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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목적 갖고 쓴 소설, 문학적으로 성공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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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기사단장…' 출간 기념 한국 독자들에게 이메일 보내

조선일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사진)가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문학동네 출판사에 보낸 이메일로 작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갈등을 풀어갈 문학의 역할에 대해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견해이지만,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이냐 백이냐' 하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라며 "소설(이야기)은 그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일종의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가 아닐까요"라고 밝혔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참사의 슬픔도 암시한 무라카미는 한국의 '세월호 문학'과 관련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가 유효하게 표현하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을까요? 이건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라며 "한 가지 기억해둬야 할 것은 '어떤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므로,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는(혹은 지워버리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이런 시도에 꼭 도전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구축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무라카미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제 정의에 따르면 이야기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몸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넘쳐나는 것"이라며 "의미나 정의, 무슨무슨 주의(主義) 같은 것을 아득하게 넘어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성이나 선악의 개념마저 초월하기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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