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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벗기까지 30년…국가가 만든 '간첩' 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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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면 벙어리도 말 한다" 고문에 허위 자백…"나처럼 억울한 사람들 여전히 많아"

제주CBS 문준영 기자

노컷뉴스

지난 1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강광보씨(왼쪽에서 세번째)가 지인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문준영 기자)


"'무죄를 선고한다'는, 이 짧은 말 들으려고 내가 수십년을 기다렸습니다"

수사기관의 혹독한 고문과 조작으로 간첩이 돼야만 했던 70대가 30여 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법원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스스로 자백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강광보(76)씨의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강씨는 지난 1986년 5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반국가단체 지령을 받아 제주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게 죄명이었다.

30여 년이 지나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 가난 피해 일본으로 간 강씨…제주에 돌아와 시작된 수사기관의 고문

강씨는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가난과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강씨는 21살이 되던 해 가족들과 일본으로 밀항한다.

일본에는 강씨 친척들이 미리 정착해 생활하고 있었다. 강씨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공장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1979년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가족들과 다시 제주 땅을 밟게 된다.

강씨는 "당시 일본에 있는 친척 중에 조총련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로 적발되자 제주로 돌아가려고 일본영사관에 '조총련 활동하는 친척이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고 말했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약칭으로, 친북 단체로 분류된다. 강씨가 붙잡힌 1979년은 박정희 유신정권 시대로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다. 간첩조작 사건이 숯 하게 벌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강씨가 일본에서 제주공항으로 입도했을 때 공항에는 중앙정보부 직원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강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을 돌려보내고, 강씨를 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인근에 위치한 중앙정보부로 잡아가 사흘 동안 고문한다. 강씨는 이후 경찰서 외사과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강씨는 외사과에서 밀항 경위 등을 조사받다 정보과로 옮겨졌고, 제주시 관덕정에 위치한 경찰서에서 60여 일 동안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강씨는 "몽둥이로 밥 먹듯 맞고 전기고문도 받았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979년 10월 26일 이후가 돼서야 고문이 끝나고 경찰에서 풀려났다"고 말했다.

◇ 7년 뒤 찾아온 보안 부대, 다시 시작된 고문

강씨는 경찰 조사 이후 7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낸다. 하지만 1986년 보안부대가 찾아오면서 삶이 뒤바뀐다.

강씨는 1986년 1월 24일 경 보안 부대 수사관들에게 영장 없이 체포돼 현 제주시 일도이동 주민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건물로 끌려간다.

건물 외관에는 '한라기업사'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강씨는 이곳에서 40여 일 동안 온갖 고문을 당한다.

강씨는 "보안부대에 잡혀갔을 때 수사관이 군복을 입힌 다음 '여기 오면 벙어리도 말을 하게끔 만든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인간 도살장이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씨는 "잡혀갔을 때 경찰 정보과가 나를 풀어줬는데 왜 7년이 지나 다시 이러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계속된 고문에 허위 자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강씨를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제주로 넘어온 간첩으로 낙인찍었다.

강씨는 국가기밀과 군사기밀을 탐지, 수집했다는 누명을 쓰고 1986년 5월 징역 7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는다.

강씨는 이후 광주교도소와 전주교도소에서 5년 4개월을 복역하고 1991년 5월 25일 출소한다.

◇ 30여년 지나 무죄선고 받은 강씨, "나처럼 억울한 사람들 여전히 많아"

강씨는 지난 2013년 재심을 청구하고 4년 지나서야 무죄를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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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사진=자료사진)


재판부는 "강씨는 불법 구금 당시 변호사 조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고, 강씨가 영장 없이 보안부대에 불법 구금돼 있는 상태에서 수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별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강씨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했고, 강씨가 수사 초기부터 방대한 내용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스스로 장황하게 자백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7일 오후 2시에 열린 재판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강씨는 밖으로 나와 "'무죄를 선고한다'는, 이 짧은 말 들으려고 내가 수십년을 기다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씨는 "재판부에서 허위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밝혀내 줘서 고맙다"며 "아직 나처럼 온갖 고문으로 징역살이를 한 분들이 있다. 하루 속히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씨는 지난 1991년 출소 이후부터 홀로 지내고 있다. 자식과 아내가 있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뒤 가정이 산산조각 났다. 강씨는 앞으로도 남은 생을 홀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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