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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페미당黨, 제1 공약은 페퍼 스프레이 무상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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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정치포럼] ⑥ 여성주의정당 프로젝트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2016년 4월, 페미당당은 한 친구의 장난스러운 제안으로 '창당'되었다. 잔디밭에 누워 2016 총선 과정과 결과에 대해 불평하던 와중이었다. 2020년 총선 1석 확보를 위해 나아가는 페미당당의 제1 공약은 페퍼 스프레이 무상 지급. "여성주의 정당이니까... 이름은 페미당당 같은 것으로 하면 되겠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한 친구가 문자를 보내 왔다.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페미당당은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공동행동, '거울행동'으로 활동단체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약 70명이 강남역에서 근조 리본이 붙은 거울을 들고 행인들과 서로를 비추며 걸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2016년, 강남역 한 공중 화장실에서 일어난 젊은 여성의 죽음. 어쩌면 익숙한 이 죽음은 왜 그토록 우리를 분노하게 했으며, 거리로 나와 행동하도록 했을까.

페미당당은 이후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가장 시끄럽게 활동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이 되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시작으로 세미나를 열고, 밤에 놀러 나갈 때조차 억압과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 '페미 파티'를 열었다. 서울의 페미니스트들을 인터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페미니스트 인 서울'을 런칭하였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함께했으며 폴란드, 아일랜드 등의 단체들과도 연대하여 "내 자궁은 나의 것"을 외치는 세계의 여성들과 연결되었다. 낙태죄 처벌 강화를 예고하였던 보건복지부는 두 차례의 검은 시위 이후 이를 취소하였다.

촛불 정국에서의 활약도 있었다. 집회에서의 혐오 발언과 성희롱, 성추행 등을 가시화하고, 광장에서 안전한 공간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페미존'을 만들게 했다. '페미답게 쭉쭉 간다' 집회에서 '나는 (어떤) 대통령을 원한다' 피켓을 들었고, 유튜브 채널(wit.ch.kr)을 개설해 2017년 대선 후보들의 여성 정책 공약을 검증하였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낙태죄 폐지와 함께 작년 페미당당이 가장 집중한 것은 여성주의 정치세력화였다. '페미당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을 당차게 선언했으므로, '여성주의 정치'는 당면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주의 정치란 무엇이며, 우리는 페미당을 정말 창당할 수 있을까?

'페미당을 정말 창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전에, 우리는 '해야 하니까', 페미당당을 시작했다. 하기 싫은 설거지를 누군가는 해야 하듯, 2020년에도 한국에 페미니즘 정당이 없으면 안 되니까.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무도 안 할까? 그러면 우리가 해도 되지 않을까? 창당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200명의 발기인을 모아야 하고, 광역지자체 5개에서 각각 1000명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당처럼 공공장소에서 당원을 모집하다가는 혐오범죄의 희생자가 되어버리고 말 수 있으니 온라인으로 당원 신청을 받아야겠구나. 그렇다면 온라인 기반의 창당 플랫폼을 만들자. 제안서를 보내 간담회를 열어 여성주의 정당에 투신할 동료, 백마를 타고 올 초인을 섭외하자.'

페미당당은 이렇게 각종 여성단체와 소수정당 창당 경험자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그리고 결론을 말하자면 '당의 기조와 강령도 없이 정당을 만들 수는 없다,' '창당에 대한 근거가 부재하다,' '망할 거라면 안하는 게 낫다' 등의 부정적인 의견을 맞닥뜨리고 창당 프로젝트를 보류하게 되었다. 방법론으로만 접근한 창당은 시기상조였다.

당장 창당이 불가능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는 '여성유권자연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일단 유관단체인 여성유권자연대가 존재하며 둘째, 정당이 아니면서 지지 및 낙선운동을 한다면 아주 쉽게 선거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셋째, 젊은 20대 페미니스트들의 (사실상 한정적인 구성의)모임인 페미당당이 어떤 여성유권자들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페미존,'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창당도, 여성유권자연대도 어렵다면 페미당당이 여성주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정해진 답은 없었고, 우리의 활동은 정체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정체할 시간이 없었다. 여성 대통령의 잘못은 여성의 잘못이 되었고, 페미당당 깃발을 들고 나간 첫 집회에서 혐오 발언을 마주했다. 촛불시민들의 '우리'에도 여성은 들어갈 수 없었다. 광장에서의 동등한 시민이 되려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성폭력, 혐오 발언 없는 '페미존'이 필요했다.

첫 페미존을 꾸린다는 소식을 알리자 곧 '불꽃페미액션',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모임)' 등의 단체에서 연대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페미존 덕분에 집회에 처음 나와봤다', '집회에서는 내 자리가 없는 기분이었는데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미존 사전집회에서는 장애인, 트랜스젠더, 청소년 등 소수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페미존은 '소수자인 나도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였다. '페미 자경단'을 꾸려 시위대를 향해 성희롱을 일삼는 사람들을 퇴치하고, 무대의 혐오 발언을 정정하고, 혐오 발언이 가사에 포함된 DJ DOC의 공연취소 요청을 했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라는 말에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라고 외친 것이 페미존의 이름이 되었다. 이는 여성 혐오가 난무한 광장 자체를 보이콧하자는 주장에 페미당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우리는 오늘 이 광장에 나와 세상을 바꿀 것이다.

페미당당은 깊게 고민하기보다 당장 앞에 놓인 일들을 했다. 활동가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지속 가능한 페미질'을 위해 모든 것을 멈추고 쉬어야만 했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잘했을 수도, 앞으로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페미당당의 방식으로, 시끄럽고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가장 잘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초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이제는 그 초인이 진짜로 온다고 해도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존 이후, 여성주의 정치

페미당당은 촛불 정국에서의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조개를 줍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아 구조신호를 보내고 넘어진 사람들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페미존에서 자경단을 꾸린 우리는 광장에서마저 내 자리를 찾기 위해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만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퇴치'해야만 했다.

광장이 사라졌어도, 페미존 이후의 달라진 정치 지형은 2017년의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남긴다. 스스로를 진보 지식인으로 상정하는, '합리적' 이미지를 가진 인기 있는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는 대선후보로 나온 토론회에서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존중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던 날 밤,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소수자들을 괴롭힌 것 역시 이곳에 내 자리는 없다는 공포였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무엇이 혐오 발언이고, 무엇이 아닌지, 그 경계가 전에 없이 흐려져 버렸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제 '그나마 말 들어줄 사람을 뽑으라,' '개중 너네 편인데 공격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다.

이는 재미있게도 약 100년 전 영국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서프러제트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서 그들이 여성 참정권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당시 집권하던 자유당의 낙선 운동을 하던 것을 회상한다. 그들은 여성 참정권에 훨씬 더 부정적인 보수당이 집권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성 참정권에 아주 우호적인 자유당 의원들조차 예외로 두지 않고 전력을 다해 낙선시켰다. 서프러제트들은 '나중'을 약속하는, 일견 희망적인 약속에 지쳐 아주 단순한 원칙을 세운다. 이것은 전쟁이며, 예외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보여줄 뿐이다. 이 간단한 전술은 보수당 집권 이후에도 계속되고, 결국 승리한다.

100년이 지났지만 여성이기에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2017년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전히 전쟁과도 같다. 우리는 나중이 아닌 지금 전선을 쳐야 한다. 페미당당은 지금, 여기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2016년 5월부터 페미당당은 페미당 창당이라는 언젠가는 이루어질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

기자 : 우지안 페미당당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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