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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단독]과속차에 치여 중상 9세 아들… 2년만에 풀린 法의 응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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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싸움 끝 운전자 처벌 이끈 피해 아동 아버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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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은 걸음이 불편하다. 뛰는 건 생각지도 못한다. 심지어 양반다리로 앉을 수조차 없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아빠의 눈에선 피눈물이 났다. 하지만 아들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아빠의 한은 22개월이 지나서야 풀렸다.

○ 장애 입은 아들과 처벌 면한 가해자

2015년 8월 19일 오후 3시 40분 전남 지역의 한 섬마을.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놀던 초등학교 3학년 A 군(당시 9세)이 편도 1차로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순간 검은색 BMW 승용차가 A 군을 향해 돌진했다. 이곳의 제한속도는 시속 50km. 사고 당시 BMW 승용차의 속도는 시속 64∼75km로 추정됐다. A 군 아버지(53)는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전방 70m 정도에서 아들 모습이 촬영됐다”며 “직선도로에서 무엇을 하며 운전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A 군은 119헬기로 전남 목포의 한 병원에 이송됐다. 상태는 심각했다.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두 다리도 망가졌다. 왼쪽 다리의 십자인대와 성장판이 부서졌고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 근육이 손상됐다. A 군은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3개월간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부상이 너무 심해 전치 4주 진단이 추가됐다.

경찰은 BMW 승용차 운전자 정모 씨(33)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초 공소권 없음(불기소 처분)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정 씨가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교특법은 교통사고 가해자가 무면허나 음주, 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고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했으면 처벌을 면제해주는 법이다. 같은 이유로 검찰도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A 군의 아버지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고 지난해 4월 헌재는 ‘공소권 없음 처분 취소’를 결정했다. 재판관 전원 일치였다. 헌재는 A 군이 ‘불치 또는 난치의 질병을 앓을 가능성이 있다’며 종합보험 가입이 처벌의 면제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진료기록부 확인이나 사고 현장에 출동한 119대원, 치료 의사 등을 상대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건 중대한 수사 미진 및 법리 오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정 씨를 다시 기소했다. 최근 열린 선고 공판에서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단독 김도연 판사는 정 씨에게 금고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사고 발생 22개월 만이다. 김 판사는 “정 씨가 마을도로에서 과속하며 전방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 더구나 합의 노력조차 없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정 씨 측은 뒤늦게 A 군 부모와 합의하고 항소했다.

A 군 아버지는 “정 씨가 사과조차 하지 않다가 구속된 지 9일 만에 가족이 찾아와 부탁해 합의했다”며 “만약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구속 전에 용서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이 ‘아빠 나는 왜 온몸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울까’라고 물으면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아들이 너무 안타깝다”며 눈물을 훔쳤다.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던 경찰과 검찰은 “정 씨가 A 군에게 중상해를 입혔다는 게 증명됐다면 처벌이 가능했겠지만 기준이 모호해 적용이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 피해자 두 번 울리는 ‘교특법’ 이제 바꾸자

1981년 제정된 교특법은 운전자 과실로 발생한 교통사고의 피해를 빨리 회복해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해도 ‘보험 처리만 하면 된다’는 인명 경시 풍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9년 위헌 판결에 따라 중(重)상해 때는 처벌이 가능해졌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이 역시 합의하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중상해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 기준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일반적인 교통사고에 주로 발생하는 ‘전치 3주’와 같이 사회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남=이형주 peneye09@donga.com / 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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