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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왜냐면] 당신이 꿈꾸던 나라, 당신이 죽어서도 꿈꾸던 나라로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일흔 해에 바치는 시 /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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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경림
시인



이제 이 땅에 봄이 왔습니다
당신과 함께 떠났던 봄이 촛불을 타고 왔습니다
장미와 함께 모란과 함께 왔습니다
오랜 세월 이 땅을 무겁게 짓누르던 먹구름이 걷히고
산과 들판, 강과 마을이 햇살로 빛납니다

당신이 떠나고 어언 칠십년
한때 이 땅은 형제들끼리 서로 죽인 시신으로
산과 강이 뒤덮이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두 동강 난 채 그 갈라진 땅에서 사람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에 허덕였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뜻을 잊은 세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탐욕한 무리들이
군홧발로 형제들의 목을 짓눌러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나라로
가장 바르지 못한 나라로 영원히 남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을 잊은 세월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배웠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피와 땀으로
당신의 뜻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당신의
말이 서서히 밝아 오면서
그리하여 비록 갈라진 반쪽 땅에서나마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부끄러운 나라에서 자랑스런 나라로 되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 위에 드리운
군홧발과 총칼을 몰아내면서는
이 땅엔 영원히 겨울이 오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나라와 땅이 갈라져 있는데 어찌 눈바람이 자겠습니까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전쟁놀음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단숨에 온 세상을 날려 버릴
위험한 폭탄을 만드느라 광분하고
그것을 구실로 또 겨울은 닥치고…

이제 이 땅에 다시 봄이 왔습니다
당신의 뜻 당신의 말을
끝내는 잊지 않은 이 땅에 촛불을 타고
장미와 함께 모란과 함께 봄이 왔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는 이 봄을 빼앗기지 않으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뜻하던 나라
당신이 바라던 나라가 되게 하렵니다
당신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 땅을
당신이 꿈꾸던 당신이 죽어서도 버리지 못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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