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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속담말ㅆ·미]팔랑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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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려고 끌고 갔다. 그러자 탈것 멀쩡히 두고 걸어간다며 사람들이 비웃어서 아들을 태웠다. 그러자 아버지는 걷는데 아들만 타고 간다며 노인이 나무랐다. 그래서 아버지가 타고 갔더니 불쌍하게 자식을 걷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타고 가자 당나귀 혹사시키면 제값 못 받는대서 당나귀 다리에 장대 끼워 둘이 메고 갔다. 그렇게 다리를 건너다 눌린 다리가 아픈 당나귀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물에 빠트려 죽이고 말았다.” 라퐁텐 우화집에 실린 <부자(父子)와 당나귀>라는 이야기입니다.

작사도방(作舍道傍)이란 말이 있습니다. 길가에 집 짓는 이는 지나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에 흔들려 제때 집을 짓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집이란 게 한 번 잘못 지으면 고치기 어려우니 짓는 내내 불안하거든요. 또 ‘남의 말 다 듣다간 목에 칼 벗을 날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데’ 하고 덩달아 하다 보니 그들 따라 감옥에 들어와 있습니다.

줏대 없이 남의 말에 솔깃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을 요즘 ‘팔랑귀’라고 합니다. 팔랑귀는 집에 없는 것이 없고 안 따라해 본 것이 없지요. 뉴스라면 모두 믿고 홈쇼핑 채널 앞에서 ‘어머, 이건 사야 돼’를 연발합니다. 의지와 소문을 담아두기엔 그릇도 깊지 못해 자기 계획과 남의 일까지 쉽게 말해버립니다.

단체대화방에서도 팔랑귀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여과 없이 열심히 퍼 나르는 사람, 그걸 생각 없이 그대로 믿고 욕하는 사람, 심지어 군중심리에 빠져 성희롱까지 동조하다 싸잡혀 피해자에게 고소당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합니다.

‘열 사람이 백 마디를 해도 들을 이가 짐작’입니다. 귀가 쫑긋할수록 불안한 동물이겠지요. 당신의 귀는 당나귀인가요, 코끼리인가요. 분별 있는 어른은 영화에 흥분해 망토 두르고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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