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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강학중의 가족이야기] 효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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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딸과 사위가 손녀를 데리고 왔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매일 보는 녀석인데도 다시 보니 더 예뻤다.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을 바라보는데 곧잘 앉기도 하고 웃어도 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등 ‘예쁜 짓’을 한다. 딸아이에게 “봄이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웃음이 최고의 효도다. 너희가 결혼을 안 했다면 이런 효도를 어떻게 할 수 있겠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결혼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아이를 낳는 자식은 없겠지만 ‘결혼과 출산이 효도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자녀가 조금은 있었으면 한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인 ‘효도’를 젊은이들은 옛날의 유물쯤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소에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르던 전통적인 효도를 하라는 게 아니다. 제사를 모시고 아들을 낳아 대를 잇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여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어버이날이나 명절이 되어야 ‘부모’나 ‘효도’를 잠깐 떠올릴 뿐, 선물이나 용돈 조금 드리는 걸로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자식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가정을 이루고, 탈 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게 부모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의 효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음 세대라는 ‘막처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부모들 역시 노후에 자식들이 짐이 안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현금이나 선물을 좋아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녀들과 함께하는 즐겁고 따뜻한 시간이다. 나에겐 더 이상 효도를 할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살아생전의 효도가 효도이지 부모님 돌아가신 뒤, 제사 모시고 산소로 찾아뵙는 것은 때를 놓친 자기 위안일 뿐이다.

연로(年老)한 어르신들의 특성을 조금만 이해해 드리자. 신체적인 노화로 행동이 굼뜨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기억력이 떨어져서 물어봤던 것을 묻고 또 물어봐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는 없을까? 진심으로 부모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웃는 얼굴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얘기해 드리는 것, 부모님의 방식을 존중해 드리고 자그마한 일이라도 부모님과 상의하는 태도가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아무리 효자라고 한들 부모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의 100분의 1을 갚을 수 있을까, 아니 1000분의 1이나마 보답할 수 있을까? 효도를 아내에게 떠넘기거나 아내를 통해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하는 효도 때문에 아내와 사사건건 싸운다면 그것은 진정한 효도가 아니다. “부모가 온효자여야 자식이 반효자 된다”는 속담처럼 부모가 효도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생산성이나 속도, 효율, 변화라는 잣대로 평가하지 말고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진심으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평소에는 잊고 산다. 부모님이 우리 가족의 구심점이요, 중심이라는 사실도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어버이날이나 명절, 부모님의 생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상실의 크기와 깊이를 절감한다.

오래전 혼자가 되신 장모님 한 분이 나의 유일한 부모님이다. 아내와 처형들, 처제가 너무나 효녀여서 나는 자식 노릇을 미루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반성했다. 대단한 사위도 아니고 특별한 효도를 한 것도 없지만 이제 다시 장모님께 자주 찾아뵙고 전화드리는 ‘강 서방’이 되어야겠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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