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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기고]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는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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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신고리 원전5,6호기 건설공사의 중단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고리 원전5,6호기는 지난 해 공사에 들어가 현재 종합공정률이 28.8%를 기록중에 있다. 지금까지 집행된 공사비만 1조6천억원이어서 건설중단시 최소 2조6천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정부는 이와 관련 이해관계자나 에너지부문의 인사를 배재한 10명 이내의 인사로 가칭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뒤 3개월에 걸친 소통과 의제결정 과정을 거쳐 원전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첫째, 본질적인 ‘탈원전정책’은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채 고리원전1호기 퇴역행사장에서 대통령이 이를 선언하면 그만인 것인가. 또 신고리 원전5,6호기의 건설중단은 공론화로 결정하겠다고 하는 데 사안의 크기를 보면 이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공사중단 발표는 탈원전정책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건설중단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청와대도 정부도 신고리 원전5,6호기의 건설중단을 선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막대한 매몰비용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국민의 이해를 구할 것인가.

셋째, 정부의 조직이 있는데 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한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 위원회는 통상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이런 국가적 중대 사안을 가볍게 다룰 우려가 있다. 이 문제는 국무조정실의 사안도 아니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관업무이다.

넷째, 3개월만에 서둘러 결정하려는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발전설비의 건설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고 의사결정의 시급성을 요하지 않는다. 이미 매 2년마다 수립하는 기존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해 이렇게 서둘러 결정하려는 것일까?

에너지 부분의 전문가가 아닌 10명이내의 위원이 과연 3개월간 이 사안에 대해 공부하고 의견을 모은다 해도 시민배심원단이 판단할 수 있는 최적의 안을 내놓기 쉽지 않다.

다섯째, 우리나라는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이 있다. 이는 전력, 가스, 석탄 등 에너지원별로 수립하던 계획을 통합하고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계획이다. 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계자가 오랜 숙의를 거쳐서 수립한 계획이다. 그런데 공약으로 발표하고 대통령이 된 후에 선언해버리면 이런 국가계획이 하루아침에 휴지쪽이 되는 것이 가연 나라다운 나라인가? 수십 년간 국가가 지원하고 키워온 원자력 기술을 한 대통령이 수 명의 보좌진의 말만 듣고 처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여섯째, 이 문제를 과연시민배심원이 결정할 일인가? 배심원제도는, 판례 중심의 영미법 체계에서 법으로 명시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보통사람들의 생각(Commonlaw)을 묻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이다. 원자력발전이라는 과학기술적 사안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 인지에 의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바른 결론을 얻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영역은 일상적인 삶에서 경험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치에 의한 판단력을 형성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는 전문가의 수치적 판단에 기초해야 하는 영역이다.

일곱째,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가짜뉴스로 인한 대중적 오해와 우려가 심각한 상태다. TMI-2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는 초기 30여명이 사망자했으며 지금까지 방사선 후유증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최대 4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한 해 자동차 사망자수보다 적으며 이를 석탄화력으로 하였을 때 발생할 폐질환 사망자보다 훨씬 낮은 수치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공론화가 과연 정부측 발언대로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인가?

과학 기술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우리를 잘 살게 할 기술이다.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기술은 산업을 육성하고 국부를 창출한다. 둘재, 우리 국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기술이다. 국방, 우주 그리고 원자력이 바로 그런 기술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나라다운 나라라면 갖춰야 하는 기술이다. 물론 지금은 원전 수출도 유망하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원전산업을 안전에 대한 몰이해와 이념에 따라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없이 비전문가에 의해 서둘러 정책을 결정하려는 태도는 심히 우려스럽다.

머니투데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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