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독한 춤, 세계서 통했네요"

■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 최영규·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 한서혜

2000년대 초만 해도 세계적인 한국인 발레 무용수가 드물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스타 강수진(50·국립발레단장)이 유일무이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제2·3의 강수진들로 그득하다. 각국 정상급 발레단의 주역만 20여 명에 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탄생과 더불어 확립된 체계적 교육, 서구화된 신체조건, 유별난 근성 등의 결과다.

근 10년 활짝 피어난 젊은 발레 스타 10여 명이 이달 말 고국을 찾는다. 입단 4~5년 만에 각각 세계적 명성의 네덜란드국립발레단,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꿰찬 최영규(26)와 한서혜(28)는 개중에서도 'K발레'의 상징적 존재다. 오는 27~28일 서울국제무용콩쿠르 갈라(국립극장)에 오르는 이들을 전화로 만났다.

지난 17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인터뷰에 응한 최영규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와 라스칼라 발레의 수석이자 세계 최고의 발레스타 로베르토 볼레가 이끄는 이탈리아 공연투어로 바빴다. "어릴 적 인터넷에서 영상으로만 우러러보던 댄서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아직도 매일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1월 동양인 발레리노 최초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수석이 됐다.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다. 입단 5년 차였던 그에게 테드 브랜드선 감독은 "넌 때가 됐다. 확신이 든다"며 승급 소식을 알렸다.

"여전히 정신적 어려움은 많아요. 스스로 제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기 때문이죠. 이 과정이 더뎌질 때 많이 힘들죠." 매일 8시간씩 리허설을 하고 저녁에도 홀로 두세 시간씩 더 연습하는 날이 많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 원인으로 "독보적인 연습량과 노력"을 꼽았다. 인터넷으로 해외 발레단 채용이나 콩쿠르 정보를 훨씬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외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도 많다고 했다. "좀 더 큰 무용수가 되면 한국 발레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이나 유학 경험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받은 만큼 베풀고 싶죠."

한편 보스턴발레단의 스타 한서혜는 요즘 발레 인생의 절정을 맛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입단 4년 만에 수석이 된 그는 2016~2017시즌 개막작 '해적'의 첫 공연 주역으로 나서 현지 평단으로부터 '섬세하고도 싱싱한 매력의 소유자'(보스턴글로브지)라는 찬사를 얻었다. "메이저 발레단의 시즌 첫 공연 주인공이 되는 것은 제 일생의 꿈이었어요. 발레리나는 생명이 짧은 직업이잖아요. 꿈을 이룬 걸 보며 저희 가족도 많이 우셨죠."

미국 메이저 발레단에서 외국인 무용수가 4년 만에 수석이 되는 건 이례적 일이다. 17개국 출신 무용수들이 모인 국제적 단체지만 언어·문화 차이로 인한 은연중에 차별이 잔존하기에 더욱 힘들다. "초반에 영어 실력이 부족했을 때 무시를 당했죠. 지금은 모두 저를 수석으로 깍듯이 대우해줘요."

한서혜의 입단 후 연간 한 명씩 늘어 현재 보스턴발레단에 한국 무용수는 4명이 됐다. "공연 전 누군가 다쳐서 급히 대타가 필요할 때 단골로 불리는 건 늘 저와 한국 친구들이에요. 항상 준비된 상태라서 그렇대요. 묵묵히 불평 불만 없이 매일 연습해둬서 그런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한국 무용수들의 급격한 약진의 배경으로 체계적 교육의 확대와 달라진 신체조건을 든다.

박인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은 "1차적으로 신체조건이 좋아졌고, 19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이 설립되며 실기 교육과 체계적 콩쿠르 참여 지원이 늘어난 게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입단할 수 있는 무용단이 적은 것도 해외 진출을 가속화했다는 설명이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러시아 개방 후 구소련의 훌륭한 무용 스승들이 국내 유입되고 유학 1세대들이 귀국하며 교육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고 전했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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