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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지금은 대화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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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냐 대결이냐 분명히 하라" 北, 대화 제의에 야유조 논평

核 안 내려놓고 미군 철수와 한·미 훈련 중지도 요구해

이런 조건 수용하는 대화는 대한민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것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대화인지 대결인지 분명히 하라." 한·미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난 4일 북한이 던진 야유 조의 논평이다. 지금 문 대통령의 선택은 '대화'다. 북한이 무어라고 조롱하든, 야유하든 문 대통령은 우선은 대화일로(一路)로 가고 있다. 이번 주초 남북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까지 제의하고 있다. 그는 균형을 맞추려는 듯 '제재와 압박을 병행한 대화'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제재와 대화'는 모순이다. 그 모순을 어떻게 풀 것인지, 대화가 안 되면 결국 대결로 갈 것인지 그는 머지않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기왕의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의 대답은 확실하다. 노동신문은 "우리가 자위(自衛) 억제력(핵무기)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덤벼야 하지 않겠는가" "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괴뢰들이 그 무슨 '군사적 대응'을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가소롭기 그지없다"고 했다. 여기에 대고 우리는 언제까지 '대화'를 하자고 빌다시피 해야 하는가?

그 북한의 논평 중에서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것은 '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이란 대목이다. 안보 면에서 미국에 얹혀사는 듯 비치는 것도 그렇고, 그나마 사드라도 배치할까 했더니 온 좌파 내지 동조 세력이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 것' '대한민국 것'은 정녕 있기나 한 것인가.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이란 나라가 최하위 나라로부터 '네 것'의 힐난을 당하는 사태에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 있다.

북한은 대화와 관련해 여러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나 미사일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말 것. 둘째, 대북 제재를 전면 중단할 것. 셋째, 대북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넷째,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한 미군 철수는 당연한 것이고 한·미 동맹 존속 여부도 응당 거론될 것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무장해제당하고 북한 경제 재건의 밑거름이나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온 경제적 여유와 선진적 생활 여건 등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대화가 아니라면 '대결'로 가는 것이다. 북한은 대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로서는 군사력을 키워 북한이 섣불리 우리를 집어삼킬 수 없도록 대응하고 국방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했고, 또 주변국들이 한반도를 '대리(代理) 각축장'으로 이용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해 스스로의 국방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대신 세계의 경제 시장에서 후발국으로서 속도전에 치중하고, 자본주의에 심취해 '잘 먹고 잘사는 데' 올인했으며, 짧은 기간에 고속 성장한 민주 의식에 겨워 방만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는 탓에 우리는 핵보유국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너무 무심하고 안이했다. 정치권과 국민은 걸핏하면 군대를 줄이고 군 복무 기간을 자르고 국방비를 삭감하고 그것도 모자라 방산 비용을 사기해 먹느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무임승차자(free-rider)'라는 비아냥을 듣게까지 됐다. 마침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첫날 재래식 무기로만 한국 쪽에서 6만명이 죽고, 계속될 경우 30만명의 인명 피해가 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뉴욕타임스). 전문가들은 한국 측의 방어 전략에 대해선 "뾰족한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군사력, 국방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력이란 사상누각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다. 대결 의지 없는 대화는 굴종이다. 힘(武力)없는 나라는 외교의 전선에서 결코 대접받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G20에서 돌아와 국무회의 석상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우리에게 해결할 힘도 있지 않고 (또)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고 말했다. 근자에 문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현실감이 실린 것이었다. 세계의 각축에서 '힘'이 무엇인지를 실감한 것일까?

우리는 지금 이 상태로는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을 안고 대화로 갈 수 없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으로서는 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사력의 균형을 이룰 때 대화로 가야 한다. 남의 신세나 지는, '제 것이라고는 없는' 지금으로서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국방력을 기르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에 신세(?)를 지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나 미국을 상대로 '외교'할 때가 아니다. 외교는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로 갈고 닦아야 한다.

[김대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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