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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표절 의혹 교수, 학부생 리포트까지 베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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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대학원생이 대자보서 폭로

2005ㆍ2012년 학술지 논문 일부

영남대생 블로그 게시글과 일치

출처나 인용표시 전혀없어 비판
한국일보

전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이 작성한 대자보가 스승의날인 지난달 15일 서울대 인문대 광장에 붙어있다.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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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논문 표절 의혹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모 교수(본보 17일자 4면)가 인터넷에 올라온 대학 1, 2학년 학생 리포트까지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일고 있다. 동료 교수들은 “서울대 교수가 학부생 글과 관련해 표절 논란에 휘말린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반응이다.

28일 서울대 관계자에 따르면, 학내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박 교수의 표절 의혹 논문 20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05년 및 2012년 제출한 논문의 특정 부분이, 영남대생 두 명이 각각 학부수업 리포트로 제출한 뒤 개인 블로그에 올린 자료와 거의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 리포트 표절 의혹은 앞서 박 교수 표절 의혹을 제기한 피해 대학원생이 대자보로 제기하며 알려졌다.

본보 확인 결과, 박 교수가 2012년 학술지 '비교문학'에 쓴 '이태준과 김용준에 나타난 문학과 회화의 상호작용' 논문 중 "그의 소설에서는 최재서가 지적했듯이 특별한 사건이 없는 것은 물론 심각한 갈등이나 진취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2006년 당시 영남대 국어교육과 1학년 전모씨가 제출한 조별 과제물 중 "그의 소설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것은 물론 심각한 갈등이나 진취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 받기도 한다"는 문장과 거의 일치했다. 논문에는 출처나 인용 표시도 없었다.

대자보를 쓴 대학원생 K씨는 “참고문헌 등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최재서가 갑자기 언급되는 점이 인터넷 자료를 그대로 짜깁기한 정황”이라며 “해당 표현은 최재서의 이태준 관련 비평인 '단편작가로서의 이태준' 등에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의 해당 논문에는 2001년 고려대 박사논문, 1997년 성균관대 박사논문, 2002년 홍익대 박사논문 등과 유사한 문장도 곳곳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가 2005년 학술지 '한국현대문학연구'에 쓴 '말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김기림과 이태준의 문장론 비교' 논문 중 "이태준도 치밀한 배려와 의식적인 계산이 언어에 끊임없이 가해질 때, 현재적인 문장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기술의 계속된 수련을 강조하고 있다"라는 문장은, 2004년 당시 영남대 국어교육과 2학년 정모씨가 제출한 조별 과제물 중 "이태준의 경우, 특히 금속성의 정확함과도 같은 치밀한 배려나 의식적인 계산이 언어에 끊임없이 가해질 때, 현대적인 문장이 이룩된다고 보고 기술의 계속된 수련을 강조한다"는 문장과 거의 일치했다. 역시 출처나 인용 표시는 없었다.

박 교수와 해당 대학생들이 동일한 원본을 베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 최재서 비평가나 영남대 교수진 논문과 기타 학술자료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했으나 위와 동일한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떠한 출처나 인용 표시가 없었다는 점에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대학생 리포트를 박 교수가 그대로 베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표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날 연락이 닿지 않았다. 리포트를 작성한 당시 대학생들은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표절 의혹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베껴갔을 수 있다니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인 정모씨는 “나도 국어 수업마다 글쓰기 윤리를 가르친다”며 “글쓰기를 업으로 살아온 분이니 표절이 사실이라면 진정한 사과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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