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평등 빠진 '경제민주주의'는 반쪽짜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고] 로버트 A. 다알의 경제민주주의, 의미와 약점

문재인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경제민주주의를 꺼내 들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경제민주주의 또는 경제민주화를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구체적인 과제로 격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미 비정규직 영역, 대자본과 소자본 사이의 거래관계 영역 등에서 차별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비록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가 경제의 모든 영역에 걸쳐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핵심 분야인 기업민주주의 영역에서는 주주민주주의가 기형적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문제까지 있지만. (☞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가 가야할 길").

어쨌든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A. 다알(Roert A. Dahl)의 탁월한 책 <경제민주주의>(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다알의 <경제민주주의>는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다룬 책으로, 그 주장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와 평등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며, 특히 평등이 결여될 때 민주주의 체제에는 두 가지 위험("다수가 합법적 과정을 통해 소수를 억압할 위험"과 "다수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대중에 기초한 독재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사회적,경제적 심각한 불평등은 시민들을 적대적인 양극단의 진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약화시키며 빈민층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하든 그들이 축출되게 하든 독재에 대한 지지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국가에서 자유가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평등이 과도해서가 아니라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가 국가통치에서 정당화 된다면 기업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기업 내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국가통치에서도 민주주의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대기업으로 이전된 소유권은 노동자들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경영자의 권한 아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침해하는 비민주적 지배"이므로, "(자신은)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경영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자주관리기업)을 제시"한다.

넷째,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서의 차이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의 기원은 아니지만", "다양한 불평등에 깊이 관련되어"있으므로, 대안적 소유경영구조를 가진 민주적 기업체제(노동자 소유기업 또는 자주관리기업)를 통해 평등을 증진시켜야 하며, "경제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있어서 평등"이 증진된다면 "현재보다 더욱 광범위한 평등을 획득"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다알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이전까지 자연발생적으로만 주장되던 사회의 경제민주주의 요청에 대해 정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특히 탁월한 것이며, 또한 정치학자가 새로운 사회의 맹아형태인 노동자소유기업이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대안으로 이해했다는 측면에서 독창적인 통찰이자 민주주의 지평을 크게 넓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알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은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도 동반한다.

프레시안

▲로버트 A. 다알


우선 다알은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를 "기업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로 이해했기 때문에,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기업민주주의 영역에 집중되어 있고, 기업 이외의 경제영역에 대한 경제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더라도,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과 임노동 관계 영역, 대자본과 소자본 및 소비자와의 거래관계 영역, 토지부동산 소유 및 임대차 관계영역, 채권 채무관계 영역,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조세 및 재정의 영역 등 다섯 가지 범주로 구분되는데도, 다알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일반적으로" 자본과 임노동 관계를 기초로 짜여진 기업 활동을 뼈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자신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기업민주주의 영역에서만 전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알의 논의에서는 경제민주주의의 세분화된 개념인 금융 민주주의, 재정 민주주의, 소비자 민주주주의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기업민주주의가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분야라고 하더라도, 다알의 논의는 경제영역 전체에 걸쳐 있지 않은 절름발이 논의다.

또한 다알은 경제적 불평등의 배경에 재산권 문제가 가로 놓여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는 있지만, 시장경제(market economy)가 자유와 꼭 같은 비중으로 평등에도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자유와 평등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는 사실, 경제민주주의는 차별 또는 불평등 상태에 놓인 시장참여자들이 이를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해달라는 자연발생적인 요청으로부터 성립된 사상이라는 사실, 특히 시장참여자들 중에서 "어느 한 쪽에 의한 차별과 불평등의 자유는 다른 쪽의 경제적 자유를 구속하거나 침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제거해야 마땅한 유형의 자유로 경제적 관계에서 차별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려는 경제민주주의는 시장참여자들 모두의 경제적 자유를 온전한 형태로 증진시키고자 하는 사상이라는 사실 등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시장경제가 자유와 꼭 같은 비중으로 평등에도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입증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판매자나 구매자로 "대등하게 만나" "준 것만큼 받는, 받은 것만큼 주는" 평등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며, 반대로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예로 들어도 충분하듯이 시장에서의 평등에 반한 차별과 불평등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영역에서도 다알의 논의에도 여러 가지 약점이 있는데, 이런 여러 약점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소유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결여한 부분이다.

즉, 다알은 "자주관리는 소유권을 주주에서 종업원으로 이전하는 것"(제4장 '기업 내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 중에서)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정작 논의의 전개에서는 국공유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인위적인 자주관리제도를 접목시킨 유고의 자주관리기업도 "특정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적 소유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틀린 생각이다. 즉, 과거 유고연방의 국공유 형태는 다른 소비에트 유형의 국가주의 사회(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와는 달리 중앙정부가 정한 전략 산업영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을 유고의 지방정부인 코뮌의 소유로 분산시켰다는 특이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그 소유의 전제 때문에 유고의 자주관리기업들은 당과 국가의 영향력으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다알은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했을 뿐, 보다 근원적으로 정치에서의 민주주의가 거꾸로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인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것은 아닌가 하는 형태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이라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전할수록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의 장인 시장경제도 발전하며, 따라서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인 "자유와 평등"도 사회적 행위양식으로 발전할 것이라 자연스럽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나 자본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물적 토대에 기초한 것처럼,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회적 행위양식도 사회의 물적토대인 시장경제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고 성숙되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을 바탕에 깔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다알처럼 제한된 범위 내의 경제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 전 영역에 걸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정치에서의 민주주의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다알에게서는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로버트 A. 다알처럼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하든, 이와는 달리 정치경제학 접근을 하든 경제영역에서의 결과는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슷한 결과가 상부구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 영향은 매우 상이할 수 있다.

즉, 경제민주주의가 온전히 실현되어 경제생활 참여자들 모두가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된다면(따라서 일체의 불평등이 소멸된다면), 다알의 접근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현재보다 더욱 광범위한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적 접근에서는 이 경우 일체의 사회계급은 소멸할 것이므로, 계급과 계급이 대립하는 낡은 자본주의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이리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얘기했던 "실질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자유로운 공동체의 첫 단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어쩌면 마르크스가 예측했던 대로 국가조차도 공동체에 필요한 부분들만 사회적 기관으로 형태 변환되고 스스로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물론 나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조차 소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끝으로 우리는 보다 중요한 측면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접근을 택하든 경제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는 사상은 사회 속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갈등 없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가장 인간다운 이상을 목표로 하며, 따라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장하고 격려해야할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접근방식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역사가 입증하도록 내맡겨 둬도 무방하며, 특히 다알의 접근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그이의 사상적 공헌은 매우 높게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 다알은 분명히 경제의 영역에서 획기적인 사상전환의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금의 이 평가는 정치경제학,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 영역에서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음도 밝혀둔다. 예컨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구분, 자본의 민주주의 vs 경제민주주의, 이행론과 단계론(주주자본주의 vs 국가독점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이후의 문제(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vs 국가소유를 기초로한 사회주의)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쟁점들은 경우에 따라 "사상 투쟁" 수준의 격렬한 논쟁을 동반할 수도 있는 것들로, 나는 이와 관련된 문제제기들이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면 언제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자 :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