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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문기자 칼럼] '健保 4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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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한국 건강보험은 누구나 손쉽게 큰 경제적 부담없이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감기 같은 사소한 질병에도 1만원 안팎의 돈만 있으면 쉽게 병원을 찾는다. 그 결과 1년에 병·의원을 찾는 날이 평균 14.6일로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많다. 게다가 한국은 직장인(1977년)에서 전 국민 건강보험(1989년)까지 불과 12년 만에 이뤘다. 세계 사회보험 역사에서 가장 빨리 이룬 성과여서 저개발 국가들이 앞다투어 한국 건강보험을 배우러 온다.

7월 1일로 건강보험 40주년을 맞는다. 건보의 공적 중 가장 뚜렷한 게 수명 증대다. 1977년 65세에서 2015년 82.1세로 무려 17.1세가 늘었다.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다. 건강보험 도입에 따른 의료 환경 개선이 주효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건강보험의 1등 공신은 낮은 진료비(저수가)를 감내하며 의술을 편 의료계이다. 경제계도 팔을 걷고 도왔다. 전경련은 "건보료 부담이 크다"는 기업들을 설득하고, 건강보험 도입을 추진할 (의료보험연합회)사무실 비용을 대고, 직원들도 전경련에서 뽑아 보냈다. 현대는 건강보험 도입에 맞춰 "무의촌에 병원을 세우겠다"며 강원 인제, 전북 정읍, 충남 보령 등 내륙 오지 7곳에 아산병원을 지었다. 대우도 전남 완도·신안 등 섬 중심으로 4개의 대우병원을 세웠다. 지금은 재벌들이 병원 사업까지 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지금껏 적자인 이런 병원들을 세워 유지해온 노력은 평가받아야 한다. 당시 "건보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경제 부처의 반대를 딛고 건강보험을 추진한 보건사회부 신현확 장관과 최수일 국장 그리고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를 만든 김일천 국장도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의료계는 저수가로 만들었다고 지탄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부담을 덜어준 공무원들이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시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에서 열린 '치매, 이제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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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강보험은 '저부담-저급여-저수가'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 구조로 짜여 있다. 내는 돈(건보료)이 적으니 그만큼 혜택도 적어 지금도 중병에 걸리면 억대의 치료비를 낼 정도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가 많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이를 없애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11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요구된다.

1977년 건보 체계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돈 낼 사람이 줄고, 혜택받을 사람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매년 30만명씩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로 진입하면서 매년 40만여명씩 늘고, 2025년부터는 50만여명씩 는다. 건보 재정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누가 막대한 노인 진료비를 부담할 것인가. 이제 국민이 응답할 때다. 직장인 소득에만 매달리는 건보료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적은 돈이나마 내는 '넓고 얕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보료 무임승차하는 피부양자를 과감하게 털지 않으면 건보료를 둘러싼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의 갈등이 건보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다.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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