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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왜냐면] 보수언론은 ‘핵마피아’라고 고백하나 / 장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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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

개인 또는 집단이 기득권의 유지 및 확대를 꾀해도, 민주사회에서는 ‘권리’의 일종으로서 인정된다. 한편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이라는 점은 초등학생조차 알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의 발전에는 언론의 역할이 불가결한 만큼, 언론은 ‘중립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된 정보의 전달로 사회 구성원의 합리적인 판단을 지원하는 중요한 책무(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보수언론들은 기본적 책무를 외면한 채, 오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의적·단락적 기사 및 논평을 연일 게재하면서 특정 조직의 홍보기관처럼 일방적 선전 즉 프로파간다를 일삼고 있다.

즉,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지를 둘러싸고, 매몰 비용 및 지역경제 쇠퇴 등과 같은 과도기적 손실만을 강조하는 한편, 사고 리스크의 저감 및 에너지 공급 구조의 전환에 따른 고용 창출과 신규 산업의 성장 같은 중장기적인 장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보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적어도 보수언론이 책임있는 언론기관으로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추진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아래와 같은 몇가지 기본적 의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아야 마땅할 것이다.

첫째,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이 천연우라늄 정도로 낮아지는 데 최소 30만년이 걸린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핵발전소 가동(1954년) 뒤 벌써 약 60년이 흘렀지만, 방사능의 무해화 방법은커녕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 방법조차 찾지 못한 ‘화장실 없는 아파트’ 상태다. 신고리 5, 6호기가 가동되면 매년 약 5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더해질 것인데, 다음 세대에게 불량부채의 처분을 그저 떠넘기는 무책임한 판단을 시민사회에 요구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둘째,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의 수습 비용이 최소 약 215조여원(21조5000억엔)에 이를 것으로 발표했다. 또 2011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까지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으로 인한 생산물의 저감, 즉 간접적 피해액이 약 184조여원(1637억4000만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는 사고피해액 및 ‘체르노빌(보상)법’에 의한 보상액은 제외되어 있다.

만일 국내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두 나라보다 인구밀도와 산업집중도가 훨씬 높은 만큼 천문학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이 이미 붕괴된 ‘핵발전소의 안전신화’를 다시 꺼내어 핵발전소의 경제적 우월성(?)을 강변하는 ‘손익비교분석’의 근거는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현행의 전기요금제도에서 핵발전소 건설에 유리한 총괄원가 방식이 폐지되거나, 또 비용계산에 국제 수준의 안전대책 비용 및 공적자금의 투입분 등이 적절히 산입된다면, 과연 원자력의 요금이 다른 전원보다 싸다고 할 수 있는가?

셋째, 핵발전소의 입지 지역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해본 적이 있는가? 핵발전소 건설 5년 뒤부터 재산세 수입의 반감 등에 의한 지방재정의 불안정성, 정기 검사 기간에 한정된 일시적인 경기부양 등의 한계를 고려하면, 결코 핵발전소를 경제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일부 핵발전소 관련 기업의 일용직 근무 등으로 종래보다 소득이 늘어난 주민도 있겠지만, 그 대신 지역의 지속 가능한 1차 산업(농어업 등)의 쇠퇴 및 사고 발생 리스크를 고려하면 지역발전이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 인프라의 정비도 원래 지방교부금 또는 보조금에 의한 정부 사업인데도, 핵발전소 유치에 따른 지원 사업으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결국 입지 지역은 핵발전소에 종속된 상태에서 지역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발전소의 확대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

신고리 5, 6호기를 둘러싼 논의에서, 보수언론이 스스로 핵마피아의 일원으로서 ‘당사자 의식’을 분명히 한 점은 획기적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에 기본적 책무를 자각하여,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 같은 극적 반전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언론의 기본적 의무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치밀한 조사와 객관적 분석에 근거한 정보 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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