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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우보세]위선 한 스푼과 조세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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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맑은 날이었다. 새벽 종교행사를 다녀와 기분이 좋았다. 어제 지은 소소한 죄를 창조주에 떠넘긴 덕분이었다. 오늘 이대로 순결하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미팅을 위해 이동한 용산 부근에 차를 대려던 참이다.

옥외 사설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순간 수레바퀴 리어카 한 대가 입구를 막았다. 차를 눈치채지 못한 노인이 진입로의 폐지를 줍고 있었다. 차단기가 없던 곳이라 물리지도 못하는 상황. 잠시 고민하다 클랙슨에서 손을 뗐다. 3~4분 정도였다.

노인이 뒤늦게 비키며 차를 발견해 서둘렀다. 차창 밖으로 천천히 하시라 손짓했다. 약간 과장된 미소를 곁들였다. 그를 보내고 주차했고 시간표를 받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 주차료 계산을 했다. 시간상 30분을 예상했고 그 이전에 돌아와 돈을 냈다. 그런데 관리인이 1000원 더 달란다. 몇 분 초과했다는 거다. 시간표를 보니 차가 진입로에 걸렸던 때부터 계산돼 있었다.

순간 얼굴이 일그러져 따졌다. 그러자 그가 더 높은 데시벨로 대꾸했다. '1000원이 그리 아깝냐'는 투다. 씩씩거리다 추가된 돈을 던지듯 하고 키를 받았다. 서로 뒤통수에 듣기 싫은 욕을 한 바가지씩 건넨 것 같다.

이 기억이 2년쯤 되는데 매번 되살릴 때마다 두 볼이 화끈거린다. 당시엔 내가 정의고 주차장 관리인이 불의라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논리가 스스로 같잖다.

사실 애매한 진입로가 주차비 산정의 기준이냐 아니냐는 논외의 것이다. 그보단 내 아량이 1000원으로 부과된 것이 언짢았다. 곰곰이 되짚으니 그 한 스푼도 안되는 선의마저 남에게 떠넘기려 하지 않았나 싶다. 옹졸하고 염치없는 위선이다.

부끄러운 반성문을 적은 까닭은 이런 소아적 논리 혹은 책임 떠넘기기가 최근 곳곳에 있어서다.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사회 각계의 반응이 그렇다. 공공선을 위해 양보가 필요한 사안에 어디서도 자발적 자기 희생이 보이지 않는다.

석탄 화력발전사들은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 한다. 800만 경유차 오너들도 마찬가지. 경유가 인상안은 꺼내지도 못하고 좌초했다. 환경 재앙을 대비하려 탈원전 하자니까 전기료 조세저항 움직임이 불거진다. 비정규직 없애자니 정규직 노조는 남의 돈으로 인심을 쓴다. 성과연봉제 폐지에는 이미 받은 인센티브가 걸림돌이다. 건물주와 임대업자 저항은 조직적이다.

이 정도면 일부 이익집단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모습이다. 에너지와 미세먼지 대책은 결국 날 위한 건데 이해가 걸리자 모두 남 탓이다. 쓰레기 집단투기를 하며 난 조금 버렸단 식이다. 그동안 공짜로 썼던 공공재 가격을 서로 전가하려 안달이다. 그 이해가 당장 치명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난리다. 외제 경유차 오너들처럼 말이다.

양보와 희생이 우리 사회의 미덕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런 가치들이 사라졌다. 20년 전에 외환이 바닥났을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롱 속 금붙이를 내놨는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어림없다. 양극화가 가속화되며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위선일지라도 이제부터 손해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머니투데이

박준식 산업1부 에너지중공업 팀장/차장 기자

박준식 기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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