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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다독다독]‘라틴어 수업’과 막말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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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언어적 도구로서 라틴어를 공부하고 문헌의 해독력을 높이고 유창하게 라틴어를 구사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라틴어의 단순한 암기를 지양합니다.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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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인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은 지향점이 분명합니다. 그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는 배와 같다”고 말합니다.

배가 정박되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 때문입니다.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것은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거품을 바라보면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라틴어를 비롯해 모든 언어는 제대로 잘 사용할 때에 타인과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줄 알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유명 인사의 강변보다, 몇 마디 단어로도 소통할 줄 아는 어린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의 수업은 라틴어 동사 활용(변화)표를 달달 외울 필요가 없이 머릿속에 ‘책장’을 마련한 다음 이 책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는 수업입니다.

그래서 첫 수업은 휴강을 하고 학생들에게 운동장에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기를 권합니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 ‘보잘것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언어 학습은 “학습의 방향성이 다른 학문들에도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공부할까요? 저자는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는 무신경해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의 신음소리는 모른 척하기 일쑤입니다.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를 한 머리만 있고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에 그 공부가 무기가 아니라 흉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모두가 저만 잘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경향신문 특별팀이 정리한 <부들부들 청년>(후마니타스)에서는 “2015년 8월 기준 임금 근로자로 신규 채용(근속 기간 3개월 미만)된 15~29세 청년의 64%가 비정규직”인 현실, “저소득층 청년 가구가 한 달에 고작 81만원을 벌고”, “계약 기간 1년 이하의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확률이 20%”나 되는 현실에 많은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와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너무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는 정치인들의 ‘막말’이 젊은이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막말 정치인은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단어를 단순하게 암기만 한 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는 저자의 충고부터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식은 삶과 결합해 지혜가 되는 법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얘야 밖에 비가 온다”고 말하면 며느리는 그 말을 “빨래 걷어라”로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문장 자체에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법조문’이나 관행에 갇혀 있는 정치인들은 이렇게 지식 전체를 잘 버무려서 지혜를 만드는 능력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명문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서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한 정치인이 학교비정규직 및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동네 아줌마들’이라 말하며 ‘미친 ×들’이라고 욕을 해서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그 같은 정치인들부터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자신이 왜,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는지를 다시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인의 반성과 상관없이 ‘미움 받을 용기’를 배우고, ‘자존감 수업’을 받았던 젊은이들이 이제 이 책을 읽으며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자기배려’ 또는 ‘자기연민’의 지혜부터 습득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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