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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간은 어쩌다 고양이에게 정복당했을까 고독 그리고 고양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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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라이프

사람의 사람에 대한 증오 현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전에는 대화로 풀자고 했지만 이제 아예 상대하지 않아버리거나 작업 중인 사람을 현장에서 살해하는 일까지 벌인다. 우리는 왜 직장 동료를, 친구를, 애인을, 손님을, 어지간한 모든 사람들을 혐오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더욱 고독해져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독의 세계를 향해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때로는 그 길을 고양이와 동행하는 경우도 많다. 고양이가 되었다 일 년 뒤에 인간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타인의 시대에 생각해보는 고독, 그리고 고양인 이야기이다.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된 고독, ‘고양인(人)’

고양이가 난리다. 주변에서 집안에 개나 고양이 한두 마리 키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대개 싱글이다. 그들이 고독을 나눠줄 대상으로 고양이와 개 가운데 고양이를 선택한 것은, 개는 수시로 심심해하고 고양이는 쿨 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사실은 고양이는 잠이 많아 누군가 건드리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하는 것이지 결코 완벽한 쿨한 생명체는 아니다. 고양이도 먹는 것은 밝히고 같이 놀자고 치대기도 한다. 개가 자꾸 심심해한다는 생각 역시 선입견이다. 개가 고양이에 비해 가축화 시점이 더 오래 되었고, 그만큼 사람과 친숙하며, 잠 또한 고양이에 비해 덜 자고 활동적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 ‘심심하다, 나랑 놀자’ 이런 개념으로 꼬리를 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인간은 고독을 나눌 상대로 ‘덜 고독해 보이는 고양이’를 선택했고, 그것이 요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공식 비슷하게 자리잡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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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자. 고양이와 동거 중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내 몸 어디엔가에 고양이 신체 일부가 접촉한 상태임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의 하루 행복은 그 촉감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벗은 몸이 내 등에 붙어있는 것과는 또 다른, 잠을 자면서 느낄 동 말 동 한, 딱 손바닥 반만한 면적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잠자리에서 나온 사람은 고양이가 하는 체조를 따라하거나 자신만의 스트레칭으로 어젯밤 응고된 육신을 풀어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들어간다.

고양이와 사람이 한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지위는 주인에서, 가족에서, 집사로, 그리고 이제는 ‘고양인’까지 탄생하게 되었다. ‘고양인’을 편의상 ‘고양이’와 ‘사람’의 조합어로, 고양이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지칭하자. 그들은 평범하다. 일어나 고양이 체조하고, 청소하고, 씻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밥 먹고, 고양이를 안아주고 출근을 한다. 이후 퇴근하고, 다시 고양이를 만나고, 고양이와 이야기 나누고, 고양이와 놀아주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고, 고양이 사진을 찍어 냥스타그램이나 데이원에 자신의 고양이 근황을 알리고, 이웃 고양이 입양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커피 마시며 고양이에게 간식 주고, 조용히 잠드는 일상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미니멀리스트이거나 초식남녀, 또는 고독의 주체들이다. 여행을 떠나지 못해 안달 떨지 않고 친구와 어울리지 못해 집안에서 혼술하지 않으며 미친듯 SNS에 매몰되어 살지도 않는다. 쇼핑에 큰 관심 없고 좋아하는 책도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반납한다. 그들의 쇼핑 리스트는 주로 고양이 사료와 간식, 살림살이 등과, 자신의 일상에 꼭 필요한 소소한 소모품들이다. 그들은 옷장을 옷으로 채우지 않고 책장을 책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둘 이상의 사람이 장기 거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집사들은 고양이를 서너 마리 모시기도 하지만 ‘고양인’들은 오직 한 마리와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집에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을 뿐이다. 내가 알기에 그들은 애인 만들기에 소극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주로 SNS를 이용한다. 그나마 친한 친구는 정기적으로 만날 뿐 차라리 익명이 난무한 무한 지대를 즐긴다. 그러나 그 누구와도 접촉하는 면적은 손바닥 크기를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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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대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고독의 세계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진 않았다. 세상은 온통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문화는 엔터테인먼트 스타들이 장악했고 블로그는 파워블로거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인스타 또한 그들만의 리그로 가득하다. 영화 관람 선택에 시놉시스와 제작 의도가 참고되는 시절은 끝났다. 검증된 감독의 작품이 아니면 대중들이 널리 좋아하는 스타의 출연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장르 영화가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다는 건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3년 전 베스트셀러 소설이 지금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서가에 전시되어 있고 새로운 작가의 등단 소식이 뉴스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 되었다.

최근 기형도가 술값을 대신 내준 숙녀에게 써주었다는 헌시가 소설가 성적제의 동생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자 인터넷에서 그의 시가 단박에 수만개의 파일로 만들어져 날아다니고 있다. 이 시를 쓴 이가 감성과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시로 독자를 매료시킨 시인 기형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의 명성도 폭발적 화제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말 나온 김에 한번 읊어보자. 시를 쓴 시인이나, 시에 등장한 여인이나, 고독하긴 매 한가지이다. 그 고독의 다음 시간에 성찰과 담담한 삶이 존재한다면, 그 고독은 이 시만큼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을까? 시는 소설가 성석제 동생 성우제 씨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폴커 키츠’와 ‘마누엘 투슈’는 심리코칭 전문가이다. 그들의 저서와 강연의 주제는 ‘무난한 성공’이다. 세상과 타협해 가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그래서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기필코 확보해 자신을 돌아보고 오직 나만이 삶을 설계해가는 삶을 가이드하는 게 그들의 직업인 것이다.

2010년 즈음 공저로 발표해 한국에서도 출판된 도서 <우리는 왜 혼자일 때 행복할까>의 부제는 ‘타인의 기대에 갇힌 이들을 위한 카운셀링’이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문단들의 제목 몇 가지를 읽어보면 현대인이 얼마나 시스템과 타인에 의해 자신을 상실해가고 있는지 보인다.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시도는 커녕, 사실상 속수무책의 삶을 살고 있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은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방식에 의거해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단지, 모색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참고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문단 제목 몇 개를 함께 읽어보자.

‘언제부터 ‘하고 싶다’가 ‘해야 한다’로 바뀌었나 _ 나의 삶을 조종하는 것들을 돌아보라 _ 일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할까? _ 퇴근 후에도 자아현실은 계속된다 _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싶다 _ 타인의 기대치가 내 삶을 잠식한다 _ 주변의 과도한 관심과 말이 다시 스트레스로 _ 다른 과제들과 경쟁하는 휴식 스트레스 _ 완벽하게 조화로운 삶은 어디에 있는가 _ 고통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_ 내 속에는 내가 너무나 많다 _ 내 삶이기에, 전적으로 내 취향에 따라.’

한국의 직장인들은 사실 세계 최악의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2014년 ISSP라는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이 OECD국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은 직장인들의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69%로 OECD 평균 81%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일할 때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비율은 87%로 평균 78%를 훨씬 웃돈다. 2위 미국이 79%, 일본이 72%인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인이 직장생활에서 얻는 만족도는 최하이고, 스트레스는 최고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만족도가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높은 이유가 시스템보다는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 푸념 가운데 ‘일만 하게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말이 있다. 일에만 집중하면 성과도 높이고 보람도 찾을 텐데, 이거야 원, 챙겨야 할 상사는 옥상옥이고, 눈치 보지 않는다고 은근 시비거는 상사가 깔려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를 100% 업무로 접근하기 않고 감성노동을 소환해야 하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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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동은 표현이 순화되어 그럴듯하게 들릴 뿐, 상대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상황, 즉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할 때 평등하다는 생각보다 상대가 내 위에 있다고 느끼거나, 그렇게 느끼지 않더라고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 이상 나쁜 스트레스도 없다. 한국 사회처럼 상하 관계가 공고한 세상도 드물다. 손님이 왕이면 판매 직원은 하인인가? 직장에 몇 년 먼저 들어왔다고 꼭 신입사원보다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창의력과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은 직책 순일까? 학교에 일 년 먼저 입학했다고 일 년 뒤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강제로 술 먹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이 먹은 사람은 왜 툭하면 ‘니가 자식 같아 하는 말인데’ 같은 소리를 습관처럼 내뱉는 것일까? 지하철 노약자석에서의 노약자는 오직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오늘 컨디션이 영 나빠 서 있기조차 힘든 젊은이가 그 자리에 앉으면 발로 차여야 하는 건가? 건물주 돈 벌어주는 사람은 세입자인데 왜 건물주가 세입자가 돈 내고 빌린(점유한) 공간에 사용자 허락도 없이 불쑥불쑥 들어오는 걸까? 원룸을 빌려 사는 임차인들은 왜 고장난 형광등 갈아 달라는 이야기를 몇 번 생각한 끝에 임대인에게 해야 하는 걸까. 이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계급 의식 때문이다. 먼저 태어났다고, 내가 돈 쓰니까, 부자니까, 직급이 높으니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국회의원 보좌관 중에 ‘우리 의원 이번 선거에서 꼭 떨어졌으면’하는 바람을 갖는 사람까지 생긴 것일까. 의원실 직원은 의원이 낙선하면 실직할 확률도 높은데 말이다. 국회의원은 직업이 국회의원이고 보좌관은 국회의원실에서 입법을 위한 각종 조사 활동을 하고 정리해 국회의원의 활동을 돕는 직업인이고, 국회의원 비서실의 직원은 국회의 의전을 돕는, 역시 직업인이다. 동등한 관계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제가 끌고 온 가방을 보좌관에서 던지듯 밀어버릴 수 있을까. 국회의원실 직원을 보좌관이라고 칭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비상식적인 인간이 국회의원을 하는 자체, 그런 사람을 뽑아주는 유권자들에게도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비상식적인 행동은 국회의원에 대한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모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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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 때 외국 국적기를 타 보면 우리가 얼마나 조선시대, 또는 식민지 시대 때의 계급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승객끼리 사소한 일로 신경전을 벌이거나 다툴 경우 승무원은 ‘무슨 일이죠?’라고 묻지 않는다. 대뜸, “입다물어, 한 마디만 더 뱉으면 당장 내리게 할거야” 그걸로 끝이다. 이것은 해당 상황에 대한 메뉴얼에 충실한 조치일 뿐이다. 그런 승무원에게 ‘이게 어따대고~’ 했다간 당장 보안 직원이 달려오고 승객은 추방당한 뒤 항공기 입구에서 기다리던 경찰에 연행 조치된다. 착륙 시 승객에게 전달한 지시사항을 어긴 승객에게 스튜어디스는 ‘여기는 니 안방이 아니야’라고 단호하게 충고하고, ‘내가 보고 있을 때 그 가방 의자 밑에 넣어, 나중에 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식으로 대응한다. 승무원은 항공법에 따라 조치한 것이지만 대부분 승객은 ‘감정을 상해’ 한다. 외국 국적기의 승무원들은 승객과 농담도 잘 한다. 그럴 때 보면 그들 관계가 승무원과 승객이 아닌 그냥 친구처럼 보인다. 모두들 잠든 태평양 상공에서 혼자 일하는 승객이 있을 땐, ‘넌 일벌레야? 남들 잘 땐 너도 자는 게 좋은 거야, 오직 일일일(웍웍웍)!’ 하며 진심 어린 걱정도 해준다. 거기에 대고 ‘내가 신경 쓰이니? 괜찮으니 너도 쉬어’라고 말대답하면, ‘푸핫, 내가 그럴줄 알았어, 여긴 우리 직장이야, 우린 승객들 건강도 신경써야 하는 일을 하고 있어’라고 웃으며 응대한다. 물론 그 뒤로는 못본척 지나가지만.

계급을 강요당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이 하루하루 살아갈 수록 일은 물론이고 사람이 싫어지는 이유는 이것들 뿐이 아니다. 그래서,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사람보다 동물과, 자연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그 틈을 비집고, 통계에 잡힌 것만 40만 마리가 넘는, 어림잡아 100만 마리를 향하고 있는 고양이들이 집안으로 들어갔고,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고양이들이 길에서 아파트에서 들판에서 골목에서 출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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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의 대화라기보다 자신과 주고 받는 이야기들

농림축산검역본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반려묘를 키우는 가구가 2012년 대비 2015년 기준 63.7% 증가했다. 일년에 20% 이상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조사에 따르면 반려묘 개체수 증가에는 일인가구 확산 속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인 가구 즉, 싱글 모두가 고양이와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인 가구와 고양이 증가 현상을 하나의 그래프로 그려보면 앞으로 반려묘의 숫자는 더욱 빠르게, 더욱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데려오는 계기는 첫째 예뻐서, 둘째 쿨해서, 셋째 의외로 싹싹해서 등이다. 이 세 가지를 충족시켜주는 인간 관계는 진짜로 쉽지 않다. 고양이와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고독 속으로 들어왔지만 고독하지 않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퇴근 후의 삶을 낭비하느니 고양이와 대화하고, 나란히 앉거나 누워 책을 읽고, 사색하고, 소식하며 살아가는 게 훨씬 의미있는 삶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 글 안에서도, 또는 SNS를 통해서도 우리는 고양이와 대화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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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양이와의 대화는 가능할까?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자신과의 대화를 고양이를 통해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양이가 귀를 세웠을 때, 쫑긋했을 때, 꼬리를 바짝 곧추세웠을 때, 꼬리털을 잔뜩 부풀렸을 때, 수평을 맞춰 흔들어댈 때, 납작 엎드렸을 때, 다가와 부비부비할 때 그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고양이에게 온통 몸을 통해서만 말을 걸진 않는다.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다. 겉으로 또는 속으로. 고양이와의 대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소소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양이 전문 서점인 ‘슈뢰딩거’에서는 고양이 민화전 <조선냥반전>, <제주와 고양이>전, 고양이의 날 기념 전과 고양이 여행, 서적 <백만번 산 고양이>로 배우는 일본어, 일본어로 읽는 고양이 세계여행, 고양이 인문학 등 고양이를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서적이 잘팔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S를 통한 고양이 가족들의 교류는 실태 파악 불가 상태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 관련 해시태그 ‘고양이’와 ‘냥스타그램’을 합친 페이지가 모두 1500만 개 안팎이다. 세계적으로는 2015년 기준 온라인에 올라와있는 고양이 사진이 65억장으로 그 이전 조사 시점인 2010년 대비 4배가 늘었다. 65억장의 사진을 올린 사람들 모두가 고양인일 리는 없으나 직장 생활과 친구들과의 최소한의 교류,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고양이와 거주하며 자신의 시간을 갖는 사람이라면, 고양인 또는 고양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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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인’은 어떻게 보면 집사보다 좀 더 집요한 고양이 마니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볼 때 그들은 동굴을 파고 벽면수행 하듯, 일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킨 상태에서 자신의 실체와 돌아가는 세상의 면면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부류라 할 수 있다. 사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개인 각각의 성찰과 세상에 대한 담대한 맞섬이 중요한 시대임이 분명하다. 세상은 여전히 상하 관계를 요구하고 그에 반하는 태도에 대한 반응은 도를 너머 야만의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이 철학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독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자신과 세상은 조금 더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고양이와 함게 하는 이유는 한 가지, 고독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고, 그때마다 고양이가 큰 위로가 되어주니까.

[글과 사진 아트만(텍스트씽크)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5호 (17.07.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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