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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현장에서] 정부서 지원책 흘리자 ‘최저임금 인상안’ 덥석 수용한 경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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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막판까지 노사 팽팽한 대립

“합의 안되면 공익위원 표결 기권”

최임위 위원장 엄포, 수정안 급물살

일부 위원 ‘포퓰리즘’ 반발도

중앙일보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 16.4% 인상(시급 7530원)됐다. 월급으론 157만3770원, 연봉 1888만5240원이다. 사상 최고 인상액(1060원)이다. 어떻게 이런 유례없는 인상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노사 중 어느 한쪽도 퇴장하지 않고 노사자율 투표로 말이다. 결정적 역할을 한 건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사용자 측 위원의 변심이었다.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심의 때면 늘 동결 또는 소폭 인상안을 내놨다. 올해도 예외 없었다. 심의 막판인 15일 오전 제11차 회의에서 경영계가 낸 3차 수정안은 4.2% 인상한 6740원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인 같은 날 12차 회의에선 최종 수정안으로 12.8% 인상된 7300원을 써냈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조차 “깜짝 놀랐다”고 했다. 1988년 최저임금이 시행된 이후 경영계에서 낸 사상 최대의 인상안이어서다.

노동계의 태도도 미스터리다. 즉각 1만원(54.6% 인상)을 주장하던 노동계가 최종 수정안으로 16.4% 인상으로 확 낮췄다. 경영계의 인상안과 차이는 불과 230원이다. 같은 날 제11차 회의에서 낸 3차 수정안은 28.7% 인상된 8330원이었다.

노사 양측이 몇 시간 만에 어떻게 이처럼 돌변할 수 있었을까. 최임위 공익위원의 묘수와 정부의 뒷거래가 절묘하게 먹혀든 결과다. 어수봉 위원장은 3차 수정안을 받아본 뒤 “매년 공익위원이 인상 범위를 제시했으나 올해는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공익위원 조정안도 없다. 노사 양쪽이 낸 최종 인상안만 놓고 표결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특히 “그렇다고 애초에 낸 무리한 요구안을 계속 고집하면 공익위원이 모두 기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공익위원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과반수 득표를 할 수 없다. 양측의 안 자체가 무효로 처리된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는 최저임금 없는 해가 된다.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시간당 1000원을 주든, 100원을 주든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어느 쪽이든 기존 입장을 고수하다간 투표에서 상대가 제시한 안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수용 가능한 수정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상·하한선 없는 눈치작전이 진행된 셈이다.

여기에 정부의 물밑 거래가 더해졌다. 정부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책을 미리 흘렸다. 최임위에 따르면 정부는 “인상분의 8% 정도는 정부가 현금으로 지원해준다. 조금만 더 쓰라”고 경영계를 설득했다. 경영계는 정부가 8%를 보전해준다면 8.6%를 더한 12.8% 인상안을 낸 들 실제는 4.8% 인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예년의 인상폭(7~8%)보다 낮은 인상률이니 사용자로선 생색을 낼 수 있었던 셈이다.

한 번 오른 최저임금은 깎을 수 없다는 건 안중에 없었다. 기존의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하고 정부의 개입을 받아들였다.

노동계는 사용자 안이 채택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게 최저임금위원회 측의 전언이다. 그래서 최종 수정안이 7000원대로 낮아질 수 있었다.

표결에선 노동계 안이 받아들여졌다. 익명을 요구한 공익위원은 “표결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용자 안이 유력한 분위기였지만 결과는 ‘정부가 8%를 보전해주면 경영계는 8.4% 인상을 감수하라’는 역선택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경영계의 완패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거래제의가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일부 공익위원이 “정부가 돈을 뿌려서 임금을 보전하는 것은 전세계에 사례가 없는, 포퓰리즘”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다.

정부의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정부는 “내년 한 번만 지원한다”라고 못박았다고 공익위원이 전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여론이 ‘세금으로 최저임금 올린 것’ ‘정부가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할 것”이라며 “그런 여론 압박을 이용해 산입범위 조정이나 업종별 최저임금 도입과 같은 제도개선에 나설 방침”이라고 경영계를 설득했다. “정부가 부작용을 알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태로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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