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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기자수첩] 탈원전 3개월에 결정할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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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문재인 정부가 지난 27일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해 건설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중단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정부는 불특정 시민배심원단을 꾸려 설문조사와 TV 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뒤 공사를 영구 중단할지, 아니면 재개할지 최종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개월은 부족한 시간이다. 탈원전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용이나 에너지 수급 조사는 물론, 사전지식이 없는 시민 배심원단에게 고도의 원전 기술을 이해시키기에 모자라다.

대만은 탈원전 결정을 서두르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었다. 대만은 지난해 말 정권이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3기의 원전 중 2기를 가동 중단했다. 그러나 이달초 35도를 웃도는 기습적인 더위에 전력예비율이 3.7%까지 떨어져 경고가 발령됐다. 이에 대만전력공사는 수력발전 가동률을 높이고, 비상 발전기를 가동해야 했고, 급기야 지난 6일 정부에 정기보수 중인 3호 원전의 재가동을 앞당겨달라고 요청했다. 국가 전력생산의 30%를 원전에 기대는 한국이 염두에 두고 시뮬레이션해 볼 문제인 셈이다.

원전 건설 백지화로 생길 손실을 어떻게 메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대만은 건설이 완료 직전이었던 4번째 원전의 완공을 포기하면서 93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대만 정부는 이를 장기적으로 전기료 인상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26일 대만 싱크탱크인 국립정책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52.6%가 탈원전을 위한 전기세 인상에 반대한다고 답해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정부를 믿고 원전 기술 등에 투자해왔던 기업들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5월 “독일 정부가 원전 폐쇄 결정을 서두르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원전 기술에 투자해온 기업들에 손해를 끼쳤다"며 "독일 정부가 이들 기업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배상액 규모는 19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탈원전 정책으로 매출 30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시민배심원단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새 정부가 롤모델로 삼으려는 독일은 2011년 탈원전을 결정하기에 앞서 일반 시민이 아닌 민간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독일 전 환경부 장관인 클라우스 퇴퍼를 위원장으로 두고, 독일의 대표적인 화학기업인 바스프의 위르겐 함브레이트 회장,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 울리히 피셔 가톨릭 주교, 유럽연합 환경자문회의 의장인 미란다 슈로이어 베를린 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 등이 위원회에 포함됐다. 원전 같은 극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서 '불특정 국민'이 정책의 방향타를 쥐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재고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원전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 많은 국민이 공감한다. 그렇지만 서둘러서는 안된다. 국민이 전기세 인상과 같은 부담에 공감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원전을 없애는 데 따르는 비용과 신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투자 등 고려해야할 부분도 많다. 수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의 에너지 백년대계는 3개월 안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동희 산업부 기자(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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