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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역할극 게임이었나, 살해 지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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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살해공범 재판서 변호인·검찰 치열한 공방]

- 변호인측 증인 "역할극으로 생각"

'전선 감아놨어'등 내용 끔찍해 실제상황으로 생각지 못했을것

- 검찰 "카톡 대화, 범행공모 증거"

살해범의 '잡아왔어' 메시지에 '살아있어?' 묻는건 이미 계획 안것

조선일보

검찰은 김양과 박양의 카톡 대화가 역할극의 형식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이 사전에 범행 계획을 공유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17일 오후 2시 인천지법 413호 법정. 인천 초등생 여아(8) 유괴살해 사건의 공범 박모(19)양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형사15부(재판장 허준서) 심리로 진행된 이날 재판의 쟁점은 박양이 주범 김양(17)에게 살인을 하도록 부추겼는지(교사·敎唆), 아니면 단순히 범죄를 하는 데 도움을 줬는지(방조·幇助)를 가리는 것이었다.

이전 재판에서 김양은 "박양의 지시로 유괴·살해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양은 "김양에게 했던 지시는 평소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역할극의 일부로 한 말일 뿐 실제 상황을 가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캐릭터 커뮤니티는 온라인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만든 캐릭터로 역할극 놀이를 하는 가상공간이다.

김양은 지난 3월 29일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만난 초등학교 2학년 여아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아파트 옥상의 물탱크 근처에 버린 혐의(영·유아 약취 유인 및 살인)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박양은 김양이 범행 당일 가지고 온 시신의 일부를 받아 버린 혐의(살인방조 및 사체유기)로 구속 기소됐다.

김양은 범행 후 박양과 카톡으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잡아왔다. 상황이 좋았어.'(김양) '살아있어? CCTV 확인했어?'(박양) '살아 있어. 여자애야. 목에 전선을 감아놨어.'(김양) '손가락 예뻐?'(박양) '응 손가락이 이뻐.'(김양)

검찰은 박양이 김양과 사전에 범행 계획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불쑥 메시지를 보내도 대화가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김양이 범행 후 실제로 박양에게 건넨 시신의 일부 중 하나가 손가락이었다.

이날 검찰은 변호인 쪽에서 부른 증인 이모(20)씨에게 박양과 김양이 카톡으로 나눈 대화의 방식이나 내용이 캐릭터 역할극의 일상적 방식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검찰은 이씨에게 다짜고짜 "그거 잡아 왔어?"라고 물었다. 이씨가 당황한 듯 "뭘요?"라고 되물었다. 검찰이 다시 "그거 잡아봤냐고"라고 하자 이씨는 "네?"라고 답했다.

검찰은 "만약 검사와 증인이 사전 상의를 했다면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에 답을 했겠죠"라고 물었다. 이씨는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또 이씨에게 "김양은 박양과 통화하면서 울부짖으며 패닉 상태로 '눈앞에 사람이 죽었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역할극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씨는 "잘 모르지만, 사람마다 다르지만…"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2014년 박양과 캐릭터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돼 10여 차례 만나고, 역할극도 3차례 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밝혔다. 이씨는 앞선 박양 변호인 심문에선 "(김양과 박양의 카톡 대화가) 역할극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현실 대화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 둘이 나눈 대화의 내용이 현실이 아닌 역할극에서나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검찰은 이날 70여분 만에 재판을 끝냈다. 검찰은 김양과 박양이 주고받았다가 삭제해버린 트위터 대화 내용이 복구되면 박양의 살인교사 혐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번 사건 이전에 했던 역할극의 트위터 대화 일부는 남겨놨다.

검찰은 "미국 법무부가 삭제된 대화 내용을 복구하려고 트위터 본사에 서버 압수수색 영장을 제출했다는 연락을 해 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 달 4일까지 검찰이 복구한 트위터 대화 내용을 제출할 경우 내용을 검토해 박양의 혐의를 '살인방조'에서 '살인교사'로 바꿀지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박양의 다음 재판은 8월 10일 오후 2시로 결정됐다. 이에 앞서 8월 9일 오후 2시에는 김양의 구형 공판이 열린다. 재판부는 상황에 따라 김양의 구형 공판을 하루 늦춰 10일에 박양과 같이 재판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인천=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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