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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진상 규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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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촛불 100만 사회자 김덕진 사무국장 인터뷰

“독단적 사업 결정, 폭력적 집행의 조사 필요”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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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촛불 100만 사회자’로 공항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지만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원래 ‘크건 작건’ 상관없이 싸우는 현장 사회자였다. 굵직한 사회운동 현장마다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든다.

그는 한국 사회운동 전체의 ‘상황실장’ 같은 활동가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SKYM(쌍용차·강정·용산·밀양) 연대’를 이끌고 있다. 이 모임은 국가폭력에 의해 쫓겨나고 내몰린 사람들이 주축이 된 ‘피해자 연대’다. 이들과의 연대가 “나를 성장시키고 삶의 방향을 일러주었다”는 김덕진 사무국장에게 대형 국책사업으로 발생하는 공공 갈등 문제의 해결 방안을 물었다.

국가폭력의 이유

SKYM은 길게는 참여정부, 짧게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문제다.

쌍용자동차를 제외하면 세 곳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시작된 문제들이다. 대부분의 국책사업이 ‘그걸 왜 여기 설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민 동의나 설득 없이 밀실에서 결정돼 갑자기 발표됐다. 사실 그게 문제의 ‘거의 모든 것’이다. 이후 국가는 당사자들에게 “희생을 감수해라, 참으라”고 강요한다. 당연히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고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 그들은 피해자인데 이 과정에서 범법자가 된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사전에 조직된 87명의 주민이 유치를 결정한 것을 근거로 추진됐다. 경남 밀양은 지역에 사는 할매들과 상관없는 전기를 위해 “밭을 내놓아라, 집 근처에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한 사업이다. 지역주민들은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동의가 없는 상황을 돌파해야 하니 경찰 같은 국가의 공적 폭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된다.

설득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설득되지 않을 텐데, 거기에 노력을 들이기보다 일단 강행한 뒤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의를 생각하지 않는 지역주의’로 치부해 공권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안 그럴까.

글쎄…. 이미 만들어진 핵발전소나 해군기지를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도 환경영향평가 등 국내 절차를 밟겠다는 거지 (배치 자체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국책사업은 국정교과서 같은 문제와 다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어쩌기에는 어마어마한 하드웨어다. 매몰 비용도 크고 백지화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게 민주적 절차다. 문재인 정부에 물어야 할 건, 과거 국책사업들에서 왜 갈등이 발생했는가, 주민들이 왜 극렬하게 반대하고 감옥에 가는 극단적 충돌을 불사했는지 조사하는 거라고 본다. 갈등 발생 구조를 근원적 시각으로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과와 보상은 그다음이다.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가진 조직이 힘을 갖고 진상 조사부터 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국책사업 진상규명위원회’이건 과거사 청산 차원이건 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방식으로 할지부터 합의해야 한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힘을 싣겠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부처에 걸친 문제가 조율될 축이 만들어진다.

대통령은 아직 그런 메시지가 없고, 국정 비전을 만드는 자문위원회도 특별한 언급은 없다.

현재 장관 등 국무위원 인사 문제가 어렵고, (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해) 국회가 파행되다보니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취임 100일 이내, 취임 6개월 안에만 먹히는 개혁 드라이브가 있다. 예컨대, 지금 일자리위원회는 잘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임기 내내 해야 하고 장기간 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일들에 대한 진상 파악과 적절한 조치는 시간싸움이고 비교적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 과거 사업의 진상 규명이 되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독립적 공권력 조사 필요

공공사업과 관련해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은 제도의 문제라고 보나, 사람의 문제라고 보나.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의 예를 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은 압도적으로 ‘케이블카는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냈는데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뒤집혔다. 환경영향평가나 문화재영향평가 등이 국책사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고, 걸려야 정상적인 사회인데 그게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냥 해버린다. 그러다보니 최종적으로 이 문제를 심판할 기관이 법원 밖에 남지 않게 된다. 모든 현안이 마지막에 소송으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소송이 몇 년간 이어지고 그 기간에 사업은 계속된다. 결국, 판결이 날 땐 청구 취지 자체가 의미 없게 된다.

국책사업의 진상 규명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민주적 절차가 결여된 과정 자체를 드러내야 한다. 국책사업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민주성과 독단을 조사해 국가적 차원의 잘못이 무엇인지 인정하고 정확히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공권력을 통해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려던 행정 집행 방식을 평가해야 한다. 후자의 문제를 푸는 게 더 쉽고 시급하다. 국책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정부는 주민들이 다른 요구나 주장을 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해군기지는 해군과 국방부, 송전탑은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산업자원부와 싸웠어야 하는데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싸움의 대상이 언제나 경찰로 바뀌었다. 모든 지역에서 경찰과 원한이 생기고 경찰청장을 고발하고 사퇴하라고 하는 게 운동의 마지막이 됐다. 이 본말 전도를 이제 국가가 끝내야 한다.

노무현 정권에서 과거 청산 과정을 보면 국가정보원 내에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꾸리고, 국방부와 경찰 모두 기관 내에 그 조직의 문제를 보는 기구를 차렸다. 그때 사과한 이 기관들이 (지난 9년 동안) 어떻게 됐나. 지금 만들어진 국정원 개혁위원회도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지만 비상임 위원들만 있고, 집행 기관과 조직은 없는 모임 아닌가. 최소한 대통령 직속이거나 조사권을 가진 독립적 민간기구로 공권력을 들여다봐야 한다. 대통령이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칭찬이 많은데, 좋다. 근데 권력에서 권위의 문제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구의 독점적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다.

성공한 정부로 남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의욕도 있고, 초반 분위기는 좋아 보인다. 되도록 의견을 많이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참여정부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초반에 제대로 드라이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의 협업을 끌어낼 수 있고 주요 의제를 시민적 과제, 민주주의 문제로 각인시킬 수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적과 싸워 이겼다는 성취감을 가진 시민들의 엄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상 그 현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가치의 싸움이다. 문재인을 지지하느라 다른 것을 살펴보지 않는 최근 상황은 현상일 뿐이다. 여기에 도취되지 말고 문재인 정부가 진짜 좋은, 성공한 정부로 남기 바란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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