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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연봉 4000만원도 최저임금 오른다, 제조업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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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140만원→내년 4614만원

외국인 근로자 월급 올라가면

숙련공인 내국인도 함께 올려야

연봉ㆍ연차 높을수록 혜택 더 커

조선일보

내년 최저임금이 16% 넘게 오르면서 영세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저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이 낮은 임금 구조 탓에 연봉 4000만원이 넘는 근로자도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충남 논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용해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GIJA] 전수용 기자 jsy@chosun.com[/G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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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 A사 생산직에 입사한 박기흥씨의 초봉은 4140만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오르면 박씨의 연봉도 덩달아 오른다. 지금의 시급(6542원)이 내년 최저임금(7530원)에 한참 미달하기 때문이다. 연봉 자체는 높지만 기본급이 낮고, 상여금 비중이 큰 임금 구조 탓이다. 국내 대다수 제조업체들이 이 같은 구조를 갖고 있어 연봉이 4000만원 넘는 근로자도 최저임금 인상의 적용을 받는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영세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도 비상이 걸렸다.

◇연봉 4000만원 근로자도 최저임금 인상 수혜
박씨 연봉은 우선 기본급에 근속수당, 직무수당을 합해 1884만원(월 157만원)이다. 여기에 2개월마다 명절, 연말에 나눠 받는 상여금(기본급의 800%)이 1256만원, 휴가비와 성과급 등으로 대략 1000만원을 받아 총 4140만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는 전체 연봉의 46%에 불과한 기본급과 직무·근속수당만 적용 대상이다. 그래서 박씨의 올해 시급은 최저임금(6470원)이 조금 넘는 6542원.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면 A사는 여기에 맞춰 박씨 기본급을 올려줘야 한다. A사 관계자는 "대부분 제조업 생산직 초임은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왔다"며 "최저임금이 7530원이 되면 우리 회사는 10호봉까지도 최저임금 시급에 미달한다"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오르면 박씨는 기본급 인상으로 연봉 284만6400원을 더 받는다. 기본급에 연동하는 상여금 등을 합하면 올해보다 474만원이 많은 4614만원을 연봉으로 받는다. 2020년 시급 1만원이 되면 박씨 연봉은 5800만원으로 뛴다. 올해 연봉보다 1660만원이 오르는 것이다.


◇연봉 많을수록 최저임금 인상 수혜 커져
제조업체들의 고민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낮은 호봉 근로자 임금만 올려야 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자제품 부품업체 J사는 직원 100여명 중 30여명이 최저임금 근로자인데 대부분 외국인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들은 주 68시간을 꽉 채워 일해, 수당·상여금·퇴직금 등 많게는 3300만원을 받는데 이들도 내년 최저임금에 미달해 연봉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월급이 올라가면, 숙련공인 국내 근로자의 연봉도 같은 수준으로 올려줘야 한다는 게 이 회사의 고민이다. 호봉제 임금체계에서 낮은 호봉을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올리면 호봉표 전체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임금 인상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 제조업체들의 급여체제는 최저임금을 시작점으로, 연차에 따라 올라가는 방식"이라며 "이런 연쇄 효과 탓에 중소기업의 체감 인건비 증가 폭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견기업 C사는 임금이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다. 연봉 3817만원을 받는 3년차 직원의 시급(時給)은 7775원. 내년 최저임금보다는 높다. 하지만 초임 근로자 연봉을 최저임금에 맞춰 올리면 3년차 직원 연봉은 270만원 오른 4087만원이 된다. 10년차 연봉은 4202만원에서 4507만원으로 305만원이 더 오른다. 연차가 높을수록 최저임금 상승 혜택이 더 커지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내겠다는 게 정책 목표인데 지금의 최저임금 산정 방식대로라면 상여금 비율이 큰 대기업이나 연차가 높은 근로자가 더 큰 혜택을 받는다"고 말했다.

◇재계 "최저임금 산정 방식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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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경우 2020년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고, 여기에 맞춰 직원들의 호봉을 인상하게 되면 근로자(1만5000명) 전체 인건비는 올해보다 2490억원이 더 든다. 작년 한 해 영업이익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회사 관계자는 "호봉 간격을 축소하거나 기본급을 올려 최저임금을 충족하는 대신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이나 수당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는데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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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는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추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체협약 협상에서 2개월에 한 번 지급하는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자고 노조에 제안했지만,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 주는 상여금은 최저임금 계산에서 빠지지만, 총액이 같더라도 매달 지급하면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최저임금 산정 방식이 우리 기업의 임금 체계와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제조업체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킨다"면서 "최저임금 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저임금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계산 방식 개선이 시급하다"며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 금품을 모두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데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상여금과 성과급,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하지 않지만, 영국·프랑스·아일랜드는 상여금과 숙식비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상여금은 제외하지만, 숙식비는 포함하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최저임금 문제는 단순히 청년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원·하도급 계약 등 산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며 "최저임금 산정 방식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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