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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중심 소재…히가시노 게이고 v 하루키,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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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프랙털 구조' 가진 그림 등장하는 '위험한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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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그가 그리는 것은 아주 신비한 그림이었다. 이제는 정확히 떠올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무슨 도형 같기도 하고 단순한 무늬 같기도 하고, 한참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그림이었다는 게 생각나곤 했다. 무엇을 그리느냐고 물어본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돌아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도 잘 몰라.”(중략) “누가 그리라고 하는데?” “글쎄다, 하느님인가?”'('위험한 비너스' 중에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필적할 만한 강력한 국내 '팬덤'을 가진 일본 작가가 있다면 장르는 다르지만,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작가 모두 '대중적'인 작가지만 하루키는 '순수 문학'에 가깝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표적인 추리문학 작가다.

지난 2월 교보문고의 소설 전문 팟캐스트 '낭만서점'이 공개한 2007~2016년 교보문고 온·오프 일본 소설 판매량 집계를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1위로 나타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2위,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3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4위였다. 하지만 30위 안에 포함된 작품이 총 8편에 달해 판매만을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4편이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볍게 눌렀다.

지난주 서점가에는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가 출시되면서 더운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바람이 몰아쳤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현대문학)도 이에 조금 앞서 여름 시장을 겨냥해 국내 출간됐다. 우연히 두 작품 다 그림이 중심 소재다.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화가인 주인공이 임시로 살게 된 저명 일본 화가의 집에서 발견한 그림이다. 요양시설에 들어가 있는 일본 화가가 그렸을 이 그림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앞부분에서 호색가인 돈 조반니가 자신이 집적거린 여성의 아버지인 기사단장을 찔러죽이는 장면을 묘사한다. 여기에 한 귀퉁이에는 일본 기담에 등장하는 인물인 '긴 얼굴'의 바짝 마른 사나이가 돌로 된 관뚜껑을 열고 살인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전체적으로 독특한 느낌의 구상화다.

반면 '위험한 비너스'에 나오는 그림은 정밀한 추상화다. 자폐의 일종이면서 특출한 재능을 동반하는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의 아버지가 그린 이 그림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프랙털 구조'를 가졌다.

‘위험한 비너스’는 수의사인 주인공에게 한 매력적인 여성이 자신이 이부형제의 부인이라며 전화를 걸어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생이 실종됐다면서 도움을 청하는 여성에게 점점 빠져드는 주인공을 보면서 독자들은 위험한 비너스가 누구인지 뻔히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점점 그림을 그렸던 아버지와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실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여느 추리소설처럼 살인이나 실종 사건의 속임수을 푸는 것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개인의 심리나 살인을 둘러싼 사회적 정황들을 중심에 세운다. 주인공과 남동생 부인과의 아슬아슬한 관계, 비밀을 품은 가족들, 양아버지가 행하던 비밀스러운 연구 등 추리적인 요소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야기를 움직이는 '동력'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작들처럼, 손에 쥔 순간 다음 대목이 궁금해 계속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와 철학 분야까지 건드리는 하루키에 비해 담은 세계가 소박하지만 그 점 때문에 어깨에 힘을 빼고 작품의 오락성을 즐길 수 있게 한다. 강력한 '한 방' 대신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작품 곳곳에 던져둔 작가 덕에 독자들은 읽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고, 마지막 한 페이지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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