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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최저가에 내몰리는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인근 주유소는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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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6년 알뜰주유소 진단](하) 고속도로 주변주유소 폐업위기

최저가 점수가 40%...고속도로 알뜰주유소도 후덜덜

확장일변도의 알뜰주유소 정책을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쟁을 촉발해 기름값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지만 지역별로 편중이 심하고 시장경쟁의 자생력을 훼손하는 부작용도 커지고 있어서다. 알뜰주유소가 늘고 일반주유소가 도태될 수록 더 정부의 힘에 의존해야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올해로 도입 6년째를 맞은 알뜰주유소의 명암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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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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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오늘내일합니다. 은행에서 돈 못 빌리면 주유소 접어야죠"

전북의 한 고속도로 인근에서 자영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현재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10년 넘게 한 곳에서 주유소를 해 온 A씨가 최근 폐업을 고심하고 있는 이유는 고속도로 알뜰주유소 때문이다.

고속도로 알뜰주유소(EX-OIL)는 최근 정유사주유소보다 50원 이상 싸게 휘발유를 공급하며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고속도로 주유소는 '바가지 요금'으로 악명이 높았다.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운전자라면 고속도로에 올라타기 전에 기름을 넣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해답을 바로 운영권을 쥐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찾을 수 있다. 도로공사는 일정기간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을 맡을 사업자를 선정할 때 '기름값'이 주변보다 낮은지 여부를 가장 많이 따지고 있다. 최소마진을 감수하지 않으면 계약이나 재계약을 따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월적 지위를 지닌 공기업의 개입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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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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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더 싼 고속도로 알뜰주유소…국도변 영세주유소 '폐업 위기'

28일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5월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에서 판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433.7원으로 정유사주유소(1484.7원)보다 50원이 저렴했다. 고속도로 알뜰주유소 휘발유값은 전국 알뜰주유소 평균값인 1454.3원보다도 20.6원 쌌다.

이같은 파격적인 가격은 알뜰주유소가 일반 정유사주유소보다 리터당 20~30원가량 싸게 기름을 공급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정유사나 대리점들은 대량으로 물량을 소화하는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에 공급가를 할인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A씨는 "정상적으로 정유사에서 공급받느니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에서 물량을 받아다 쓰는 편이 나은 경우까지 생긴다. 가격경쟁 자체가 안된다"며 "고속도로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인근 단골고객들을 붙잡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궁지로 몰리고 있지만 폐업이 쉬운 일도 아니다. 주유소를 운영하다 폐업하려면 시설물 철거비용과 오염된 토양정화 비용이 드는데, 이 비용은 매장 크기에 따라 1억5000만~3억원 수준이다. 이 때문에 그나마 폐업한 곳은 사정이 좀 나은 곳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폐업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주유소는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가짜석유 업자에게 임대전환하거나 그대로 버려져 석유 부정유통 온상으로 전락하는 것이 그것이다.

◇ '최저가 정책'에 고속도로 알뜰주유소도 후덜덜

고속도로 알뜰주유소 운영주들이라고 속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이렇게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로공사의 '최저가 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주유소 대부분은 도로공사가 위탁제로 운영하는 알뜰주유소다. 고속도로 하행선 주유소 102곳 중 82곳이 EX-OIL 주유소다. 이어 SK에너지 폴을 단 주유소가 12곳,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가 각각 3곳, GS와 무폴주유소가 각각 1곳이다.

도로공사는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고속도로 주유소가 시중보다 비싸다는 지적을 받은 뒤 다양한 방법으로 주유소 기름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도로공사는 매년 '운영 서비스평가'를 실시해 5년 단위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이 평가는 9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총점 200점 중 80점(40%)으로 가장 높게 책정돼 있는 것이 석유 판매가격과 매입가격 인하 노력 항목이다. 인근 지역의 일반 알뜰주유소보다 가격이 저렴할 경우 80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0점이다. 도로공사의 요구대로 석유 판매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경우 운영 평가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아 재계약 과정에서 탈락하게 된다.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은 연말평가에서 최하위 5등급을 연속 2회 받으면 바로 운영계약이 해지된다.

이 때문에 운영주들은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15년 고속도로 알뜰주유소는 정유사주유소보다 휘발유를 리터당 연평균 43.1원 싸게 팔았으나 지난해에는 62.7원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결국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의 대부분은 위탁운영 계약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영업 수익을 포기하고 최저가 판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병배 공정거래실천모임 대표는 “알뜰주유소에 정부가 200억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했는데 알뜰주유소의 가격이 조금이라도 낮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라며 “가격인하 효과가 있다 해도 더 큰 부작용과 사회문제를 낳고 있으므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그는 "알뜰주유소 신설을 중단하고 도로공사와 농협 등 공공기관이 알뜰주유소 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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