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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샅바 대신 헬멧 쓴' 천하장사 "직장과 씨름이 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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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인생 제 2막 황규연 인터뷰

목포=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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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샅바 대신 헬멧 쓰죠' 전 천하장사 황규연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직장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최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마친 뒤 조선회사의 상징인 크레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 촬영은 산업보안을 위해 금지돼 회사 입구에서만 허락이 됐다.(목포=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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샅바를 맨 맨몸의 거구로 모래판을 주름잡거나 의젓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거친 상남자의 목소리로 선수들을 지도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헬멧에 작업복까지 영락없는 평범한 직장인 차림의 천하장사는 여간 낯선 게 아니었다.

천하장사 2회, 백두장사 11회 등 16번이나 꽃가마를 탔던 씨름인 황규연(42)의 현재 모습이다. 지난해 말까지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 씨름단 감독이었던 그는 세계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씨름단이 해체되면서 샐러리맨으로 변신했다. 현재 그의 직급은 현대삼호중공업 총무부 과장.

근 1년 만에 만난 황규연은 눈에 띄게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선수와 지도자 시절 150kg에 육박했던 황규연은 "일반 직장 생활을 한 지 6개월 만에 20kg 가까이 빠졌다"고 귀띔했다. 현재는 120kg 남짓으로 씨름인보다는 건장한 일반인 수준이다.

씨름을 떠나게 된 과정의 마음고생과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녹록치 않은 삶이 저절로 묻어났다. 황규연은 "씨름이 아닌 사무 업무는 처음이라 생소하다"면서 "적응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인터뷰가 진행된 시점도 업무를 마친 뒤여서 평소와 달리 생기가 없었고, 목소리에도 피곤함이 묻어났다.

두 세기에 걸쳐 풍미했던 모래판을 완전히 떠난 지 꼭 반년. 천하장사로 군림했던 인생 제 1막을 거쳐 180도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인생 제 2막을 이제 막 시작한 황규연. 제 2의 삶에서도 천하장사를 꿈꾸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명문 현대 씨름단의 마지막 사령탑

사실 황규연은 한국 씨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씨름이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프로에 데뷔해 실업 무대를 거치면서 17년 동안 모래판을 누볐다. 2001년 '골리앗' 김영현을 꺾고 천하장사에 오르며 제 1의 전성기를 누렸다. 황규연은 세기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씨름단이 해체되고 인기도 하락세에 접어들며 최홍만, 김영현 등 거구들이 잇따라 종합 격투기로 외도를 하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모래판을 지켰다.

절친인 이태현(현 용인대 감독)마저 격투기 샛길로 빠졌을 정도였다. 황규연에게도 러브콜은 있었다. 황규연은 "최홍만이 성공한 이후 전 씨름 선수에게 격투기 제의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내 타입이 아니고 씨름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거부했다"고 밝혔다. "야구의 이종범처럼 씨름판 지킴이가 필요하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2009년 당시 돌아온 이태현을 누르고 최고령 천하장사에 오른 뒤 기자에게 남긴 말이었다.

그랬던 황규연은 본인의 뜻과 관계 없이 모래판을 떠나야 했다. 2013년 2월 공식 은퇴한 황규연은 이후 코끼리 씨름단 코치와 2015년 감독대행을 거쳐 2016년부터 정식 사령탑으로 활약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현대삼호중공업도 세계 조선업계의 불황을 피하지 못하면서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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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7회 천하장사 대회에서 황규연이 돌아온 절친 이태현을 꺾고 8년 만에 천하장사에 오른 뒤 기뻐하는 모습.(자료사진=대한씨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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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부였던 씨름을 그만두게 된 데다 최고 명문 구단의 해체를 바라봐야 하는 마음이 찢어졌다. 자신이 감독을 맡은 가운데 팀이 없어지는 상황이 누구보다 괴로웠던 황규연이다.

황규연은 "씨름단이 1983년 현대중공업을 모기업으로 창단해 2000년대 계열사인 삼호중공업으로 옮겨와서도 이어져왔다"면서 "나 역시 1990년대 말 활약하다 2006년 다시 와서 10년 넘게 몸 담았던 팀으로 애정이 각별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털어놨다. 2013년 은퇴한 황규연은 트레이너와 코치, 감독대행, 감독까지 모든 자리를 거치면서 씨름단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이후 현대삼호중공업 총무부로 입사하면서 황규연의 씨름 인생은 일단 1막이 마무리됐다. "선수로서 누릴 것은 다 누려 여한은 없다"지만 지도자로서는 아쉬움이 모래판에 가득 남았다. 황규연은 "2015년 감독대행 때 천하장사 정창조를 배출하면서 이듬해 정식 감독이 됐다"면서 "지도자 생활의 출발 시점이어서 부족한 부분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황규연은 "코끼리 씨름단 초대 황경수 감독님께 연락이 왔는데 '현대 씨름단이 황 감독으로 시작해서 황 감독으로 끝났다'고 하시더라"고 웃픈 농담을 전하기도 했다. 1980년대 황 전 감독은 모래판 최고 스타 이만기를 길러내며 명문 구단의 기틀을 쌓았는데 황규연은 씨름단의 5대 마지막 비운의 감독이 된 것이다.

▲해체-창단 과정의 오해와 진실

그렇다면 지도자 생활을 더 이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회는 없지 않았지만 황규연은 다른 길을 택했다.

현대 코끼리 씨름단은 다행히 전남 영암군청이 인수하면서 명맥을 잇게 됐다. 지난해 9월 인수가 확정된 가운데 영암군청 씨름단은 지난 1월 창단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가운데 영암군청은 최정만(금강급)과 최성환(한라급)이 잇따라 장사에 오르며 명문 구단의 저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직접 지도했던 제자들의 활약이 뿌듯하다. 황규연은 "후배들이 잘 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면서 여운이 남는 표정이었다. 이어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삶은 살고 있고 모두 어느 분야에서든 잘 하면 된다"고 무언가 의미가 있는 발언을 내놨다.

사실 황규연은 씨름단 해체와 재창단 과정에서 적잖은 오해를 받았다. 팀이 없어지는 가운데 혼자만 살기 위해 회사에 남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황규연 정도의 지명도면 영암군청 씨름단의 초대 감독으로도 충분하기에 이런 시선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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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 황규연(왼쪽)이 지난 2015년 천하장사 대회에서 우승한 정창조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자료사진=대한씨름협회)


하지만 여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황규연 본인은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씨름뿐 아니라 어떤 종목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만 했다. 새로운 팀의 자리도 빠듯한 상황인데 후배를 위해 양보한 면도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금도 예전 함께 지냈던 선수들이 가끔 황규연을 찾아 존경하는 선배의 조언을 구한다.

오랫동안 코끼리 씨름단의 살림을 맡았던 장우현 전 현대삼호중공업 지원팀장은 "사실 황 감독은 2016년 1월 1일 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이라면서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면 일반 사원으로 근무하는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선수들의 은퇴 이후를 위한 회사의 장기 계획이었다. 황규연에 앞서 2015년 이준우 전 한라장사 역시 은퇴 후 2015년부터 일반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만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씨름단이 해체돼 더 이상 사원이 될 선수들이 없어진 것. (사실 장 팀장 역시 지난해 여름 회사에서 명예퇴직자를 받을 때 미련없이 사표를 던진 뒤 현재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인 환경업체 대표로 역시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코끼리 씨름단의 황경수 초대 사령탑의 뒤를 이은 박진태 감독 역시 선수 은퇴 뒤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했고, 지도자에서 물러난 뒤 회사로 복귀해 정년을 마쳤다.

▲"업무 천하장사 올라 씨름재단 만들 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단은 '씨름인 황규연'이 아닌 '직장인 황규연'으로 자리잡는 것이 먼저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나이로 43살에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절대 쉬운 게 아니다. 감독이 아닌 황 과장의 업무는 산업보안과 운영 업무 지원이다. 굵은 손가락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를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황규연은 "씨름을 할 때는 운동만 하면 됐다"면서 "그러나 회사에서는 정신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회사 동료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면서 "여기에 운동할 때 고비를 넘긴 경험을 떠올리며 적응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황규연은 "운동할 때는 1등만 알아주는데 회사에서는 꼭 1등이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을 하면 된다"면서 "1등 스트레스에 비하면 이런 생각을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박진태 감독처럼 후배들을 위한 귀감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황규연은 "사실 박 감독님 등 선배들이 회사 생활을 잘 해주신 덕에 입사했다"면서 "평생 운동을 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공부도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을 평생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후배들도 은퇴 이후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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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호중공업 총무부 황규연 과장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보안 업무를 보는 모습. 이제 제법 씨름인에서 벗어나 샐러리맨의 티가 난다.(목포=노컷뉴스)


그렇다고 씨름과 완전히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황규연은 현재 전남씨름협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주말을 이용해 주로 생활체육 씨름대회를 찾는다. 황규연은 "이전에는 엘리트 대회만 나갔는데 생활씨름인들이 많이 좋아시더라"면서 "여기서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황규연의 꿈은 씨름으로 귀결된다. 인터뷰 말미에 황규연은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사실 한국 최초의 씨름재단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야구 박찬호, 축구 박지성, 역도 장미란 등 각 종목 간판스타들처럼 씨름도 재단이 있어야 하고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황규연은 "내가 자격이 될지 모르지만 만약 '황규연 재단'을 만든다면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미래의 천하장사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씨름 최고 스타 이만기 인제대 교수, 방송인 강호동 등도 아직 하지 못한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직장인 황규연'으로 성공해야 한다. 황규연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돈을 벌어서 꼭 꿈을 이루고 싶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씨름이 아닌 업무에서도 '천하장사'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씨름인 황 감독에서 직장인 황 과장으로 제 2의 삶을 이제 막 시작한 황규연의 씨름 인생 두 번째 모래판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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