어 형태의 소프트 로봇 ‘옥토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옥토봇은 전기 에너지가 없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조규진 교수 연구팀이 작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에서 종이접기 원리를 응용해 바퀴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소프트로봇으로 우승했다.

소프트로봇은 기존 딱딱한 금속성 하드웨어를 지닌 로봇에서 벗어나 뱀이나 문어 등 부드러운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 메커니즘을 본따 만드는 로봇이다. 신축성 있는 유연한 소재를 활용해 웨어러블 분야나 재난 구조에 활용될 수 있는 유망 분야다. 가트너, IDC 등 시장조사기관과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이 2017년 반드시 주목해야 할 과학기술로 소프트 로봇을 꼽았다. 딱딱한 몸체에 유연성이 부족한 기존 로봇이 아닌 소프트 로봇 연구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 몸체 뒤집으며 앞으로 뻗어가는 로봇...어떤 환경에서도 정확하게 이동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이번에 개발한 로봇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스스로 접힐 수 있는 부드러운 물질로 튜브를 만든 뒤 한 쪽 끝에서 뒤집어지면 부드러운 물질이 바깥쪽으로 밀어내며 몸체를 자라게 한다. 마치 양말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뒤집는 방식과 유사하다.

튜브가 스스로 한 쪽 끝을 뒤집는 힘은 압축 공기를 이용한다. 공기 대신 물과 같은 유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몸체 전체가 움직이지 않아도 끄트머리가 자라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덩굴식물이 벽이나 구조체를 타고 자라나는 것처럼 움직인다.

로봇은 또 몸체를 좌우로 전환할 수 있게 다른 방향으로 팽창시키는 제어시스템을 갖췄다. 연구진은 로봇 끝에 달린 카메라 이미지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연구를 함께 진행한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학 엘리엇 호크스 초빙교수는 “로봇 몸체가 끝에서만 길어지면서 몸체 전체가 커지지만 몸체 나머지 부분은 움직이지 않는다”며 “몸체가 주변 환경에 밀착되거나 암석 덩어리 사이에 낄 수 있지만 공기나 유체 같은 새로운 물질이 끄트머리에 추가되기 때문에 계속 자라면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어떤 환경에서도 이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했다. 파리잡이끈끈이, 접착제, 얼음벽, 뾰족한 물체 등 다양한 장애물이 있는 환경에서 실험했다. 로봇 끄트머리에는 재난 현장의 생존자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했다. 테스트 결과 모든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생존자를 찾아냈다.

또다른 테스트에서 로봇은 자신의 몸체를 자라게 해 100kg 무게의 상자를 들어올리고 자신 몸체 지름의 10%밖에 안되는 문 틈새로 이동하는 데도 성공했다. 알 수 없는 장애물을 탐색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천장이 무너진 공간에서 테스트한 결과 자유롭게 움직이고 좁은 공간에서 배선을 연결할 수도 있었다.

연구진은 “복잡한 인체내 구조에서 약물을 전달하거나 시술을 할 수 있는 의료 로봇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그런 만큼 로봇을 제어하는 데 정밀한 동작 모델이 필요하며 끝에 달린 카메라로 상황을 인지할 경우 카메라 이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해 경로를 탐색하는 알고리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 전기 에너지 필요없는 옥토봇...국내 연구도 활발

미국 하버드대 공대 제니퍼 루이스 교수와 마이클 웨너 교수 연구팀이 작년 개발한 ‘옥토봇’은 전기 에너지 없이도 스스로 움직인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돼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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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옥토봇’/조선DB



8개의 다리를 가진 옥토봇은 압축 공기가 팽창하고 순환할 때 생기는 힘을 이용해 스스로 움직인다. 연구진은 우선 과산화수소수로 채워진 ‘액추에이터’에 과산화수소 분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촉매 장치를 탑재했다. 액추에이터는 압축 공기를 활용해 동력을 만들어내는 원동기를 말한다. 연구진은 화학 반응에 의해 과산화수소가 분해되면서 나온 산소를 압축한 뒤 뿜어내는 힘을 8개의 다리에 전달하는 원리로 옥토봇을 작동시켰다.

작년 7월 초에는 케빈 키트 파커 하버드대 교수와 박성진 하버드대 박사, 최정우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등으로 이뤄진 한미 공동 연구진이 생체 세포로 만든 가오리 형태의 소프트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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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스누맥스가 작년 열린 소프트로봇 세계대회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서울대 제공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작년 열린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연구팀은 바퀴형 로봇 ‘스누맥스’로 장애물 피하기와 계단 오르기, 물체 집기 등 딱딱한 로봇이 하기 힘든 미션을 모두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 조규진 교수는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해 공압을 사용하지 않고도 바퀴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다”며 “소프트 로봇은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재난 구조나 의료 기기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김민수 기자(rebor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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